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부교무입니다
“그럼 혹시 교무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자 한동안 침묵만이 법당을 채웠다.
글. 박성근

교무훈련 참석 중인 큰 교무님의 부재로 일반설교를 할 때였다.
“반갑습니다. 극한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부교무입니다~.” 설교 시작을 알리는 내 인사말에 일반 교도님들이 다들 까르륵 웃으셨다. 최근 돈암교당에서는 ‘극한직업’이라는 단어가 화제다. 시작은 이러했다.
일요일 저녁, 원티스 입력을 마지막으로 모든 일과를 마치고 방에서 쉬고 있는데 경화 님에게 카톡이 왔다. 내용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풉’ 하고 실소를 터트렸다. 내용인즉슨 딸 유원이에게 “교무님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이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돌아온 유원이의 답변은 ‘극한직업’. 교무님의 삶이 매우 힘들어 보인다고 했다는 것이다.
‘극한직업이라고? 알게 모르게 내가 아이들 앞에서 힘들어했었나? 이거 실화냐?’ 경화 님의 말에 따르면 유원이는 어릴 때부터 교무를 하겠다고 말하곤 했었단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6학년이 된 지금은?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고 한다. 교정지도 때 황도국 교구장께서 “이제 돈암교당에서도 전무출신 배출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고 당부도 했었는데…. 유원이가 웃음을 주는 말을 했지만, 곰곰이 현재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됐다. ‘아이들에게 비치는 교무의 모습은 어떨까?’ 이전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학생법회 때 아이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얘들아, 너희들은 교무님을 어떻게 생각하니? 나를 보고 느낀 점을 말해도 되고, 너희들이 알고 있는 교무님들의 모습을 말해도 상관없어.” 처음에는 아이들이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조금 시간이 흐르자 한 아이가 “교무님은 스님하고 수녀님하고 섞어놓은 것 같아요.” “성직자이니깐 신성한 느낌이 있어요.” “가진 것이 별로 없는데 행복해 보여요.” 등의 답변이 나왔다.
생각보단 양호한 답변을 듣고 이어서 물었다. “그럼 혹시 교무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자 한동안 침묵만이 법당을 채웠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어색하게 만든 그 짧은 침묵.
“오케이 여기까지! 그런데 왜 교무가 하기 싫을까?” 하고 묻자 “교무님이 되면 절제된 삶을 살아야 하고, 모범적인 생활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전 싫어요.” “어른들한테 예의 바르게 하고 잘 모셔야 할 것 같아서 부담돼요.” “자유가 없어 보여서 싫어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래, 나도 죽어도 교무 안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교무잖아? 뭐 인생은 알 수 없지!’ 아이들이 교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 나름대로 소득이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래도 경화 님으로부터 카톡이 온 그날 나를 미소 짓게 했던 말이 있었다. “교무님~ 유원이가 힘들어하는 교무님을 위해 잘 보필한다고 합니다. 한번 믿어보세요~.”라는 메시지였다. 아! 그리고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유원이는 남자 교무님이 부교무님으로 와서 대단히 실망했었단다. 지금은? “유원아 지금은 괜, 괜찮지?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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