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미쳐 가고 있는 것인가
글. 박성철

친구의 아버지가 열반하여 장지까지 따라나선 일이 있다. 그분이 살았던 고향 마을의 집에 들러 하직 인사도 하고 회관 앞에서 제(祭)도 지냈다. 장례식장에 참석하지 못했던 아버님의 동네 친구들이 마지막 가는 영가를 환송하며, 여비를 챙겨주었다. 먼 길 떠나는 친구 대하듯 스스럼없이 “먼저 가 있게, 내가 곧 가서 만남세.” “이 사람아, 조금만 더 있다 가지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가?” 하면서 눈시울을 적시는 것을 보니 괜시리 나까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을 사람들과 같이 점심식사를 하며 고인과 아쉬운 정을 나누고 있을 때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50대쯤 되어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옆 길가에 멈추어 섰다. 그러더니 “예수를 믿으시오. 그런 짓하면 천당 갈 수 있소? 예수 믿어 천당 가시오.”라며 크게 외쳐 댔다.
장례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저런 미친놈 보았느냐?”며 쫓아갈 태세를 보이자, 그 사람은 예수를 믿으라고 외쳐 대며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다. 별 미친놈을 다 보았다는 말들을 뒤로 한 채 장례를 무사히 마쳤다.

돌아오는 자동차 속에서 그 사람과 내가 교차되는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내 고향은 박 씨의 집성촌이다. 그 마을에는 내가 존경하는 6촌 형님이 계신다. 그분은 초등학교 교장이었으며 유학(儒學)에 능통했다. 어쩌다 한번 찾아뵐 때면 우리네 박 씨의 족보와 어려운 촌수에 대해서도 잘 가르쳐 주셨다. 효성도 남달라 부모님을 잘 모셨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제사도 잘 모셨다. 제사나 시제 상을 차릴 때면 상 차리는 법까지 가르쳐주었다. 나는 지금도 명절 때면 그 형님께 배운대로 상을 차리고 있다.

우리 집안의 예의범절을 손수 실천하고 가르치던 그분께서 어느 날 ○○종교에 귀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신앙의 교리에 따라 더는 조상의 제사도 모시지 않는다고 했다. 어찌 그리되었는지 알아볼 겸 형님을 찾았다. 형님은 반갑게 맞이하면서 내가 먼저 말을 꺼낼 틈도 주지 않고 자신의 신앙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좋은 신앙이 있는 줄 몰랐다. 그러니 너도 하루 빨리 이 신앙생활을 해라.”고 했다. ‘언제 저렇게 신앙에 통달했을까.’ 하며, 이것이 바로 ‘신앙에 미친 것이구나.’ 하며 돌아온 일이 있었다.

그런 내가, 원불교라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도 그렇게 미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았다. 원불교에 입교한 건 30여 년이 되었으나 본격적으로 교당에 나가 공부한 지는 이제 7년째다. 원불교 공부를 시작한 후로 6년 동안 각종 법회에 개근을 했으며 올해로 7년째 도전 중이다. 그리고 1년 만에 단장을 맡기도 했으며 지금은 조그마한 교당의 교도회장을 맡고 있다. 집안 형님이 그랬듯 부모님 제사도 교당에서 기념일로 추모하고 있다. 나는 칠남매의 장남이다.

내가 형님을 보고 미쳤다고 했듯, 동생들이 나에게 미쳤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신앙은 절대적 믿음이다. 예수를 믿어 천당 가라고 외쳐대던 그 사람도, 하루아침에 신앙에 미쳐 버린 교장 형님도, 나름대로 믿음에 대한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나도 원불교에 대한 믿음이 있다. 어차피 이 세상에 나왔으니 무엇인가 하나쯤은 믿고 건져 가야 할 게 아닌가? 물론 어느 땐 형제자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든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여동생 둘이 원불교 교도이고, 자식손자 열 식구가 모두 일원가족이 되어 응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감사할 뿐이다.

사람들은 한가지 일에 열중하는 사람을 미친놈이라고 치부해버린다. 존경했던 형님도 미쳤고, 오토바이 타고 예수를 믿어 천당 가라고 하며 달아나버린 그 사람도 미친 사람이다. 그래서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말이 생겼는지 모른다. 한 분야의 최고를 이루려는 사람들 중에는 그 분야에 미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원불교의 신앙문인 생멸(生滅) 없는 도(道)와 인과(因果)보응(報應)의 이치를 알기 위해서는 한번쯤 미쳐 보는 것도 괜찮을 성싶다. 나도 이미 원불교라는 신앙에 미쳐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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