생명과 자연을 품은 그릇, 옹기
하늘을 담을래?
욕심을 담을래?

“내일 모레면 제가 80이에요.”
“그럼 이 일을 얼마나 하신 거예요?”
“스무 살 못 돼서 시작했으니, 벌써 60년이 되었네요.”
옹기 뚜껑을 빚는 중간중간 낯선 이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옹기 장인. 그의 모습에도 질그릇처럼 흙과 물과 불과 바람 냄새가 가득합니다. 오래 잘 익은 듯한 우리 삶의 모습이랄까요.
“한평생 흙만 만지면서 사신 거네요?”
“밤낮이 없었고, 가끔은 힘든 시절도 있었죠. 살기 위해 이 일을 한 거죠. 그렇게 세월이 흘렀네요.”
“왜 지금도 일을 하세요?”
“지금이야 보람 있죠. 이 나이에, 누가 돈을 벌고 일을 하겠어요. 이젠 다들 부러워해요.”
울산,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만난 옹기 장인의 말에는 바람처럼 거칠 것이 없습니다. 아니, 불에 잘 익어 자연을 담은 항아리처럼 그 얼굴에도 옹기 냄새가 가득하다 할까요. 그 사람의 모습에는 분명 살아온 삶이 가득 배기 마련입니다. 한평생의 삶이 옹기처럼 잘 구워져 참 구수합니다.

옛 이야기 한 편을 떠올립니다.
흙이 있었습니다.
그 흙은 자기가 아름다운 도자기가 될 거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뜨거운 불에 구워지는 것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죠. 하지만 어느 날, 빗물에 비친 자기 모습은 아무 색도 칠해지지 않은 못 생기고 거친, 그저 붉은 도기 화분이었습니다. 자기의 모습에 너무 실망한 그 흙은 원래의 흙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흙의 바람과는 달리 어느 날 그는, 화려한 도자기들 속에 놓이게 됩니다. 얼마나 부끄러운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죠.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못 생긴 화분으로 태어난 그 흙을 들여다보며 감탄을 하고, 심지어 주변의 멋진 도자기들조차도 부러운 시선을 보냈죠. 그래서 물었습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이 못 생긴 저를 보며 감탄을 하는 거예요?”
그때, 옆에 있던 잘 생긴 도자기가 부러운 듯 말을 해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백합을 피우고 있잖아요.”

그러게요.
옹기 장인들은 항아리를 빚을 때 그릇의 쓰임새만 생각하지, 가치까지 염두에 두고 만들지 않습니다. 그 그릇의 가치는 옹기를 사가는 주인의 마음인 거죠. 누구는 그곳에 장을 담글 것이고, 또 누구는 물을 채우기도 하며, 또 누구는 꽃을 심기도 합니다. 혹 어떤 사람은 항아리를 덩그러니 비워두기도 하죠.
어머니의 항아리는 가족들의 먹거리로 가득찰 것이고, 할머니의 항아리는 손자들을 걱정하는 기도로 가득 찰 것이며, 어느 예술가는 그 항아리에 햇살을 담을 것이고, 여느 성인들은 그 항아리에 하늘을 담을 것입니다. 아이들의 항아리는 당연히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이 가득할 것이고요.
우리 삶의 항아리 역시도, 욕심으로 마구 채우다 보면 그 무게를 못 이겨 금이 가고 깨져서 흩어져버려 허망해지겠죠. 하지만 옛 사람처럼 작은 욕심을 채우고 비워내기를 반복하면 어느 날, 그 항아리에 하늘이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본래 빈 항아리였으니까요!

울산, 외고산 옹기마을에 가면 흙을 닮은 사람들이 삶을 어루만지듯 옹기를 빚으며 세월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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