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희로애락을
담다
홍현주 한지조형 작가

작업실 한편에서, 아이들이 연을 날리고 팽이 놀이를 한다. 또 다른 곳에서는 농부가 소를 끌며 밭을 일구는데 여념이 없다. 작업실인 것도 잊은 채, 닥종이 인형의 표정과 세밀함을 보고 있자니, 이곳은 어느 마을이 되고, 인형은 각자의 일상을 즐기는 마을 사람이 된다. 홍현주 한지조형 작가가 만든 작은 세상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분들도 ‘인형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세요. 얼굴표정이 저랑 닮았다고도 하고요.” 그러고 보니 정감 있는 인형들의 표정은 홍 작가와 많이도 닮았다. 그가, 만들면서 느끼는 행복이 인형에 그대로 투영되고, 인형을 보며 느끼는 관객의 행복감이 다시 에너지로 돌아와 힘이 된다며 웃어 보인다.
“25년 전, 닥종이 인형을 처음 만들기 시작했을 때, 한지가 주는 느낌이 참 부드럽고 은은해서 좋았어요. 만들고 싶은 게 무궁무진했죠. 나도 모르게 빠져든 거예요.” 윷놀이 하는 날, 시집가는 날, 풍악 하는 날 등과 같은 그의 작품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도, 사물에 대한 철저한 고증과 스토리가 있는 작품으로 유명했는데…. 인형을 만든 지 5~6년쯤 되었을 때에는 입소문이 나면서, 고양시 꽃박람회와 인삼축제 등 다양한 축제장에서 그의 작품을 먼저 찾았다. 특히 고양시 농업기술센터에 전시된 신석기 시대 재현과 위안부 할머니 스토리텔링 작업(고양600주년기념관)은 닥종이 인형이 해학적인 모습을 넘어 시대의 아픔과 역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작업이었다.

“신석기 시대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자문을 받으며 그 시대의 얼굴 구조와 체형을 표현하고 도구와 움집 등을 재현했어요.” 위안부 할머니 스토리텔링도 마찬가지였다고. 슬픔 가득한 표정과 몸짓, 비둘기와 태극기로 시대의 아픔을 표현했다.
“나만의 것을 찾고 싶었죠. 내 눈에는 농악을 하고, 윷놀이를 하는 다 다른 인형인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귀엽고 행복해 보이는 다 같은 닥종이 인형인 거예요. 그때 한계가 왔지요.” 남이 원하는 닥종이 인형이 아닌,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인 희로애락을 담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는 그. 45살의 나이에 제품디자인 대학원에 입학하고, 전통한지공예 작업에 현대적인 기법을 더했다. 황토, 숯, 커피, 먹으로 한지를 물들이고, 한지를 몇 겹씩 겹쳐 붙여가며 창작한지를 만들고, 태우고 잘라가며 새로운 표현방법을 연구한 것. 이후 나온 작품은 주위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였다.

“그 사이에 무슨 개인적인 아픔이 있었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하하.” 검정구를 올라가는 인간 군상을 표현한 작품은 다양하고 깊은 감정을 느끼게 했다. 무채색의 한지회화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작가로서 인간 내면의 미묘한 감정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닥종이 인형도 더 디테일 해지면서 7, 8등신으로 새로워졌다.
“춘행무 시리즈를 만들고 있어요. 영친왕비와 덕혜옹주 같은 역사적인 인물도 만들어 내년에 전시할 계획이죠. 그분들의 감정까지 담아내고 싶어요.” 하지만 이 또한 작가로서 한 발자국 발전해 가는 과정 중의 하나라는 그. 앞으로 어떤 작품형태와 기법이 나올지 자신도 모르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이게 정말 나구나.’란 작품을, ‘정말 더 이상 못한다.’ 싶을 정도로 몰입한 작품을 만들 거라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도 열심히 작업하는 작가이고 싶고요.” 한지를 비비고 꼬고 붙이다 보니 어느새 지문이 닳아 없어졌다는 그. 25년의 역사가 담긴 손으로 만드는 그의 작품에는 인간의 사계가, 삶의 희로애락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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