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보다 도덕이 앞서는 사회
글. 박성철

또 한 분의 전직대통령이 24년이란 중형을 선고 받았다.
역대 대통령을 지낸 분들의 말로(末路)가 비참하다 못해 처참하다. 초대 대통령부터 외국으로 망명을 하더니, 네 분은 교도소생활을 경험했거나 지금 교도소에 갇혀있다. 또 한 분은 흉탄에 맞아 생을 마감했으며 다른 한 분은 스스로 생을 거두었다. 나머지 전직대통령들도 국민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최고 지도자들의 현실이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두말할 것도 없이 탐욕(貪慾)이 이유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사람은 장기집권의 욕심에, 어떤 사람은 돈 욕심의 거미줄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일찍이 맹자는 “임금이 어질면 어질지 않은 백성이 없고, 임금이 의로우면 의롭지 않은 백성이 없으며, 임금이 바르면 바르지 않은 백성이 없다.”고 했다. 또 묵자는, “신하가 바르면 임금도 바르게 될 것이나 신하가 아첨하면 임금은 자신이 성인이라 여긴다. 임금의 덕이 많은 것도 신하에게 달려있고 덕이 없는 것도 신하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최고 지도자가 되면 국민과의 약속은 아랑곳없이 탐욕에 눈이 멀고, 그를 보필하는 주위 사람들까지도 진언은 고사하고 탐욕스런 마음으로 같이 한 타령되어, 사리사욕 채우기에 여념이 없나보다. 아직 사법기관에 적발은 되지 않았지만 가슴을 졸이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을지 모른다.

인지(認知)가 어둡던 옛날에는 삼세(三世)에 걸쳐 인과보응이 돌아왔지만, 인지가 밝은 지금은 당대에 인과보응을 받는다. 즉 현재의 삶에서 내가 지은 죄는 내가 받고 간다는 뜻이다. 요즈음은 찰나(刹那)의 인과라 하여 주면 바로 받는다고 한다. 그런 진리도 몰랐던 어리석은 분들이 나라의 대통령을 맡았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럼에도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 앞에 참회하는 대통령이 있었던가? 우리는 흔히 자신을 어리석은 중생이라고 한다. 한때나마 나라의 최고 지도자였던 대통령들을 불가에서 말하는 범부 중생도 아닌, 미물이라고 표현하면 너무 가혹할지 모른다. 하지만 중생이라면, 지혜는 깨치지는 못했어도 자기가 지금 무엇을 잘못 했는지는 안다. 요즈음은 유치원을 다니는 어린아이들도 자기가 잘못했으면 그 잘못을 안다. 그런데도 대통령을 지낸 그들은, 잘못한 것 자체도 모르고 항변만 하고 있으니 어디 중생이라고나 하겠는가?

사람이 만물 중에서 으뜸이라고 하는 것은 지난 일을 되돌아보며 반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오늘 하루를 잘 지냈는가?’ 반조해 보곤 한다. 하물며 한 나라를 지도하겠다는 분들이 욕심에 끌려 자행자지(自行自知)하면 되겠는가?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는 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요즈음 적폐청산이라 하여 온 나라가 시끄럽다. 한 전직 대통령이 24년이라는 중형을 받던 날은 따뜻해야 했던 봄날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어쩐지 찬바람에 비까지 내려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겨울 날씨였다. 이런 변덕스런 날이 지나면 내일은 밝은 태양이 떠오를 것이라는 기대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제라도 죄를 지은 사람은 참회 반성하고 하루 빨리 희망의 내일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법기관인 법원의 로고는 한 여인이 오른손엔 법전을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법전은 법대로 판단을 내리겠다는 의미이고, 저울은 평등하고 공정한 재판을 상징한다. 이번 기회에 그 로고가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밝고 정의로운 사회,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 인과보응이 되풀이되지 않는 도덕이 앞서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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