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근아, 행복하냐?
글. 이도근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이 길을 걷고 있는 게 어느덧 14년.
원불교와 인연이 없었던 나는 원광중학교에 다니며 원불교를 만나게 되었고, 그러다 고등학교 진학 후 친구를 따라 탁구를 치러 간 곳이 정토회교당이었다. 어떤 인연이었는지 몰라도 그때부터 내 삶은 정해진 듯, 나는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다.
유치원 때부터 전무출신의 서원을 세우기 전까지 수학자가 되고자 했던 나. 그런 나에게 단 한 번 던져진 질문이 나의 꿈을 바꾸어 놓았다.

그 시절의 나는 ‘과연 지금까지 꿈꾸었던 것을 이루면 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또,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웃고 행복해질까?’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확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혼란스러울 때면 매주 토요일마다 학생법회를 보기 위해 찾았던 교당과, 교당에서 뵙던 교무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교당을 찾으면 언제나 반가이 맞이해주시는 교무님의 모습이야 말로, 내가 꿈꿔왔던 모습이었다.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확신,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거란 믿음이 들었다. 소태산 대종사님이 누구신지, 일원상서원문도 외울 줄 몰랐던 나는 그렇게 서원을 세웠다.

전무출신의 첫 시작인 간사생활을 좌산 상사님을 모시며 기틀을 닦았고, 지금 교무 4년 차 때까지 쉼 없이 달려오고 있다. 군대 말년 휴가를 나와서는 서원관 동선을 나며 2월 27일에 전역하여 2월 28일에 기숙사에 입사해 복학을 했으니, 정말이지 틀린 말이 아니다.
원불교에 들어와 항상 수많은 문을 열고 건너왔다. 이 문은 자력과 타력의 힘을 아울러 쓸 수 있게 해줬다. 내가 주인인 문은 열쇠나 비밀번호를 눌러서 문을 여닫는 것처럼 스스로 수행의 힘을 쌓으며 자력으로 열고 들어갔고, 내가 열지 못하는 문들은 주위의 도움과 사은님의 은혜 속에서 열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많은 문을 지나며 교무의 생활을 하고 있다. 이따금 거울을 보면 찡그려진 내 모습이 비추곤 한다. 내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화가 나기도 하고, 힘든 일을 하다보면 짜증을 내기도 한다.
솔직히,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지금까지의 길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수많은 경계 속에서 멈추고 싶기도 했고, 쉬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경계들을 이겨 낼 수 있게 해준 힘은 앞에서 이끌어주시는 스승님의 가르침과, 주위에 언제나 함께해준 동지 도반들과, 뒤에서 항상 응원해주시는 부모님이다. 나의 힘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 언제나 든든한 지원군인 사은님과 대종사님, 스승님, 동지 도반들, 부모님이 계시기에 걱정이 없다.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것이다.

매일 저녁심고 시간이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한다. ‘도근아, 행복하냐?’ ‘행복합니다.’
건너야 할 문은 앞으로도 아직 많이 남았다. 문을 건너면서 나 스스로도 진정한 행복을 찾고 그 기쁨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다. 허공법계에 이 기쁨의 씨앗이 심어지고, 아프고 힘들어하는 이들의 마음속에 이 기쁨의 씨앗이 건네져 은혜로 싹틀 수 있기를 두 손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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