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궂은일이 세상을 밝힌다
일에 파묻혀 산다고 힘들어하며 짜증 내던 나는, 그 이후 처음으로
거울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글. 유도은

얼마 전 한 교도님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을 출가시키고 싶다며 상담을 요청하셨다. 교도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과연 난 어떻게 출가의 길을 가게 되었으며, 어떤 인연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내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나에게 있어 출가의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교무님과의 소중한 인연’이다. 나의 지도교무님인 서경은 교무님을 처음 만났을 때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당시 나는 수원교당에서 진행되던 교구 어린이훈련에서 교무님을 만났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내가 “엄마! 교당에 예쁜 교무님이 계셔요.”라고 하더니 그때부터 교무님을 쫓아다녔다고 한다.

교무님을 뵈러 평택교당으로 법회를 보러가기도 했고, 교무님이 익산에 계실 때는 초·중·고 12년 여름방학 동안 혼자 기차를 타거나 부모님과 함께 교무님을 보러 가기도 했다. 교무님의 손을 잡고 당시 대산 상사님과 좌산 종법사님을 뵈러 익산, 영산, 변산 성지와 수계농원, 하섬 그리고 배내훈련원 등 전국을 돌아다니던 시간은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부모님처럼 모든 것을 내어주는 교무님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혼자 찾아가던 그 길도 무섭지 않았고, 그런 인연의 소중함으로 전무출신이 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처음에는 그저 교무님이 좋아 따라다녔지만, 그렇게 어느새 내 안에 전무출신을 꿈꾸는 싹이 자란 것이다. 하지만 중앙총부 재정산업부 간사생활을 시작하면서 나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20년 동안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삽질, 모내기, 손빨래, 예초작업 등을 하니 ‘곱게 자란 외아들’의 손은 평생 궂은일만 하셨던 아버지의 거친 손바닥을 닮아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일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한방병원에서 온 약재 찌꺼기와 음식물 쓰레기를 섞어 거름으로 만드는 일이었는데, 더럽고 냄새나고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이 일을 매일 하였다. 그러나 총부에서 봄·여름·가을·겨울 4계를 보내고 나니, 내 마음과 내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수거한 그 거름을 먹고 자란 상추와 나물 등 기타 농작물이 총부 밥상에 올라오고, 겨울에는 1년 먹을거리인 3천 포기의 김장이 되었다.

‘아! 출가란 이런 것이구나.’ 버려질 음식물 쓰레기로 다시 1년 먹을거리를 만드는 일. 풀이 무성한 총부에 예초기를 돌려 정갈하게 만들고, 더러운 곳을 청소하여 깨끗하게 만드는 일. 진흙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연꽃처럼 내가 하는 궂은일이 내 주변을 밝게 해준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매일 일에 파묻혀 산다고 힘들어하며 짜증 내던 나는, 그 이후 처음으로 거울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교도님과 상담을 마친 후 스승의 날에 미처 연락이 닿지 않았던 교무님께 다시 전화를 드리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대산종사법어>에 “대종사님과 정산 종사님께서 우리 회상에 큰 법기들이 모이도록 수천 년을 통하여 공을 들이셨고, 회상을 펴신 후에도 동서남북을 두루 다니시며 일꾼들을 모아 법을 크게 일으키시고 사업을 크게 후원하셨다.”는 말씀이 두고두고 와 닿는다. 나 역시 큰 법기가 되기 위해 오늘도 보은하며 맡은바 그일 그 일에 힘과 마음을 다해 천지행을 하며 살아가고자 노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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