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수위단원은 안 된다
글. 노태형 편집인

수위단원 선거가 3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이맘때쯤이면 선거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올 법한데, 이상하리만치 잠잠한 게 걱정스럽다. 선거란 그냥 사람을 뽑는 일이 아니다. 그 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하는 일이다. 그러기에 일각에서 제기되는 ‘지도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거나, ‘어차피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냉소적인 정서가 확산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깊다.

수위단원을 뽑는 일은 곧 최고지도자인 종법사를 뽑는 일과 맥을 같이 한다. 새롭게 뽑힌 수위단원들이 새 종법사를 선출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향후 6년간 ‘원불교가 어디로 나아갈지’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된다. 이외에도 수위단회는 최고결의기관으로서 교단의 중요한 모든 일에 대해 간섭(결의)해야 하며, 변화하는 시대에 교리의 최종해석을 관장해야 할 권한 등을 가진다.

그럼에도 우리의 수위단원 선거는 지명도에 의존한 인기성(?) 투표에 가깝다는 게 중론이다. 피선거권자의 자발성이 결여되어 있기에 책임의식도 결여된 모습을 보인다. 사명감보다는 투표에 의해 결정된 사안에 순응하는 형식을 가지면서 교단 중요의사 결정에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직위는 뛰어나 교단의 모든 중요 직책을 도맡는 경사(?)를 누린다. ‘덜컥’ 수위단원이 되어 책임감은 없고 위세만 누리는 수위단원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준비된 수위단원’이 되어야 한다. 후보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교단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 변화·발전할지.’ ‘교단 2세기의 동력을 무엇으로 살려 낼 것인지.’ ‘원불교의 현대화에 걸맞는 새로운 시대화·생활화·대중화의 방향타는 무엇인지.’ 등등을 지금부터라도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만약 그런 고민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설사 후보가 되더라도 과감하게 ‘자기를 뽑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여야 원불교의 미래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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