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수위단이다!
장오성 교무·원광대학교병원교당

종교가에서 선거에 무슨 그리 큰 관심들을 보이겠냐만, 수위단 선거가 코앞인데 너무 잠잠하니 우려된다. 큰 판이 바뀌는 시기인지라 기대감이 없을 리 없고, 경험상 조용히 치르는 게 나쁘지 않겠다는 나름의 셈법들이 있지 싶다. 적합한 품성과 역량을 갖춘 분들이 교단 머리에 해당하는 복잡한 직책을 맡아줄 수 있도록, 여튼 선거는 잘 치러져야 한다. 
기성종단을 벤치마킹하며 모든 방면에 형식들을 갖춰가느라 여념 없는 가운데 개교 백주년이 훌쩍 지났다. 벼도 껍질부터 생기고 알맹이가 채워지는 법이라, 형식 없이 내용이 들어찰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결과적으로 외연이 넓어지고 교단을 알아보는 이들이 제법 많아졌으니 충분히 의미 있었고 교단에 큰 효를 했다.
허나 더 이상은 아니다. 거의 모든 형식과 제도가 시대에도, 교법정신에도 맞지 않는다. 이미 벼랑 끝에 있다. 이전 방식이나 정책이나 제도들을 놓지 못한 채 조금 손보는 식의 개혁을 원하면 벼랑에서 추락하게 만드는 불효막심한 리더가 될 것이다. 구태의 신념들을 싹 내려놓고 일원주의 혁신사상을 구현할 새 판이 필요하다. 3대 말 4대의 문을 열게 될 지금이야말로 다 털고 새 판을 짜야만 할 적기다!
새 시대에 맞는 판짜기의 표준은 <대종경> 서품에 명시된 혁신론이면 충분하다. 개벽시대에 맞춰 종교 본연의 나아갈 바가 온전히 제시돼 있다. 그대로 믿고 적용하며 나아가면 된다. 설령 조금씩 실패해도 지금보다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성과를 보려 말고, 실패를 통해 성장하며 우리다움, 교법다움에 근원하여 새로운 시도들을 계속해야 한다. 기성 종교 엿보며 따라할 일이 아니라, 우리 것을 배워가도록 당당히 앞장서 갈 일이다. 그 책무는 이번에 선출될 수위단의 어깨에 놓여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수위단은 교리와 교법에 대한 이해가 투철해야 한다. 교리를 자기 방식으로 이해하는 오류를 벗어나 참다운 신앙수행을 하고 대중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면 견성은 필수여야 한다. 그래야 일원 교법에 표준해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모든 문제에 바르게 답을 줄 수 있다.
소통이 가능하고 변화에 대비할 줄 아는 유연한 사람이라야 새로운 판에 어울리는 수위단 자격이 있다. 독단적 성향으로 자기 방식을 고집하여 소통에 장애가 있다면 결격이다. 타종교에 빗대기를 일삼거나 전통이나 문화, 기성 교도들의 통념만 거론하는 고정관념으로는 소통을 기대하기 어렵다.
새로 선출될 수위단원은 교화력을 갖춘 교화경험자에서 나오기를 희망한다. 교화현장에서  체화된 감각이 없다면 인격이 훌륭해도 적임자는 아니다. 교화는 사람을 다루는 일이라, 물건이나 숫자나 학문 다루듯 생각대로 척척 되는 것이 아님을 해본 사람은 다 안다. 풍부한 교화 경험과 전체를 보는 행정경험을 두루 갖춘 이가 균형 잡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새 지도자에게는 곧 당도할 통일시대와 세계교화를 전개할 세계보편종교의 큰 그물을 짜낼 역량도 필요하다. 그런 일들을 해낼 무수한 인재 유입을 위해 원불교학과를 모두에게 활짝 열어 재가출가, 남녀, 연령에 차별 없이 모든 방면에 주인들이 쏟아져 나오도록 열린 정책을 펼칠 울타리 없는 사람이길 바란다.
그런 보석 같은 사람을 어찌 알아보고 검증할 수 있을지도 숙제다. 또한, 적어놓고 보니 역설적이게도, 각 조목들은 수위단에게만 요구되는 품성과 역량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갖춰야 할 공부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각자가 그런 자격들을 고루 갖춰간다면 교단에도 자신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복된 일이겠다.


