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힘들었던 그해 여름
글. 박여원

아직도 작년 여름을 생각하면 꿈인 듯 생시인 듯,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어느 날부턴지 큰아이의 간절한 호소가 시작되었다.
“이상해요.” “소화가 안 되고 더부룩해요.” “엄마, 저 이상한 병에 걸린 것 같아요.” “병원에 데려다 주세요.”라며 울기 시작했다. 그저 단순히 체해서 소화제 먹고 며칠 기다리면 나을 줄 않았다. 하지만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두 달…, 아이의 고통은 계속되었다.

동네병원부터 종합병원까지 안 다녀본 병원이 없었다. 하지만 별다른 이상 소견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저 과민성 스트레스일 수 있다는 판정을 받았을 뿐이다. 이러한 결과를 신뢰하지 않은 아이는 자신의 병을 낫게 해달라며 매일 밤 나를 괴롭혔다. 마음의 안정을 갖게 되면 좋아질까 싶어 심호흡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음악을 들으며 쉴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병도 나을 수 있다고 달래도 보고, 웃게도 해보고, 화도 내보았다. 그러다 보면 감정이 앞서 서로의 마음을 후벼 팔 때가 많았다.

‘나는 엄마니까 견뎌야 해. 우리 엄마도 나를 키우실 때 이렇게 힘드셨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때가 많았다. 원불교에 귀의한 후 이렇게 간절히 기도 정성을 모은 적도 없었다.
며칠 잠잠한가 싶었는데 학교에 있던 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속이 안 좋아서 조퇴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끊고 이번엔 어느 병원으로 데려가야 할지 당황스러워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는 양방 병원은 다 가본지라 마지막으로 한의원에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맥을 짚어본 한의사 선생님께서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타고나기를 장이 약하고 예민한 성격이라 음식을 잘 가려먹여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마음의 병이 있는 듯해요.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무조건 다 받아주세요.”
보름치 한약을 받아들고 집으로 왔다. 그날부터 좋은 재료를 구해 식사를 준비하고 보약도 빠뜨리지 않고 먹였다. 3일이 지났을까, 신기하게도 아이가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고 잃었던 웃음을 찾기 시작했다. 사은님께 올리던 갈구의 기도는 감사의 기도로 바뀌었다. 성장기의 해프닝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힘든 날들이었다.

아이는 지금, 한 때 먹지 못했던 양을 채우려는지 하루에 4~5끼를 챙겨먹는다. 체중도 늘고 키도 많이 컸다. 나는 믿고 있다. 그때 사은님께 올렸던 기도의 정성으로 아이의 병이 치료되었고, 나 또한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 무더웠던 계절이 다시 다가오고 있다. 이번 여름은 시원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집 앞 골목 쓰레기
글. 김현국

얼마 전 새로 이사 한 동네의 쓰레기 배출 시간은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저녁 7~9시다. 일반 쓰레기는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하고, 재활용 쓰레기는 투명 봉투에 버려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그런데 집 앞 골목에는 무단 투기 쓰레기가 정말 많다. 그것이 보기가 좋지 않아 10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를 사고, 대형 투명봉투를 준비해서 골목 쓰레기 정리를 하였다. 그리고 철물점에서 빗자루를 사와서 깨끗하게 쓸었다. 깨끗해진 골목을 보니 뿌듯하고 보람이 느껴졌다.

그런데 불과 다음 날 아침. 집 앞에 나와 보니 치킨·피자 종이상자, 검정색 비닐봉지 등 무단으로 투기 한 쓰레기들이 널려있다. 현관문 계단 바로 앞에는 개의 배설물까지 있다. 냄새가 나고 파리들이 날아다닌다. 마음이 매우 요란해졌다. 어젯밤에 열심히 수고했는데, 나의 수고로움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다. 누가 쓰레기를 버렸는지 찾아서 혼내주고 싶은 마음, 어떤 개가 우리 집 앞에 똥을 쌌는지, 그리고 그 개 주인을 미워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요란한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개의 배설물을 치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락스를 뿌렸다. 이렇게 하면 락스 냄새 때문에 다음에 또 볼일을 보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리곤 쓰레기 정리를 다시 하였다. 깨끗해진 골목을 보니 뿌듯하고 보람이 느껴진다. 어느새 요란한 마음이 사라졌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도 요란함은 또 시작됐다. 이번에는 빈 세제통, 아이스크림 껍질, 컵라면, 맥주 캔 등 무단으로 투기한 쓰레기가 하나 가득 쌓여있다. 이러한 날들이 일주일 동안 매일 반복되었다.

나에게서 처음에 골목을 청소 할 때의 순수한 마음은 이미 사라졌다. 너무 화가 난다. 사람들이 도대체 왜 그럴까 원망하는 마음이 난다.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요란한 마음은 지금까지도 쓰레기 생각을 하면 다시 올라온다. 어떻게 하면 깨끗한 골목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어쩌면 나의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계속 쓰레기가 쌓이면 치우고 또 치워야 하듯이, 잘 닦아 깨끗해졌다고 생각되는 마음 역시 닦고 또 닦고 끝없이 닦아야 하는 것이 마음공부 아닐까!
결론이 난다. 마음공부한다는 심정으로 오늘도 집 앞 골목 쓰레기를 정리해야겠다.


