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 만큼 중요한 ‘유종의 미’
글. 박정원  월간<산> 편집장·전 조선일보 기자

‘시작이 반이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한 해를 시작할 때 항상 떠올리는 말이다. 그만큼 마음먹기가 어렵지, 한 번 각오해서 시작하면 목표의 반이나 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 다음 바로 나오는 말이 있다. ‘작심삼일’이다. 단단히 각오를 하고 시작했지만 그 각오가 삼일밖에 지속되지 못했음을 가리킨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 하고 다시 시작하는 연말연시다. 나는 위에서 언급한 ‘시작이 반이다.’에 하나 더 덧붙이고 싶다. ‘시작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끝이다.’라고. 일을 시작했으면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고 꾸준히 이어가서 성과를 거둬야 한다. ‘유종의 미’가 아름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일은 시작한 만큼 끝을 제대로 맺어야 한다. 아무리 시작이 좋아도 용두사미로 끝나면 결코 완성이라고 할 수 없다. 
<시경詩經>에 ‘미불유초 선극유종(靡不有初 鮮克有終)’이라는 말이 나온다. 의미가 매우 어렵지만 풀이하면, ‘처음이 있지 않은 사람은 없으나, 그 끝을 잘 맺는 사람은 드물다.’라는 의미다. 갈무리를 잘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라는 교훈이다.

지난 2018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나는 ‘감정을 잘 조절하자.’와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말자.’는 목표를 정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과연 나의 감정을, 나의 경계를 제대로 조절을 잘했는지 다시 돌아본다. 그리고 2019년 새해의 목표를 ‘감정 조절 잘하기.’와 ‘남에게 상처 주는 말 하지 않기.’로 다시 세우자는 다짐을 한다.
얼마 전 바다를 끼고 있는 지자체의 군수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그 지역을 다음과 같이 자랑했다. “바닷가는 공기 중 산소용존율이 높아 사람들이 머리가 좋다. 둘째로 자연과 더불어서 일을 하기 때문에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건강하다. 나아가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기 때문에 고도의 인내심을 갖고 있다. 머리 좋고, 건강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는데 이 지역 사람들이 어찌 성공하지 않을 수 있겠나.”

그의 말은 백 번 맞는 말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인내심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수시로 변하고, 그 변하는 만큼 수시로 들어오는 경계에 대한 상황을 참고 견디는 게 성공과 존경의 필수요건이라는 생각이 갈수록 많이 든다. 인내심은 때로는 자존심과 충돌한다. 2018년에 유달리 인내심과 자존심이 충돌하는 일이 많았다. 후배가 술자리에서 시비를 거는 말을 하지 않나, 선배가 말을 함부로 해서 감정이 상하지 않나, 일반인들과 길거리나 지하철, 버스에서 부딪히거나 공간 문제로 언짢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예전 같으면 감정이 폭발해 서로 고성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감정 조절을 잘하자.’라는 목표를 세우고 난 뒤로는 ‘내가 참아야 한다.’는 판단과 함께 ‘이것도 경계다, 내가 어떻게 넘기는가 나를 시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정말 극도의 자제심을 발휘하게 했다. 의식적으로 ‘감정조절을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속으로 ‘내 자존심을 조금 다스리면 이 상황을 아무 일 없이 극복할 수 있다.’고 부단히 억제하려고 노력한 기억이 뚜렷하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넘어갔다. 나의 감정조절도 상당히 좋아진 듯하다. 그러면서 ‘지는 게 이기는 거다.’라는 말을 떠올렸다. 어느새 내가 나에게 이기고 있는 느낌이 들곤 했다. 

‘이 세상은 인내를 강요당하며, 인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다. 인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에서 범부들은 모두 자기 뜻대로 세상사를 처리하기 때문에 충돌이 있고 마찰이 있으며, 다툼이 생긴다. 그 때문에 원한과 질시가 생기며, 마음에 화가 일어나고 번뇌가 끊이지 않는다. 인욕이란 이렇게 사바세계에서 범부들에게 일어나는 모욕이나 고통·번뇌 또는 박해를 능히 견디고 참아서 마음을 흩트리지 않고 평안하게 하여 자기 본래의 면목을 밝히는 것이다. 이것은 말로는 쉬우나 실제로 행하기는 지극히 어렵기 때문에 부처는 이를 간곡히 권했고, 수행의 필수 요건으로 삼고 있다.’

<원불교대사전>에 나오는 법문이다. 인내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목표를 세우고 1년을 지속적으로 하면 내가 바뀐 모습을 알아보고, 10년을 지속적으로 하면 가족이 바뀐 모습을 알아보고, 30년을 계속하면 천지가 바뀐 나를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나는 내가 조금씩 바뀌는 모습이 느껴지고 가끔 보이기도 한다. 아직 가족은 내가 바뀐 모습을 알아보는 것 같지 않다. 때로는 섭섭하기도 하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노력하면 언젠가 알아보리라.
2019년은 기해년(己亥年) 황금돼지띠의 해다. 새해에는 2018년과 마찬가지로 ‘감정조절 잘하기.’에다가 ‘남에게 상처 주는 말 하지 않기.’를 목표로 세웠다. 돼지와 같은 뚝심으로 한 해 동안 꾸준히 실천하면 가족들이 더 빨리 알아주지 않을까 싶다. 가족들에게 나의 변화를 알리고 천지에게 알리면 나의 인격도 자연스럽게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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