정수위단회 재가 참여와 교단 운영방향
박시성 부산원음방송본부장

원불교는 새로운 100년을 맞이하여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새 수위단원 선출과 종법사를 선출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교단의 미래를 짊어지고 가야하는 숙명적 한 해를 맞이하고 있다.
이때에 다양한 목소리가 교단의 여기저기에서 대두되고 있다. 교정 참여에 있어 재가가 소외된 채 현행대로 출가 중심으로만 나아간다면 교단의 미래는 기약할 수 없다. 이에 재가들의 교단에 대한 불만과 불신은 극에 달하고 있으며, 출가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지난 30년부터 교단의 성장 과정에서 작금에 있어 교도는 해가 거듭할수록 청소년은 거의 없으며, 있는 교도들마저 고령화로 감소하고, 방만한 법위사정, 전무출신 지원자의 급감, 거진출진의 교정참여 소외, 훈련의 비효율적 운영 등으로 교도들은 맥이 빠져 있는 실정이다. 출가 교무님들의 경직된 모습과 관료화되고 비민주적인 운영, 그리고 출가 교무님들의 기관의 당연겸직 등으로 기관의 비능률적인 운영의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우리 원불교의 공화 제도의 운영이념과 실천현장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이의 제일 큰 원인 중에 하나는 출가중심의 교단 경영에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하나는 교단의 최고 의결기관인 정수위단회의 단원 선출을 그동안 출가 중심으로만 진행해온 것에 대한 과감한 혁신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하여 교단운영방향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다행히 이제 수위단의 후보추천을 출가로 제한한 문호를 재가로까지 개방하도록 법이 개정되었다. 이에 효율적 운영을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을 제시하고 실시해야 한다.
첫째, 현재 정수위단, 봉도수위단, 호법수위단을 통폐합하여 정수위단원 구성에 출재가 동수로 참여하여 새로운 의결기관으로 탄생되어야 한다. 그래야 항상 출가재가들이 합심하여 나아가는 교단과 교당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둘째, 이에 상응하는 실천을 위해서는 수위단 후보추천위원을 출가재가 동수로 정해야 한다. 과거 출가수위단원 역임자 중에서 후보추천위원을 담당한다면, 법 개정의 실천의지가 없는 것이다. 출가재가 중 인재를 두루 발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수행방안을 신속하게 마련해야 어느 한편에 기울지 않고 재가출가가 함께 교단을 운영해 갈 정초적,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교단의 최고 의결기관인 정수위단회의 비민주적인 의사결정과 다양한 의견을 내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악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원불교는 더욱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님의 일원대도 정법을 가지고도 낙원세상을 만들어 갈 수 없는 교단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셋째, 앞으로의 교단 운영은 출재가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관계로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합력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의 실질적인 교화활동을 전개하기에 난관이 너무 많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교단운영의 전문직에 실질적인 재가 참여로 교단 전체 출재가들이 차별 없이 운영하여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에 맞추어 나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상호견제와 협력하며 책임과 권한을 함께 하는, 새로운 낙원세상을 만드는 교단으로 대혁신, 대변화로 거듭나야 한다.
그동안 100년의 짧은 역사 속에서 교단은 많은 외형적 성장과 자산증대로 인해 출가들만 운영하기에 벅찰 정도로 비대해졌다. 재가참여로 교단 전체 분위기 쇄신과 참여 의식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계속해서 재가를 배제하고 무시하고 염려한다면, 초기 교도들의 신심이 세월의 흐름 속에서 노쇠하여 큰 물고기를 놓치고 송사리도 살 수 없는 메마른 강이 되어 버릴 정도로  파장이 예상된다.
이제는 결코 재가출가 공동중심의 공화제 교단 및 교당운영과 교화를 하지 않고는 우리 교단의 앞날에 희망이 없다. ‘재가 없는 출가는 없다.’라는 절박한 마음을 확실히 인지하고 ‘함께’ 해야 한다. 교단의 어느 기관과 교당도 재가의 적극적인 참여만이 우리의 살길이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우리는 영원히 작금에 교단의 운명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기회가 왔을 때 놓쳐서는 결코 안 된다. 앞으로 100년의 초석은 이번에 선출되는 새로운 수위단과 종법사님과 함께 지금의 위기를 반드시 극복하여 더욱더 똘똘 뭉쳐야 한다. 그리하여 일심합력과 사무여한의 정신, 그리고 무아봉공의 공심을 가진 모범적인 교단으로 거듭나 대종사님의 참 제자로서 세세생생 불공하는 교단으로 다 함께 매진할 것을 기대해본다.


