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四季)도 추억으로 남을 날이
글. 박성철

이번 여름 더위를 불더위라고 한다. 그도 모자라 가마솥더위, 찜통더위, 폭염 등,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이 모자랄 지경이다. 2007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고 더운 날씨가 연일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 가고 있다. 정부에서도 폭염피해를 재난으로 규정할 것을 검토하고 있으며, 언론매체에서도 연일 주요뉴스로 생중계하고 있다. 이웃인 일본 역시 최고의 더위라고 야단법석이다. 이번 더위가 지나면 내년 여름은 좀 나을 것이란 바람을 가져보지만 그 바람은 어쩌면 상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일찍이 기상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기상전망을 보면, 지난 100년 동안 여름은 37일 길어지고 겨울은 20일 짧아졌다고 한다. 이런 온난화 현상 때문에 앞으로 쌀은 2모작을 하거나, 망고 등 아열대 작물을 키우는 농가가 늘어나고, 바다에서는 가자미, 청어, 명태, 대구 등 냉수성 어종은 감소되고 갈치, 멸치, 삼치 등 온수성 어종이 증가하며, 산림의 변화로 희귀동물들의 서식지가 사라진다고 한다. 폭염, 열대야 등이 일어나고 2050년이면 강원도까지 아열대로 변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런 발표가 있기 전에도 ‘봄인가 싶으면 여름이고, 가을인가 싶으면 겨울’이라는 말을 흔히 들었다. 예전엔 봄의 전령사라는 산수유 꽃을 필두로 개나리, 목련, 벚꽃 등이 순차적으로 피었지만 어느 땐가부터는 한꺼번에 피었다. 제주도에서나 생산되던 아열대 과일도 남해안에 상륙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명태, 대구 등도 인공부화를 시켜 방류한다지만 그것마저도 냉수성을 따라 가버리는지 우리 해역에서는 잡히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기상변화는 화석연료의 사용과, 개발과정에서 숲을 파괴하면서 커진 온실효과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천지가 무상으로 주는 태양열도 부족하여, 그 열을 가공 집약시켜 발전을 하기도 한다.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그 안에 연료를 이용하여 봄이나 여름에 먹던 딸기, 참외, 수박 등을 겨울에도 먹는다. 어디 그뿐이던가? 여름에 피어야할 꽃들도 겨울에 얼굴을 내민다. 어느 것이 제철 과일이고 제철 꽃인지 분간하기 힘든 세상이다. 젊은이들에게 딸기, 수박의 제철이 언제냐고 물어보라. 겨울이 제철이라고 답하는 친구들이 많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나도 어느 것이 제철 과일이고 제철 꽃인지 한참을 계산해야 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열대 과일도 낯설지 않다. 시장에 나가보면 흔한 게 바나나, 포도, 망고, 파인애플, 그리고 이름도 모를 열대과일들이다. 이런 열대과일도 비닐하우스를 이용하여 아열대 기후를 만들고 그 속에서 키워낸다. 사람이 만든 기후로 계절에 관계없는 먹거리가 풍성하고, 열대지방에서나 먹던 먹거리를 우리나라에서도 생산하여 먹고 있다. 외제 수입품을 좋아하던 사람들도 열대과일은 국산품을 좋아한다니, 어쩌면 이 또한 감사할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봄에는 아름다운 꽃, 여름은 푸른 녹음, 가을은 화려한 단풍, 겨울은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눈송이의 사계절은 우리의 자랑거리다. 이런 사계절이 없어지고 사람이 아열대 기후를 만들지 않아도 될 날이 온다는데, 반가워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예전엔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하늘도 무심하지.”라며 하늘을 원망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번 더위가, 기상 이변이 아닌 우리들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기록적인 더위는 천지가 우리에게 주는 은혜가 무엇이며 그 은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용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눈앞의 이익만 챙기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 같다. 사계절을 자랑했던 우리나라엔 아열대가 오고, 세계의 기후는 어떻게 변할지 모를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천지가 주는 은혜에 감사하고 무엇이 올여름처럼 혹독한 폭염을 몰고 왔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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