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석에 못 끌리듯
‘중앙중도훈련원 맥가이버’ 강보광 덕무
취재. 김아영 기자

“지금 생각해도 신기해요. 자석에 못 끌리듯 이곳에 왔다고 밖에 설명이 안  되네요.” 총부간사근무 제의에, 딱 3개월만 총부에서 일하고 도시에 나가 큰 사업을 하겠다던 그였다. 그랬으니 그가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30여 년 동안 덕무로 근무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올해 퇴임을 앞둔 강보광 덕무(중앙중도훈련원)는 말한다. “원불교 일보다 큰 사업은 없었다.”고.

어찌 이 길을 왔을까
원불교 중앙중도훈련원의 건물·시설 관리를 맡고 있는 강 덕무. 중앙중도훈련원의 전신인 중앙훈련원에서부터 지금의 훈련원 건축과 리모델링을 담당했다. 훈련원 벽에 박힌 못 하나, 나무 한 그루, 기계설비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게요, 벌써 34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원불교 집안도 아니고, 교법도 제대로 몰랐으니 자석에 끌린 것처럼 입교해 전무출신을 서원했다고 표현할 밖에요. 모든 게 이 일을 하게끔 다 맞아 떨어졌지요.” 총부간사로 살아보라는 제안을 받은 건, 때마침 양복점을 정리하고 사업을 준비하던 때였다. 간사가 무엇을 하는지도 잘 모른 채 처자식을 고향에 두고 총부를 찾았다.

이유는 딱 하나, ‘총부에 살면 스승님의 인격을 만분의 일이라도 닮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교당출석도 좋은 정법을 내 아이에게 물려주기 위해 다닌 그였다. 딱 3개월만 머물기로 다짐했다. 그에겐 대도시에서 사업을 하며 아이들에게 더 큰 기회를 주고 싶은 꿈이 있었다.

“총부 공용 자동차를 운전했는데, 속으로 다짐한 3개월이 되니 두 마음이 생기더군요. ‘내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란 생각과 ‘내가 하고 싶은 큰 사업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것이었지요.” 고민을 하다 홀연히 든 생각은, ‘사업을 하려고 자가용을 사고 운전연습을 한 것은 결국 총부에서 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였다. 더욱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돈을 벌려던 것인데 이 법을 배우는 것이 행복했다. 얼마 후 온 가족이 익산으로 이주했다.

그가 “원평에서 익산으로 이사 왔으니 결국 처음의 바람처럼 큰 도시로 온 것이 아니겠냐.”며 웃어 보인다.
“그렇게 덕무를 서원하고 원기 79년에 출가했지요. 고향친구들은 ‘사업으로 잘 나가던 애가 미쳤다.’고 했지만 저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어요. 봉공하는 내 삶이 소중하다고요.” 그 마음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라는 그. 오히려 기도의 위력을 체험하고 인과의 이치를 깨달으며, 더 깊어져만 갔다고 말한다.     

법신불 사은의 위력
“많은 일이 있었지요. 하지만 그때마다 사은님의 위력을 깨닫게 되었어요.” 훈련원 봉불식을 마친 그해 기계실의 기름이 저수지로 유출되어 어려움을 겪었을 땐 저수지 둑에 올라 기도했고, 형제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 때도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냐.’며 울며 기도했다. 훈련원 리모델링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을 때는 “순직하는 일이 있더라도 책임을 다하겠다.”며 마음을 모았다.

“그날 밤, 세찬 비바람이 불어 기름이 눈에 띄게 없어졌어요. 리모델링을 할 때도 이 일을 완수할 수 있도록 진리님이 건강과 지혜를 주셨고요.” 인생 최고의 위기를 겪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진리가 나에게 뭔가 일을 시키려고 시험하는구나.’란 생각이 들면서 슬픔이 용기로 바뀐 것. 이후 훈련원 공사를 진행하게 되자 ‘이 일을 시키려고 진리가 나를 훈련시킨 것이구나.’란 확신이 들었다.

“한때, 고향에 안 내려간 적이 있어요. 거기에 가면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희보다 더 잘 벌 수 있다.’란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그때 총부에서 나와 돈을 벌어 부자가 되었다면?’이란 질문의 답은 언제나 같았다. 돈의 노예가 되어 결국 전생의 업이 돌아왔을 때도 인과인줄 모른 채 남을 원망만 했을 거란 것이다. 인과의 이치를 안 덕분에 어려움을 당했을 때도 ‘덕분에 큰 빚을 갚았다.’며 감사할 수 있었던 그. 그가 “그러니 원불교 일을 하길 얼마나 잘 했냐.”고 말한다.

“덕무로 일하며 맥가이버라는 별명을 얻었어요. 제 손에 들어오면 안 고쳐지는 게 없거든요. 하하.” 소태산 대종사의 가르침은 양복점 하던 그를 못 고치는 게 없는 기술자로, 나무에 능통한 전문가로 만들었다. 더욱이 세상의 큰 사업을 할 수 있는 심법을 주셨는데…. 그가 “진산(眞山)이라는 법호를 받고 가족의 행복을 얻었으니 이보다 더 큰 복이 없다.”고 말한다.
“퇴임 후 계획요? 제가 가진 기술로 교단에 봉사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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