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신앙, 민간신앙,
고등·신흥종교와 현대과학
- 도학·과학 병진의 의미 -
글. 이정재

이원화와 양하운 대사모가 드린 기도의 형식은 민간신앙의 형태로, 자연신앙 혹은 원시신앙으로 분류한다. 그 어떤 교리나 원리가 없이 그저 마음을 모아 정성을 다하는 형식이다. 조선의 여인들은 이런 형식을 지키며 수백 년을 이어왔다. 당시 남성들이 드린 유교식 의례와 비교할 때 초라하고 미신스럽기 그지없다 할 것들이었다. 남성중심사회에서 변방으로 밀린 여성들은 종교나 신앙의 선택권이 없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그저 대대로 이어져 오던 원시신앙을 계승하는 도리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무속이나 민간신앙 관계자들에서 여성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부는 불교와의 인연을 맺을 수 있었으나, 그것도 유세를 할 수 있던 사람들에게나 주어지는 기회였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선대 이래 여성들에게 이어져 오던 신앙형태는 가정신앙, 마을신앙, 무속신앙 등이 전부였다.

가정신앙이란 성주신, 터주신, 칠성신, 조왕신, 철륭신 등에 비는 행위를 일컫는다. 집안의 해당 장소에 일정의 신이 있어 그것을 신체로 설정하고 기도를 올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자세한 것은 민속학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바, 오늘의 관점에서 볼 때 극히 원시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장 일반적인 형태인 부뚜막신에게 정화수를 떠놓고 비는 ‘조왕신 신앙’을 들 수 있겠다. 여성들은 가정의 대소사는 물론 자신과 자신에 관한 일체의 난관을 오로지 정화수 하나에 의지하며 조왕신에게 일심을 바쳤다. 때로는 집의 뒤편에나 장독대 옆에 마련된 칠성신 신체에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밤하늘에 대고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집 뒤편에 마련된 곳에서 천지신명께 기도를 올린 이원화와, 개암골 기도터에 가서 3년 정성을 드린 양하운이 기도를 드린 형식은 바로 이런 형식의 것이었을 것이다.

북두칠성과 조왕신 신앙은 유구한 역사를 가졌다. 인류의 시원적 신앙형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깊은 신화적 의미가 녹아있다. 북두칠성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중심을 잡아준다. 만생만인의 중심을 잡아주고 변함이 없는 영원성을 상징한다. 그를 향해 비는 기도는 자연에 대한 경외는 물론 자신의 중심인 참자아를 향해 비는 기원의 의미다. 현실을 초월하여 영원의 절대에 귀의하는 기원을 담은 신앙이다. 언제나 변하지 않으며, 자신의 중심을 이루며,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허공적 지향을 의미하는 것이다.
개암골은 처화가 삼밭재 기도를 올리러 가던 길 중간에 있는 곳으로 큰골기도터를 가리킨다. 이곳은 처화도 일찍이 정성을 드리던 곳이지만 후에 삼밭재로 장소를 옮긴다. 이곳은 동네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가정의 대소사를 빌던 장소였다. 이런 곳이 정해지는 내력은 대개 그 지역의 당골(세습무당)들에 의해 지정된다. 그들에 의해 신성성이 확보되었던 것이다. 물론 무당들이 산기도를 올리거나 굿을 할 때 쓰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동시에 마을의 동제를 지내는 중심지다. 소위 우주목으로 알려진 곳이며, 서낭나무 혹은 당산과 일치되는 곳이다. 마을의 정신적 중심, 신성성의 중심, 그리고 현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태초, 나아가 시공초월처의 의미를 가진다.

산신이나 당산나무에 대고 기도를 올리거나 정성을 드리는 것은 사실상 깊은 뜻을 가진다. 신화적 표현이지만 태초의 사건, 태초의 역사(엘리아데)로 이해되는 완벽한 상태를 의미한다. 현실에서 닥치는 온갖 문제와 왜곡은 원래의 상태가 깨졌기 때문인데, 기도와 제의가 이것을 원래의 완벽한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고 믿는 것이다. 즉 원시반본과 회광반조의 의미다. 한국은 물론 인류에게 남아 전하는 신화는 이런 내력을 담고 있다. 신화를 해석하여 얻어낸 결과를 볼 때 4, 5만 년 전 혹은 그 이전의 원시인들은 이런 신성한 태초를 알고 있었다. 여기에서 신성한 태초란, 언어도단의 입정처와 다르지 않은 경지다. 신화는 여기서 더 나아가 자연 친화적 자세를 견지하였다. 자연을 살아있는 것으로 직관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에야 비로소 제기하고 있는 환경철학을 이미 실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화는 완전한 상태가 무엇인지 그 안에서의 인간적 삶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그 어느 철학이나 교리와 조금도 어긋나지 않게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의 신화학은 이를 규명해내고 있다. 앞서 언급한 북두칠성과 조왕신 신앙이 이런 신화적 형식의 일환이었음은 당연한 것이다.

