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한 욕심
글. 고현도 장흥교당

큰 화분에 마디호박 두 그루를 사다 심었다.
꽃도 피고 열매도 맺어 너무 좋아 날마다 숫자를 세어가며 손녀딸에게 “호박꽃이 피었다~.” “오늘은 호박 열매가 맺었다~.”를 확인시켜주며 즐거움이 샘솟았다. 날이 갈수록 쑥쑥 자라는 호박을 더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한의원에서 나온 한약 찌꺼기를 수북하게 부어주었다.
그런데 이틀, 사흘이 지나자 호박이 시들기 시작하더니 맺혀있던 호박도 꽃도 다 떨어지고 말았다. 한약 찌꺼기를 숙성시킨 후에 거름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그냥 주었기 때문인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호박을 통해 내가 보였다. 지금 이 순간 행복을 잊고 다른 욕심을 찾아다니고 있지는 않은가? 너무 욕심을 부리면 저 호박처럼 애만 쓰고 맺은 꽃과 열매마저 죽게 만들듯, 내게 가까이 있는 행복도 멀어지겠다는 감상이 든다. 저 호박의 거름도 숙성기간이 필요하듯 혜와 복도 숙성시켜 장만해야겠다. 본성자리에서 나를 살피며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을 없게 하여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공부인이 될 것을 다짐한다. 큰 공부하게 해 준 장렬히 희생된 호박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감사함을 전하며 전진 또 전진하리라.


그럴 수도 있지
글. 이정오 충주교당

아이들이 다 커서 나가고 나니 부부만의 단출한 식탁입니다.
나이 탓이기도 하고 옛 습관이 남아서이기도 하여 식사 준비와 설거지는 항상 아내의 몫입니다. 늘 국 끓이고 밥 지어 절차가 매우 복잡하였었지만, 요즈음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오늘 아침은 선식입니다. 식탁에서는 전기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가 뽀글뽀글 요란하게 들려옵니다. 식탁으로 다가가 보니 아내의 자리에는 숟가락과 젓가락이 나란히 정답게 주인을 기다리는데, 내 자리에는 젓가락만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혼자서 먹겠다는 뜻은 아니겠지….’ 이걸 바라보는 내 마음의 눈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내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내 마음이 보입니다.
수저꽂이로 다가가 숟가락을 뽑아서 들고 옵니다. 아내는 “허 참! 깜빡했네.”라며 놀란 표정입니다.
오붓한 식탁에는 가뭄에 고생하는 텃밭 옥수수 이야기꽃이 한 상 가득 피어오릅니다.


분별·주착을 버리니 보이는 것
글. 임도운 안암교당

우리 체육학과 내에는 여러 세부 전공들이 있다. 그 중 어느 한 전공은 정말 공부를 안 한다. ‘단순히 학위를 취득하러 온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등과 같은 약간의 선입견이 있다. 나 또한 대학원의 많은 수업을 들으면서 그 전공 사람들에게 그런 느낌을 조금씩 받아오고 있었다. 이번 학기 나는 ‘그’ 전공을 졸업하신 강사님의 수업을 수강했다.
사실 ‘그’ 전공과 법은 같은 인문사회계열이긴 하지만 관계는 깊지 않다. 교수님께서는 초반부터 지금까지 ‘내가 스포츠 법 전공자가 아니라서 죄송하다.’는 이야기만 반복하셨다. 강의 자료를 보고 읽는 식으로 수업하시니 그 전공에 대한 선입견은 다시 올라왔고 나름대로 판단을 하기 시작했다. ‘아휴….’
2주 전 수업에 늦으신 교수님은 허겁지겁 강의실로 들어오셔서 ‘늦어 죄송하다.’고 이야기하신다. 수업 중, 스포츠 법 전공자가 아니라 정확하진 않다고도 하신다. 나는 선입견으로 판단하고 싶지 않았다. 자성자리는 분별심, 주착심도 없는 자리라고 하기에 판단하지 않고 멈춰보았다. 신기하게도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선입견들이 사라지는 듯 했다. 마음이 참 편안했다. 강사님의 존재만 느껴졌고, 나는 수업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의미 있는 경험이다. 분별심과 주착심이 없는 마음, 탐진치에 끌려가지 않는 마음, 앞으로 더 연마하고 연습해보아야겠다.


우리 집 부처님
글. 서경인 장흥교당

원불교를 처음 알게 된 건 큰 아이를 원광유아원에 보내면서였다.
그때 내 삶은 불만 가득하고, 늘 자신을 탓하며, 나만 불행하다는 생각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법회시간에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라는 법문이 들렸다. 내 마음을 어떻게 아셨는지 교무님께서는 “남편을 부처님으로 모시라.”는 법문을 해주셨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시절 불만 가득했던 마음은 긍정의 마음으로, 남을 탓하는 마음은 나를 살피는 마음으로, 나만 불행하다는 생각은 ‘내가 가장 행복해서 미안하다.’는 생각과 ‘우리 함께 행복해요.’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변화되기까지 ‘남편이 부처이며 내가 할 일은 불공’이라는 생각과, 인과를 믿으며 나를 살피는 공부를 한시도 놓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있었다. 오늘도 난 내 앞을 지나가는 남편님의 궁둥이를 팡팡 친다. 남편이 “왜 때려~.” 하면 나는 “그냥, 좋아서….”라고 답한다. 남편님의 표정이 부처님을 닮아감을 느낀다.


가장 크고 제일 좋은 것
글. 김주신 서울교당

갑자기 교무님이 집에 오신다는 기별을 받고 부랴부랴 집 앞 마트로 향했다. 제 빛깔을 내며 몰캉몰캉한 과일들이 예쁘게 포장된 상태로 ‘제발 나를 사가라.’며 유혹하고 있었다. 나는 눈에 띄게 저렴한 단내 넘치는 색색의 과일 여러 개를 집어 들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잠시 뒤, 교무님 앞에서 과일을 깎던 어머니 얼굴의 표정에서 당혹스러움을 읽었다. 보이는 곳은 정말 흠집하나 없이 매끈했으나 뒷면은 뭉그러지고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었다. 저렴한 가격에 여러 가지를 살 수 있다는 꼼수와 원래 벌레들이 더 맛있는 것을 먼저 골라 먹으니 당도는 최고일 것이라고 스스로를 포장해보려 한 것은, 결국 스승님을 모셔놓고 대접을 하는 부모님의 얼굴까지 부끄럽게 만들어 놓았다.
아무렇지 않게 맛있게 드시고 가신 교무님을 뒤로하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우리 가족이 먹을 거라면 상관없지만, 정말 돈이 없어 과일을 하나만 사야 하는 경우라도 스승님께 드리는 것은 가장 크고 제일 좋은 것으로 드려야 하는 것이 예의다. 꼭 유념하도록 해.”라고.
제철과일을 풍성하게 만나는 여름이 오면 늘 스승님과 집에서 날 가르쳐주시는 또 다른 스승님(모친)이 생각난다. 가장 크고 제일 좋은 것. 그래서 요즘 <대산종사 법문집> 1편, 신심편이 더 잘 읽힌다. 보고 싶다. 나의 심사(心師)이신 모든 스승님께 보은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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