정수위단과 교화정체의 책임
홍현두 교무, 산동교당

6년에 한 번, 수위단회와 정수위단을 이끌 정수위단원을 선출한다. 수위단회는 교단 최고결의기관이며, 정수위단은 최상위 교화단이다.
수위단회와 정수위단을 이끌 단원이라면 한 마디로 다재다능, 즉 초능력을 가져야 한다. 물론 단원의 법위가 정사 이상이니 분명 초능력자다.
수위단회의 기능과 정수위단의 기능이 분리될 수 없는 현 교헌의 모순점을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수위단원 후보가 정해지고 선출에 이르기까지 주어진 짧은 시간. 그 시간 안에 최상의 선택을 해야 하는 대중은 괴롭다. ‘왜냐?’고 묻는 우문에 답하면 이렇다.
교단 최고결의기관인 수위단회의 결의사항 중 첫째는 ‘종법사 선거’이다. 수위단회에서 종법사를 선출한다. 교단의 주법(主法)으로서 교단을 주재하고 본교를 대표하는 종법사를 선출한다.
‘주법’이 무슨 말인지 원불교대사전, 원불교용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없다. 포털사이트 사전에 물으니 법률용어(主法 권리 의무의 성질, 종류, 내용, 주체 따위의 실체를 규정하는 법률)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단어보다는 ‘종법사는 본교, 즉 원불교를 대표한다.’에 방점이 있다. 누가  종법사가 되느냐에 따라 교단의 흐름이 결정될 만큼 ‘무소불위’이다. ‘무소불위’는 교화를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하는 요인이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교화가 정체되었는지 모르지만 기억에 없을 만큼 ‘오래’되었고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종법사의 무소불위는 수위단회의 ‘의결’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회의록을 열람해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수위단회는 의장인 종법사의 의중을 거역한 적이 거의 없다고 본다. 특히 ‘교헌개정’의 무산, 경산 종법사의 ‘지난 12년’은 더욱 아쉽다.
수위단회의 ‘종법사 선거’ 뿐 아니라 나머지 ‘10가지 결의사항’ 또한 수위단원에게 초능력을 요구한다. 지금까지의 수위단회에서는 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결의사항이다. 그렇기에 다가올 정수위단원들을 선출함에 있어 ‘교단 징계 받지 않은 정사 이상’이라는 기준 이외에, 후보들의 마음을 전혀 알 수 없는 선거방식 그리고 ‘재가교도’가 빠진 선거 제도 등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교단의 발전보다는 퇴보의 우려가 확실하다.
정수위단이 가진 최상위 교화단의 위상은 무엇인가? 교단을 운영하는 ‘10인 1단’의 통치조직으로서의 ‘최상위 교화단’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수위단회가 가진 기능 중에서 호법·봉도 단원을 포함한 최고결의기관이 ‘사업’이라면 정수위단원으로만 구성된 최상위 교화단은 ‘공부’로 나눌 수 있다. ‘공부’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교단의 얼’이다. ‘교단의 얼’이라는 뜻을 품고 있는 ‘최상위 교화단’에 있어서 호법·봉도 단원은 불필요한 구성이었다. 사업과 공부를 둘로 보지 않는 교단의 풍토에서 수위단회에서의 ‘최상위 교화단’이 의미가 있나?
대산 종법사 후반기부터 좌산 종법사, 경산 종법사에 이르기까지 줄곧 정체 내지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원불교 교화, 무엇이 문제인가? 그 첫 번째 이유를 최상위 교화단의 역할에서 찾을 수 있다. 최상위 교화단을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이 ‘교단행정’에 매몰되어 있다. 물론 법위가 정사 내지는 원정사이니 ‘공부와 사업’이 둘이 아니리라. 하지만 교단의 실정에서 보면 교화는 ‘백약이 무효’로 내리막길에서 돌아서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최상위 교화단이 ‘교단의 정신적 중심’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다. 교화도 ‘사업’이라면, 최상위 교화단은 ‘사업’마저도 능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그렇다. 일반 대중이 심사숙고하여 뽑은 교단의 지도자(정수위단원)들이 초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정수위단원의 능력이 부족하니, 정수위단원들이 뽑은 호법·봉도 단원 또한 능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래서 수위단회에서 선출한 종법사마저도 대중이 요구하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일까?
종법사의 경륜은 좋은데 그를 따르는 대중이 문제라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권력 구도상 최상위에 있는 종법사는 종법사를 선출하는 자격이 주어지는 정수위단의 후보들을 정하는 후보추천위원장이 된다. 또한 종법사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교단의 지도자들이 후보추천위원이 된다는 웃지 못할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런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정수위단 후보의 3배수를 정한다.
3배수든 2배수든 교단의 징계를 받지 않았고, 법위가 정사이니 무슨 문제가 되는가? 3배수보다 더 많은 후보를 살핀다고 해도 후보를 접해보지 못한 대중은 여전히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왜 열여덟 칸에 도장을 찍어야 하는지 모른다.
여기에 교단 침체의 이유가 있다.


