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n Punkt - 하나의 점
글. 이원조 교무

지난 여름 정원의 작은 연못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8년 만에 연꽃이 핀 것이다. 영산에서 주신 연씨를 두 손으로 한 웅큼 쯤을 연못에 넣었는데, 3~4년 만에 아주 조그만 연잎이 연못 위에 떠올라 작은 물방울을 머금고 있기 시작하더니, 매년 연잎 줄기가 아주 조금씩 굵어져서 나오곤 하였다. 과연 언제나 꽃을 피우려나 하던 끝에 모처럼 햇빛이 여유롭던 여름을 만나 놀라운 결실을 가져온 것이다.

서울교당에 있는 은행나무 밑에서 떨어진 은행알로부터 싹을 틔운 1년생 은행 2개를 가져왔다. 살지 죽을지 모르지만 공들여 살펴주니 제법 컸는데, 그중 하나가 봄은 왔건만 새움이 보이지 않았다. 영주(靈呪)를 붙여주고 외워주며 말을 건넸다. “너는 살아야 한다, 제발 죽지 말아라~!!!” 지금 은행나무 두 그루는 사람 키보다 크게 자랐다. 이 외에 이곳에는 중앙중도훈련원 단풍나무 밑에서 싹을 틔운 빨간색 단풍도 한 그루 자라고 있으며, 모 교무님이 챙겨준 열 포기의 구절초 모종은 이미 쾰른교당 정원의 터줏대감처럼 자릴 잡아 지평을 넓히고 있다.

어느 순간 낯선 땅에 떨어진 한 알의 씨앗처럼, ‘해외교화’라는 거창한 말은 어쩌면, 우주라는 공간 어느 지점에 떨어져 보이지도 않는 점으로부터 시작되는, 누군가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그러나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절박함과 압박을 기본으로 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모국어가 아닌 전혀 다른 언어권에서 문맹으로 출발하는 무모한 용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한 점이 없다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티끌만큼이나 작은 한 점처럼 나는 독일에서 살게 됐다. 오랫동안 지역 내에서 가장 험하고 습기찬 곳, 개똥을 아무 곳에나 누게 해도 되는 곳이었던 숲자락, 억지로 나가게 된 사람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곳에서 어딘가에 떨어진 작은 씨앗처럼 쾰른교당 교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한 점으로 시작한 존재가 어디 이곳뿐이겠는가! 게다가 죽은 듯 다 떨구고 서 있던 나무는 어느새 새움을 틔우며 “넌 아직 겨울이냐?”고 바라보는 듯 했다.
존재감을 키워가는 방법은 세 가지, 몸과 입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우리는 쾰른교당이 중앙총부로부터 설립허가를 받은 다음날부터 당시 운명적으로 해외개척교화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이명희 교무님으로부터 시작된 기도를 지금까지 쉬지 않고 있다. 기도의 위력이 삼세를 관통하고 우주에 울려 퍼지길 염원하면서. 삶의 공간에서 들리는 수많은 소리들, 다양한 에너지의 파장들 속에 일원대도의 법음이 매일매일 공간을 확장해나가리라는 확신으로. 하루쯤 마당을 쓸지 않는다고 무슨 일이 생기냐고들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명씩 지나다니는 진입로와 마당을 관리하는 일은 우리의 존재감을 표현하는 아주 구체적인 방법이 될 수 있었다. 이제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조차 “그곳이 바로 낙원”이라고, “이곳이 이렇게 변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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