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론적·커뮤니케이션적·형이상학적·도덕적
차원에서 본 도(道)의 모습 
글. 김정탁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도(道)는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을까?
장자에 따르면 도는 드러나는 작용(情)이 있고 존재하는 증거(信)도 있지만, 하고자 함(爲)이 없고 형체(形)도 없다. 장자는 어째서 도에게 드러나는 작용이 있고, 존재하는 증거가 있다고 말할까? 사시사철의 변화와 밤낮의 등장이 어김없이 이루어지고, 또 모든 생명체는 한번 태어나면 죽기 마련이어서다. 이런 사실은 도가 드러나는 작용이자 존재하는 증거이다. 물론 이런 사시사철의 변화와 죽는다는 사실은 유위(有爲), 즉 하고자 함이 있어서 생겨난 게 아니다. 오로지 하고자 함이 없는 무위(無爲)로 이루어진다. 그런 탓인지 도의 형체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은 도를 인식론적 입장에서 설명하는 거다.  

장자에 따르면 또 도는 전할(傳) 수 있으나 받을(受) 수 없고, 터득할(得) 수 있으나 볼(見) 수 없다. 장자는 어째서 도는 전할 수 있지만 받을 수 없다고 말할까? 이런 도의 모습은 도를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의 수준 차이에서 비롯된다. 즉 도를 깨달은 사람은 도가 어떤 거라고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지만 도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전달받은 도일지라도 그걸 이해할 수 없어서이다. 그래서 도는 다른 사람과 함께 누릴 수 없는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다. 도는 터득할 수 있으나 볼 수 없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그건 도란 마음으로 느낄 뿐이지 눈으로 파악하는 게 아니란 의미이다. 즉 심안(心眼)으로만 도를 볼 수 있지 우리의 일반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오감으로 보거나 들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런 사실은 도를 커뮤니케이션적 입장에서 설명하는 거다.      

장자에 따르면 도는 모든 존재에 있어 스스로의 바탕(自本)이자 스스로의 근본(自根)이다. 이는 만물이 도에서 비롯된다는 의미이다. 사시사철의 변화와 밤낮의 등장도 도가 작용하므로 이루어진다. 사람에게도 도가 작용하므로, 태어나면 죽기 마련이다. 그래서 장자는 <천도>에서 “천지의 자연스런 덕에 환히 밝은 게 큰 근본(大本), 큰 근원(大宗)이니, 이것이 자연과 화합하는 것이다.”1)라고 말한다. 이렇게 보면 자본자근(自本自根), 즉 스스로의 바탕이자 스스로의 근본은 대본대종(大本大宗), 즉 큰 바탕과 큰 근원과 서로 통하는 개념이다. 장자에 따르면 도는 아주 오래전에 생겨나 지금까지 변함없이 존재해 왔다. 그래서 도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을뿐더러 사람의 입김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만큼 도는 순수하게 존재해 왔다. 이런 사실은 도를 형이상학 내지 존재론적 입장에서 설명하는 거다.      
장자에 따르면 도는 그 작용이 크지만 모습은 한없이 작다. 도는 하늘과 땅을 각각 낳았을 뿐 아니라 귀신을 신령스럽게 하고, 상제(帝), 즉 하느님을 영험케 할 정도로 그 작용이 엄청나다. 그렇더라도 도는 그 작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전혀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겸손하기 이를 데 없다. 이에 도는 태극(太極)의 위에 있어도 높은 척하지 않고, 육극(六極)의 아래에 있어도 깊은 척하지 않는다. 또 천지(天地)보다 먼저 생겨났어도 오래된 척하지 않고, 태고(上古)보다 오래되었어도 늙은 척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은 도를 도덕적 내지 윤리적 입장에서 설명하는 거다.