적극적인 권리로 임하자
안성오 교무·청소년국

올해 출가 7년 차를 맞이하는 나는 6년 전 신규교무일 때 수위단 선거를 경험 하였었다. 굳이 경험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투표를 하면서 느낀 감정 때문이다. 출가한 지 반년이 갓 지난 신규교무가 무엇을 알아 수위단 후보를 뽑을 것이며, ‘이분은 뽑아야 해, 이분은 뽑지 말아야 해.’ 라고 들려오는 소리들을 기준 삼고, 왠지 이분은 잘하실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믿으며 투표를 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다시 수위단 선거를 앞두고 있다. 더구나 올해는 종법사 선거까지 있는 해이다.
그때보다 조금은 성장해 교단을 이해하고 교단의 미래를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으나, 또 누군가를 뽑아야 하는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다시 소극적이게 된다. 이유가 무엇일까? 수위단은 교단의 핵심 지도자들이며 종법사까지 결정하는 분들이기에 무엇보다 신중하게 뽑혀야 한다. 게다가 새로 뽑힌 교정원의 정책 방향으로 원불교 2세기 교화·교육·자선의 방향이 정해진다. 그렇기에 교단 언론에서 수위단 선거에 대한 안내와 특집기사를 통해 선거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분위기 만드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막상 주변에서는 아직 선거에 대한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6년 전, 5급교무 투표권 제한, 남녀교역자 결혼 문제 등의 이슈로 5급 교무들이 비상대책모임을 가지고 밤샘 토론을 했었던 적이 있다. 결국 투표권을 지켜내기는 했지만, 얼마만큼 그 권리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졌는지에 대해선 아쉬움이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권자로서 소극적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선거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 나누는 분위기와 마당이 형성되어야 한다. ‘종교가에서 무슨 정치에 관심을 가지나.’ 라든지, 우리 교당일, 개인수행이 먼저라는 생각은 5만 년 대운이라는 우리 공동체의 미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이렇게 해보자. 지금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붙잡고 원불교 2세기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그동안의 장애요소들을 어떻게 해결 해야하는지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지자. 이런 만남들이 활발히 이뤄지고, 소규모 모임들이 조금씩 큰 모임들로 확장하면서 생산적 대안을 담은 집단지성으로 발전해야 한다.
둘째, 소통(친절한 선거공보물)이 필요하다. 국가의 총선이나 대선은 말할 것 없고, 지방선거에도 후보자의 선거 공보물은 자신과 정책을 알리는 역할로 정성들여 만들어진다. 우리 정서에 후보자 개인이 공보물을 만들어 홍보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부탁드린다. 선관위에서는 미리 교단의 운영과 미래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는 질문지를 배포하여 거기에 나온 대답을 후보별로 정리하여 게재함으로써, 후보자에 대한 이해를 친절하게 도와주어야 한다. 선관위에서 진행이 어렵다면, 언론에서라도 꼭 진행되어야 한다. 이번 선거부터는 꼭 시행되어야 한다.
셋째, 책임감이다. 지금은 너무나 어려운 시기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인구가 급감하는 ‘인구절벽’의 시대이다. 그 어떤 지도자가 나와도 힘들 때이다. 이러한 때에 원하든 원치 않든 수위단 후보가 되면 원불교 2세기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그동안의 정책을 철저히 공부하여 교단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진행되고 있는 좋은 정책은 단기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바로 변경하지 않고 힘있게 진행해갈 수 있도록 믿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하늘은 입이 없어 백성의 입을 통해 말한다.’는 <논어>의 구절처럼, 선거를 통해 선출된 분들은 진리의 뜻으로 결정된 분들이다. 새로운 수위단원과 종법사에게 구성원 모두가 마음을 모으고 합력해야 한다. 앞으로 다가올 원불교 2세기의 문열이가 될 이번 수위단 선거를 기쁜 마음으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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