신화시대가 지나고 철학과 종교의 시대로 전향한 것은 인간적 삶의 조건과 인프라가 역사에 따라 변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인류는 또 다른 패러다임을 맞이하고 있다. 혹자는 다시 신화적 회귀의 시대가 왔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 신화적 상태란 과거의 형태는 아니다. 어느 한둘의 영웅이나 신을 중심으로 한 획일적-수직적 체계가 아닌, 다원적-수평적 체계로 전환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내천 사상이나 처처불상 사사불공과 직결되는 사유다.
이원화와 양하운 사모의 기도와 이들이 가진 신념이 무조건 원시적인 기복신앙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간단한 형식을 갖추고 오로지 일심의 정성을 간절하게 바치며 기도했던 것은 신화적 일체화의 지경이었다. 조선의 여성들이 수용했던 신앙을 미신의 정도로만 간주할 수도 없다. 그들의 진지함과 올바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조선대 도꾼들이 했던 전통기반 수련방식도 평가절하 할 수 없다. 미신으로의 편입관은 고등종교가 저지르는 과오다. 그 연장선에 있는 신흥종교의 자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신앙의 형태가 신화적 형식에서 경전과 계율과 규율의 형식으로 변화된 것은 사실이나, 그 근본 철학이 변화된 것은 아니다. 즉 인간의 삶에서 진정한 참자아를 발견하고 그를 주체 삼아야 한다고 했던 점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시대적 추이에 따라 표현이 다른 것뿐이고, 행동강령이 구체화되는 과정이 다를 뿐이다. ‘일체중생의 성품이 우주만유의 본원과 다르지 않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한편 인간은 현대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궁극과 실체에 대한 설명을 풀어내고 있다(물질개벽 시기의 특징). 인간의 육신에 대한 것은 우주의 진화과정을 설명하면서 낱낱이 밝히고 있고, 인간의 정신과 문화에 관한 것은 심리학과 철학, 종교학 및 인류학에서 많은 것을 밝혀내고 있다. 이 모든 것의 궁극에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이 뒷받침하며 정신과 물질의 작동 메커니즘을 설명해 내는 단계에 돌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주목되는 분야는 유전공학과 뇌과학이다. 그리고 이와 깊이 관여되어 있는 언어철학도 인간을 이해시키는 주요 학문분야가 되었다. 이러한 학문의 결과는 ‘삶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이며 삶 자체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고 그 정체는 무엇인가?’를 다루는 과정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이들의 연구가 가지는 궁극에 ‘인간의 존재와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피해갈 수 없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인류의 스승들이 제시한바, 신화, 신앙과 종교 및 철학 등이 충분히 다루었고 설명한 바 있다. 또한 현대과학은 이 모두를 합리적이며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였다. 특히 설명하기 어려웠던 절대자와 신 그리고 신비주의와 초월적인 세계에 대해서도 현대과학은 많은 것을 설명해내고 있다.
자연을 정복해가는 현대는 자연을 두려워했던 과거와 다르다. 과거엔 존재와 생존의 걸림돌이 자연(혹은 하늘)이었다면, 이제는 자연이 아닌 인간과 사회가 장애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부모·동포·법률이 모두 인간과 관련된 것이고, 천지도 원리적인 측면을 부각시킨 인간과 자연의 상생의 관계의 내용이 주종이다. 이것은 인간의 생존엔 이제 ‘자연’이 아닌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지식’이 중요 변수가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정전의 도처에 지식에 대한 강조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은 그 이유다.
원리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상황이 바뀐 것이다. 그것이 과거에는 대 자연적인 것이었다면 이제는 대 인간적인 것이 되었다. 천권에서 인권의 시대가 되었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가 여기에 있다. 진리적 신앙의 올바른 이해도 여기에 있다.
도학·과학 병진의 길을 모토로 하는 원불교는 이런 분야에 적극 관심을 가지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교화에 매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당위성이 부여되었음을 자각해야 하고 충분히 살려 써야 한다. Ι교수·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장. hogom@hanmail.net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