돌아가고픈 순간
글. 조아라

석 달 전 재개봉한 영화 <박하사탕>을 관람했다. 영호가 철로 위에서 “나 돌아갈래~.”를 외치는 장면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알고 있는 장면일 것이다. 이 작품은 영호(설경구 분)가 살아온 격변의 20년을 담고 있는데, 그는 시대에 의해, 혹은 자기 자신에 의해 모든 것을 잃고선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한다.

난 영호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다. 물론 크고 작은 외압과 갈등의 순간이 있었지만, 영호만큼 시대의 직격탄을 맞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박하사탕>을 보는 내내 포효하던 영호의 모습은 잊을 수 없었다.
내게도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을까 고민해보니, 잔잔하다고 생각되던 내 삶에도 몇 가지 꼭짓점이 있었다.

태어났을 때, 말을 늦게 시작해서 장애 검사를 받았을 때, 식탐의 절정을 달리던 중학생 때, 인간 군상에 회의감이 들었던 고등학생 때, 하루에도 몇 번씩 희로애락을 오고 갔던 대학생 때,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의 순간들이 스쳐 간다.
그중 가장 그리운 시절이 언제냐 묻는다면, 모든 순간이 그립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굳이 꼽아야 한다면, 고등학생 시절이 제일 그립다. 인간 군상에 회의를 느끼고 가장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던 때이다.

어느 집단에서나 그렇듯이 같은 반,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고등학생 사이에서도 ‘갑’과 ‘을’은 늘 존재했다. 그러나 갑과 을이 늘 같은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둘의 자리는 언제나 역전될 수 있었다. 지극히 내향적인 나는 ‘갑’들의 공포에 시달렸었지만, 어느 순간에는 내가 ‘갑’이 되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갑과 을이 되어 변해가던 나의 모습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때 나와 상대했던 모든 친구들이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해도, 다양한 나의 얼굴을 드러냈던 그 시절의 나 자신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려울 것 같다.

평소 나는 영화를 볼 때 극히 재미와 강렬한 자극만을 원했다. 하지만 <박하사탕>에서 영호의 인생사를 보니 과장된 느낌도 들긴 했지만, 누구에게나 꼭짓점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렇다고 영호처럼 처절히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내 고등학교 시절인 것은 아니다. 비록 아쉽고 후회되는 순간이 그리움으로 변한다 하더라도, 그 순간의 결과까지 다르게 변화시킬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기에 그때의 기억을 토대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겠다. 작은 말도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잊지 않고자 한다.


순간을 선물하는 일
글. 박주영

사진에 관심은 있지만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휴대전화를 이용해 풍경, 인물사진을 찍는 정도였다. 그런 내가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공짜로 내 손에 들어 온 DSLR 카메라 때문이었다.
작은 이모가 사촌동생이 아주 어렸을 때 모습을 몇 번 찍고 그 이후로 쓰지 않았다며 빌려주셨는데, 이번 기회에 제대로 사진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혼자서는 막막해 사진 동호회에 가입한 후 사진이 취미인 분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동호회 회원들과 대천해수욕장, 보령 근처로 1박 2일 출사도 다녀왔다. 아직 어색한 사이여서 처음에는 출사를 망설였지만 다녀오고 나니 200% 만족한 첫 출사였다.
첫째 날에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부여에 가서 부소산성, 궁남지를 배경으로 미션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녔다. 운영진들은 각 팀에게 랜덤으로 미션사진을 전송하였고 이 사진들로 오후에 ‘드라마 제목 알아맞히기 게임’을 진행한다고 하였다. 처음엔 낯간지러웠지만 운영진들이 준비해온 화관을 쓰고 꽃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한 회원분과 커플사진을 찍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사진을 잘 찍으시는 분들과 한 팀이 되었고, 그분들은 어깨에 지고 다녀야 할 정도로 무거운 카메라로 정성스럽게 사진을 찍어주셨다. 처음에는 모델이 되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찍힌 사진에 한눈에 반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나의 손짓, 몸짓, 표정까지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열정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사진 찍는 일을 취미 이상으로 정말 사랑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 분들은 본인의 모습이 찍히지 않는데도 다른 누군가를 찍어주며 예쁜 풍경을 담는 것만으로 만족하셨다.

둘째 날에는 보령에 있는 개화예술공원에서 자연을 배경으로 초록 초록한 사진을 찍었다.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시골 마을 같은 순박하고 순수한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드라이플라워와 예쁜 소품으로 꾸며진 카페에서는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이름 모를 수많은 꽃들과 알전구들 사이로 나오는 노란 조명들이 분위기를 한 층 업 시켰다.  

출사를 다녀온 후로 사진에 더 많은 관심이 생겼고, 꼭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이 섰다. 주변 사람들을 예쁘게 찍어주고, 나도 그 순간 가장 예쁜 모습으로 잘 찍히고 싶기 때문이다. 마치 손님이 음식을 깨끗이 비운 그릇을 보고 뿌듯해하는 요리사처럼, 사진작가도 모델이 마음에 들어 하는 사진을 찍고 나면 흡족하지 않을까. 얼른 사진 전문가가 되어 다른 누군가에게 그 순간 자체를 선물해주고 싶다. 남는 건 사진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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