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섭리 따르는, 방목돼지농장
황금빛 행복
가득 전하는 돼지
취재. 이현경 기자 

“돼지가 풀을 먹어요?”
농장 트래킹에 참여한 사람들이 믿기지 않는 듯 되묻는다. 이때 “이리와. 이리와. 이리와.” 하며 돼지들을 부르는 최승호 씨. 그 목소리를 듣고 휴게실에서 쉬고 있던 돼지들이 달려 나와 이내 한 곳에 모인다. “놀랐죠? 돼지 아이큐가 70이 넘어요. 얼마나 영리한지 사람 말을 잘 알아듣죠.” 승호 씨가 직접 돼지에게 풀을 먹인다.

옆에 있던 그의 아버지 최재용 씨도 마이크를 든다. “여기는 풀을 먹고 사는 돼지, 자연스럽게 크는 돼지, 거세도 안 해요~.” 과연 그의 말처럼 한쪽에선 한 쌍의 돼지가 자연교배 중이고, 만삭이 된 돼지는 울타리 바깥에 나와 농장 이곳저곳을 한가로이 거닌다. 태어난 지 한 달이 넘은 새끼돼지는 어미젖을 힘껏 빨며 생명의 기운을 뽐내니 “아이고, 넌 정말 통통하다~.” 하는 감탄이 아니 나올 수 있겠는가. 게다가 따듯한 햇볕과 황토는 돼지들의 천연 항생제. 자유롭게 뛰노는 새끼돼지의 등허리가 햇볕 아래에서 황금색으로 반짝인다.

최 씨 부자가 충남 청양에서 돼지를 키운 지 올해로 11년째. 2만 4천 평 규모의 체험농장을 운영한 지는 15년이 되었다. 그 사이 식구도 늘어 지금은 돼지 130여 마리, 염소 200여 마리에 거위, 양, 칠면조 등 여러 동물이 함께한다. 최 씨는 눈길 한 번으로 동물들의 상태를 바로 파악하곤 아들을 부른다. “아들! 저쪽에 한번 가봐~. 거기에 무슨 문제가 있어.” “괜찮은데요?” “가봐. 아빠는 벌써 알고 있어.” “그래요?”

사실 최 씨도 소를 키우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군 제대 후 본격적으로 젖소를 키운 그는 1990년도에 정부로부터 선발돼 다녀온 뉴질랜드 해외연수에서 생각의 전환이 일어났다. “제가 손 착유 시범을 보이니, 다른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하더라고요.” ‘노동’이라고만 생각했던 일이 다른 이에겐 ‘즐거움’이 되는 경험을 한 것. 이후 ‘국민소득이 만오천 불을 넘어서면 농촌관광을 즐긴다.’는 어떤 글을 보고, 꼼꼼한 준비를 더 해 마침내 지금의 체험농장을 열었다.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길 좋아하는 성격도 한몫했다.

그가 돼지와 인연이 된 스토리도 재밌다. “돼지가 너무 귀여워서 친구에게서 한 쌍을 데려와 방에서 우유를 먹이며 키웠어요.”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돼지의 몸집이 커지자 농장으로 올려보낸 어느 날, 돼지가 풀을 뜯어 먹는 걸 목격하게 된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돼지와 함께할수록 매력은 점점 커졌다. “돼지가 뱀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세요? 뛰어다니는 개구리를 쫓아가서 잡아먹기도 하고, 습지를 뒤적여서 지렁이도 주워 먹어요.” 덕분에 이곳엔 인공 사료도 없고, 질병 걱정도 없다. 활동량이 많아 튼튼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고민과 연구 과정이 있었을 터. 초지를 개간하여 일반 야초보다 훨씬 영양가가 높은 목초 씨를 뿌렸고, 이곳이 즐겁고 편안한 곳이라고 생각하도록 돼지를 길들이며, 돼지가 몸의 열을 식힐 수 있도록 습지를 만들었다. 사실 만삭인 돼지를 울타리 바깥에 내놓은 것도 스스로 적당한 장소를 찾아 새끼를 낳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일까. 그렇게 태어난 돼지들은  어미의 풀조차 뺏어 갈 정도로 장난스럽고, 또 호기심이 많아 사람에게 여러 번 가까이 다가오기도 한다. 자연교배를 통해 태어난 덕분에 일반 돼지와 달리 주둥이가 길고 다리가 긴 모습으로도 자연변화했다.

봄부터 가을까지와 달리 풀의 양이 부족한 겨울철. 바쁘게 풀을 챙기던 승호 씨가 오후가 되자 돼지들에게 인기 간식인 쌀겨를 준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최 씨. 그에겐 농장에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이요, 아들이 자신의 일을 이어가는 것 또한 큰 행복이 된다. 많은 순간순간마다 최 씨는 아버지가 30년 전부터 해주었던 말을 떠올린다. ‘모든 것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라.’
그 말처럼 깨끗한 환경에서 사계절 내내 풀밭을 자유롭게 뛰놀고 풀에 거름을 주며 자연순환을 이루는 황금돼지들. 그 황금 같은 행복이 이들 농장에 큰 태양처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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