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는 살 수 있어도 시간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많아… 황금보다 더 소중한 ‘지금’의 중요성 강조
글. 박정원  월간<산> 편집장·전 조선일보 기자

시간은 가고 또 오는 것인지, 한 번 간 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인지…. 물론 경우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한 번 지나간 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절실히 느껴진다. 때로는 젊은 시절 잘못된 삶을 산 부분은 컴퓨터처럼 포맷하거나 리셋팅해서 새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절대 포맷해서 새로 포장할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그래서 먼저 산 사람들의 삶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그 삶의 지혜가 가끔은 잔소리로 변해 부자(父子) 간, 노소(老少) 간의 갈등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먼저 산 삶의 교훈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예술은 길지만 인생은 짧다.’라는 표현보다 ‘인생은 짧지만 그 교훈은 길다.’가 나이가 들수록 더욱 다가오는 현실이다.

나이에 따라 세월의 속도도 달리 비유한다. 10대는 시속 10㎞의 속도로 느릿하지만 50대는 시속 50㎞에 비유한다. 점점 더 세월이 빨라지고, 그 세월의 속도만큼이나 인생의 시간에도 더욱 가속이 붙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격언과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미 널리 알려진 구체적 사례를 한 번 들어보자. 세상에는 중요한 세 가지 금이 있다. 그 첫째는 돈을 상징하는 ‘황금’, 두 번째는 음식을 상징하는 ‘소금’, 세 번째는 시간을 상징하는 ‘지금’이다. 흔히 하는 말로 “세 가지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무엇을 선택하겠느냐?”고 묻는다. 100이면 90 이상이 “황금”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돈만 있으면 소금도 살 수 있고, 시간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돈으로 소금은 충분히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돈으로 시간, 즉 지금이나, 나아가 모든 것을 살 수 있을까?

마이클 샌델 교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What money can't buy?)>이란 책에서 도덕적 한계와 재화의 가치를 적절하게 평가하는 방법을 결정할 철학적 프레임을 제공하고 있다. 도덕과 재화를 조화롭게 유지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함께 공동사회를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동시에 제공한다. 그가 든 예를 보면 쉽게 다가온다. 아이의 성적 향상을 위해 아이가 책을 읽을 때마다 약간의 돈을 주는 것은 단기적으로 아이의 독서량을 늘릴 수 있겠지만 아이는 독서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쯤으로 여기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아이에게 주는 돈은 ‘독서의 즐거움 때문에 책을 읽는’ 높은 차원의 규범을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읽는’ 낮은 차원의 재화의 가치로 대체하는, 도덕적으로 타협된 일종의 뇌물이라는 것이다.

‘돈으로 시계는 살 수 있어도 시간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어도 잠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책은 살 수 있어도 지식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의사는 살 수 있어도 건강은 살 수 없다. 돈으로 관계는 살 수 있어도 사랑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집은 살 수 있어도 가정은 살 수 없다.’와 같은 사례는 돈과 가치를 적절히 규정짓는 개념들이다. 결국 인간의 자발적 의지와 본인의 높은 차원의 규범과 가치가 개입되어야만 의미있고 행복하게 된다는 맥락과 통한다.
기본적으로 돈의 속성은 버는데 있는 게 아니라 쓰는데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 ‘개 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고 한다. 돈을 어떻게 버느냐보다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가르침이다.

돈은 버는 것보다 사용하는데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지만, 시간은 현재 이 순간,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젊었을 때 허투루 쓴 시간은 절대 돌이킬 수 없다. 인생의 멍에처럼 따라 다닌다. 그것을 극복했을 때 또 다른 시간의 가치가 기다린다. 이와 같이 시간은 다면성의 가치를 지닌다. 
노력하는 사람의 시간과 허투루 쓰는 사람의 시간은 ‘시간’이라는 의미에서는 같을지 몰라도 그 가치나 결과에 있어 엄청난 차이를 부른다. 젊었을 때는 그 시간의 가치를 잘 모른다. 시간이 무궁무진한 줄 안다. 시간이 가고 또 오는 걸로 안다. 하지만 한 번 간 시간은 절대 오지 않는다. 과거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은 절대 같을 수 없다. 과거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절대 같을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시간은 ‘지금’을 말한다.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예로부터 많은 선인들이 얘기했다. <귀거래사(歸去來辭)>와 <도화원기(桃花源記)>로 유명한 중국 도연명은 ‘성년불중래 세월부대인(盛年不重來 歲月不待人)’이라 했다. 한창 때는 다시 오지 않고,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가치는 황금보다 더 소중한 것이다. 그 지금을 둘러싸고 있는 요소들은 가족, 친구, 인간관계 등 결국 관계들이다. 그 관계가 시간을 결정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본인 자신이다. 시간은 가고 또 오는 것이 아니라, 한 번 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면 지금의 가치를 더욱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법정 스님도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고스란히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끝없이 변화하면서 생성되는 것이 생명 현상이므로, 개인의 의지를 담은 노력 여하에 따라 그 인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되풀이되는 범속한 일상을 새롭게 심화시키는 데서 좋은 일은 이루어진다. 일일시호일(日日時好日)’이란 글을 남겼다. 날마다 좋은 날은 결국 본인의 의지에 달렸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한 번 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지금’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면 인생도 더욱 보람 있어지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무더운 여름 무릉도원을 찾아 마음의 여유를 즐기면서 지금의 소중함을 느껴보는 것도 인생의 낙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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