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해진 운동신경
글. 김도명 둔산교당

연휴가 길고, 날씨도 좋고 해서 그간 소홀히 했던 테니스를 쳤다.
아침에 모여서 치는 멤버들과 운동을 즐기는데, 그동안 열심히 하지 못한 관계로 체중도 늘고 감각도 없어져서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함께하는 파트너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다음 경기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러면서 지난 일들이 생각난다. 테니스 좀 친다고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코치하고 눈짓 주고 했던 것들이 모두 마음에 걸린다.
이제는 나이가 나이인 만큼 무리한 운동보다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운동을 선호하게 된다. 몇 달째 헬스장에 다니고 있지만 운동 강도는 매우 떨어져서 체중 조절이 되지 않는다.
활동량이 줄어든 만큼 음식섭취도 줄여야 할 텐데 너무 어렵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적절한 운동과 함께 마음을 비우는 공부도 함께 병행해야 할 것 같다.

부처와 중생의 차이
글. 김홍연 개봉교당

난 항상 일상생활에서 복잡한 문제들을 간단히 만들어 처리하려고 애를 쓴다. 그렇게 하면 해결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원불교에서 마음공부를 배우면서 배운 것을 일상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부처와 중생의 차이에 관하여 간단한 한마디로 요약하려고 노력을 해왔다. 이것은 나만의 방법이다.
예전 근무지에서 함께 일하던 기사 한 분이 어느 날 아침에 술이 깨지 않은 상태에서 출근하였다. 난 기사에게 한마디를 하였다. “술 좀 적당히 드시고 다니세요.” 그러자 그 기사가 “술을 적당히 마시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라고 말했다. ‘적당히’란 단어에 충격이 왔다. ‘나는 과연 지금까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살아왔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법회 시간에 매번 설법을 들으면서 ‘원만히’란 단어를 수없이 들어왔는데, 정작 난 일상생활에서 쓰지 못하고 있었다. 상사에게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나를 얼마나 혹사시켰는가. 집에서는 밖에서 힘들었다는 이유로 ‘애 엄마가 알아서 하겠지.’ 하며 집안일들을 얼마나 소홀히 하였는가.
나는 그 이후로 모든 일을 적당히, 아니 원만히 하도록 노력한다. 그 덕분에 지금은 그때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같다. 부처와 중생의 차이는 ‘원만히’인가 보다.

천지 보은의 실행
글. 서예원 김해교당

남동생과 여동생이 다투었다. 내 입장에서 보면 사소한 문제로 순간의 감정을 못 참은 것이다. 서로 욱해서 앞으로 안 보고 살겠단다. 경계다. 나는 누구 편도 들지 않고 내 편에서 보기로 했다. 그래도 둘이 대치(?)하고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던 중 교당에서 ‘천지은’을 공부했다. 우리가 천지 보은의 조목을 일일이 실행한다면 천지와 내가 둘이 아니요, 내가 곧 천지일 것이며 천지가 곧 나일지니…. 즉 ‘남동생이 곧 천지일 것이요, 여동생이 곧 천지일 것인데, 두 천지(타고난 성향)를 내가 비난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자체로 천지이며 순리 자연한 존재임을 인정하게 된다.
단지 천지 보은의 실행이 부족하여 천도를 본받지 못함에 따라 사리 간에 무식하고, 매사에 과불급한 일이 많은 것이며, 매사에 편착심이 많아 이런 난리가 난 것이구나. 이 상황을 되짚어 보며, 그간 나와 동생들과의 관계와 일의 중한 정도를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로써 분석한다.
천지와 내가 둘이 아니니 천지의 도와 덕을 본받고 자동으로 운행되는 천지의 도를 체 받아서, 들쑤시지 않고 지켜보면 자연스럽게 돌려질 것이다. 혹 안 돌려진다 해도 그 경계로 공부하면 된다. 돌려지든 안 돌려지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음양상승의 도를 따라 흘러갈 것이므로…. 요란했던 마음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없게 되는 묘한 마음의 작용을 공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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