중국을 대표하는 모든 성인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도에 입각해서 살아왔다. 먼저 태고의 제왕인 희위씨(豨韋氏)는 도를 터득해 하늘과 땅을 손에 들고 다니면서 이것들을 서로 연결시켰다. 그럼으로써 천지의 자연스런 작용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또 복희씨(伏羲氏)는 도를 터득해 만물을 생성시키는 기(氣)의 모체로 들어갔다. 그럼으로써 원기의 근원을 관장해 농사법을 만들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이 닦아진 건 오로지 복희씨 덕분이다. 또 북두성(維斗)은 도를 터득해 그 위치가 조금도 틀리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북두성은 하늘에서 수많은 별들의 운행 지표가 되었다. 또 일월(日月)은 도를 터득해 운행을 멈추질 않는다. 그럼으로써 땅에서 절기(節氣)와 기후(氣候)에 따른 변화가 생겨나서 일 년이 사시사철로 구성되었다.   

감배(堪坏)는 도를 터득해 곤륜산에 들어가 곤륜산의 신이 되었다. 곤륜산은 멀리 서쪽에 있어 황하의 발원점으로 여겨지는 성스러운 산이다. 이 산은 하늘에 닿을 만큼 높고, 보옥이 나는 명산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춘추전국시대 이후 신선설(神仙說)이 유행함에 따라 사람이 마시면 죽지 않는 물이 흐르고, 선녀인 서왕모가 살았다는 신화가 이 산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또 풍이(馮夷)는 도를 터득해 황하에 노닐면서 황하의 신이 되었다. 황하란 중국에서 가장 긴 강인데 이 강의 유역은 토양이 비옥하고 물이 충분해 곡창지대를 이루었다. 이런 자연환경 덕분에 중국의 고대문명이 여기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견오(肩吾)는 도를 터득해 태산(泰山)에 살면서 태산의 신이 되었다. 태산은 중국 오악 중 하나로, 동악에 해당한다. 오악은 동악인 태산을 비롯해서 서악인 화산(華山), 남악인 형산(衡山), 북악인 항산(恒山), 중악인 숭산(嵩山)으로 구성된다. 또 황제(黃帝)는 도를 터득해 구름이 떠 있는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되었으며, 황제의 손자 전욱(顓頊)은 도를 터득해 현궁(玄宮), 즉 북방 궁전에 살면서 왕이 되었고, 우강(禺强)은 도를 터득해 북쪽 끝에 우뚝 서면서 북해의 신이 되었다.
서왕모(西王母)는 도를 터득해 소광산을 지키면서 늙지 않았고, 죽지 않는 불노불사(不老不死)의 선녀가 되었다. 그래서 늘 젊음을 유지해 그녀가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었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오래 살았다고 유명해진 팽조(彭祖)도 도를 터득해 순임금 때 태어나서 전국시대 패자였던 오백(五伯), 즉 제환공, 진문공, 초장왕, 오왕 합려, 월왕 구천에 이를 때까지 살았다. 팽조는 8백 살까지 살았다고 해서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아 왔는데, 이 글의 문맥으로 보면 훨씬 더 오랜 산 사람처럼 보인다.

상(商)나라의 재상 부열(傅說)은 도를 터득해 무정(武丁)을 도와 세상을 평정한 뒤 하늘에 올라 동유성(東維星)을 타고 기미성(箕尾星)에 걸터앉아 뭇 별들의 대열에 끼었다. 부열은 원래 담장을 쌓는 미천한 출신이었는데, 상나라 임금으로 즉위한 무정이 왕조를 부흥시키기 위해 조력자로 과감히 발탁한 사람이다. 부열은 무정의 바람대로 훌륭한 재상이 되어 상나라를 중흥시켰다. 이 얘기는 신분이나 직업에 관계없이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는 훌륭한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부열은 죽어서 별이 되었다는 전설을 남겼기에 장자도 그를 동유성을 타고 기미성에 걸터앉아 뭇 별들의 대열에 끼었다고 말한 거라 보아진다. 참고로 동유성은 북극성과 북두칠성의 가장 마지막 별 사이에 위치한 별자리이고, 기미성은 고대 28개 별자리 가운데 동쪽 일곱 개 별자리인 각(角)·항(亢)·저(氐)·방(房)·심(心)·미(尾)·기(箕) 가운데 마지막 여섯 번째(尾)와 일곱 번째(箕) 별자리이다. 그러니 동유성을 타고 기미성에 걸터앉았다는 건 동쪽 하늘에 있는 별자리에 올라 여기에 걸터앉았다는 뜻이다.
Ι교수·성균관대학교 소통학. smilejtk@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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