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참 가혹하다
글. 노태형 편집인

바보가 되었다.
8월 14일, 정수위단원 후보 54인이 발표되면서 그 대상에 속했던 나머지 700여 명은 일제히 원하지도 않던 탈락자의 멍에를 써야만 했다. 대체적으로 일정 기간만 채워지면 정수위단원 후보대상에는 자동으로 올라가게 되지만, 개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후보로 선별되거나 탈락하게 된다. 여기에 은근 기대를 가졌던 사람은 그 상처가 클 것이고, 아예 기대하지 않고 담담한 마음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후보자들의 명단을 확인하면서 씁쓸함은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후보자 선정의 기준이라도 명확히 제시되어 있다면 조금은 납득이라도 할 텐데…. 아무리 봐도 자기편을 고른 것인지, 인지도로 고른 것인지 고개가 갸웃해진다. 더구나 정수위단원은 교단의 얼이라고 했는데, 어찌 이리 하류 정치의 냄새가 진동하는지. 도대체 선정 기준이 뭘까. 더 우려되는 부분은 각자의 영역에서 묵묵하게 일해 온 ‘참된 사람들의 교단에 대한 충성도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들러리가 되었다.
정수위단원 후보에 선정되었으니 참으로 영광이긴 하지만, 낙선이라는 쓴잔은 가슴에 꽂히는 비수가 된다. 입이 달렸으니 무엇이라고 말이라도 해보고 떨어지면 속이라도 후련하련만,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 벙긋 못하게 하고선 선거라고 하니 이 또한 해괴하다. 뜻도 없는 사람을 후보자 명단에 올려 한 달 내내 구설에만 오르내리고 떠도는 헛소문과 개인사까지 들춰지면 감당하기 어려운 번민이 찾아온다. 참 가슴 터질 일이다. 이만큼 비싼 들러리가 어디 있을까.

그나마 대상자들이 대부분 지천명을 넘긴 나이들이니 참을성이야 없겠는가. 하지만 결국 남녀 각각 9인을 위해 모두를 들러리 만드는 조직에 무슨 희망을 품고 살까 걱정은 된다. 그러기에 이번 선거에서 뽑힐 남녀 정수위단 18인은 ‘오직 원불교를 생각’하는,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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