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남(마테오) 신부
마음 감옥에서 벗어나라
취재. 장지해 편집장

어렸을 때부터 수도자의 삶을 꿈꾸며 열심히 살았다.
남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기도도 많이 하고, 성당도 자주 찾았다. 하지만 하느님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할수록 계속 미운 사람이 생겼다. 열심히 사는데도 변화와 성과가 없으니 자연스레 자책이 됐다. 악순환이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그때부터 9년 정도 가톨릭교회에 발길을 끊고 개신교와 불교를 찾아가 보기도 하고, 철학을 공부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돌고 돌다 결국 다시 돌아와 신부가 되었지만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서른세 살에 신부가 되어서도 과거의 고민이 계속 반복되는 거예요. 그러다가 마흔 다섯 살에 처음 상담을 받고 이유를 확인했어요. ‘열심히 한다면서 왜 너는 그 정도밖에 안 돼?’라는 소리로 내가 나를 미워해서 생긴 병이었던 거예요.”
‘사람은 절대 완전해질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인식하고 인정한 동시에 편안해졌다. 이후 50이 가까운 나이에 상담공부를 시작해 현재 신부이자 상담가로 활동하고 있는 홍성남(마테오)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그는 절대 ‘참으라.’고 하지 않는다. 신자들에게도 무조건 착한 신앙인이 되지 말라고 한다. ‘울고 싶을 땐 울고, 화내고 싶을 땐 화내라.’는 그의 처방법은, 다소 파격적이지만 그야말로 가슴을 뻥 뚫리게 한다.

● 여러 저서에서 신부님의 위트를 접하고 많이 웃었습니다.
“웃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긴장하게 되고, 그러면 마음에도 병이 들어요. 그래서 제 글을 읽거나 강의를 듣는 분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해요. 주로 실없는 소리의 대상이 저 아니면 하느님이다 보니, 하느님을 모욕한다고, 예수님을 희화화시켰다고 원성도 많이 듣긴 하죠. 하지만 성인들을 존중해드리긴 하되, 너무 어려워하는 건 오히려 문제가 있어요.”

너무 높이 올려져 있는 신적 존재로서의 예수는 인간이 따라가기 벅찬 존재라는 게 홍 신부의 말. 우리가 그 경지에 다다르기 힘드니, 역으로 그 분의 존재 높이를 약간 낮추면 더욱 가깝고 언제든지 부를 수 있는, ‘내 옆에 계신 하느님’이 된다는 것이다.

● 거룩한 사제보다는 재미있게 사는 사제의 삶을 선택하셨다고요?
“예전에는 나의 재미를 찾는 게 이기적이고 세속적이고 비종교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상담을 받으며 ‘스스로 가두고 윽박지르고 옥죄는 삶을 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이후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주려면 내가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이 바뀌었죠. 예수님께서는 산에 올라가 기도만 하지도 않으셨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무거운 짐만을 지지도 않으셨어요. 잔칫집에도 가고 제자들과 놀기도 하셨죠.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즐기지 못하는 삶은 사막처럼 황폐해져요.”

상담가로 활동한지 10년이 되던 해, <조선일보>와 KBS 아침마당에 등장하며 시원한 속풀이 상담으로 ‘국민 신부’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던 그. 하지만 뜨거운 환호만큼이나 지탄도 따랐다. 그렇대도, 불편하다는 이유로 멈추고 싶지 않았다. 쉽게 좌절하던 과거의 모습에서 어렵게 벗어난 체험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픈 열망이 더 컸기 때문. 언젠가부터는 자연스레 ‘막히면 꽉 찰 때까지 기다리고, 틈이 보이면 그리로 새서 다시 길을 만들어가는 물처럼 살자.’는 다짐도 섰다.

● 화가 날 때, 정말로 화를 내도 되나요?
“감정은 마음의 근육이에요. 팔 근육을 키우려면 운동으로 계속 단련해야 하는 것처럼, 마음도 똑같아요. 감정을 계속 표현해야 마음에 힘이 생겨요. ‘왜 화를 내라고 가르치느냐?’고 비판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이건 남을 통해 해소하라는 게 아니에요. 에너지의 양은 한계가 있어서 화든 슬픔이든 스스로 완전히 분출시키고 나면 다른 사람에게 향하지 않거든요. 오히려 화를 내지 않는 방법을 알려드리는 거죠.”

‘화를 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으로 감정을 억압하면 어떤 식으로든 상대에게 손해를 끼치기 마련이라는 게 그의 말. 홍 신부 역시 한때는 샌드백을 두드리며 화를 해소하기도 했다. 각자의 해소 방법을 찾아야 건강한 마음을 갖게 되고, 건강해야 나눠줄 수도 있다며 “너무 경직된 종교생활은 오히려 마음을 병들게 해요. 자신을 병들게 하지 마세요.”라고 당부한다. 이 점이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많은 종교인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는 것. 규율이나 규칙 등에 얽매이면 스스로를 괴롭히게 되기 때문이다.

● 메일 주소와 온라인 상담카페에 ‘도반’이라는 단어를 쓰시던데요.
“왜 신부님이 불교 용어를 쓰냐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개의치 않아요. 도반이라는 의미를 골프에 빗대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골프는 총 18홀로 이루어지는데, 만약 네 명이서 함께 치면 한두 번 만으로도 한 홀을 끝내는 사람도 있고, 계속 허우적거리는 사람도 있죠. 그래도 한 홀은 무조건 네 명이 동시에 끝나요. 함께 가는 거죠. 저는 이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도반’이라는 말을 가져다 쓰기 시작했어요.”

‘나는 잘하니까 먼저 갈게.’가 아니라,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르쳐주고 때론 기다리기도 하면서 끝까지 함께 가는 사람, 그런 ‘도반’이 되고픈 홍 신부다.

● 불교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제가 원래 불교를 좀 좋아해요. 하하. 가톨릭교회의 하느님은 너무 엄격하고 무섭다면, 부처님은 인상이 좋고 따듯한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불교 서적도 많이 보고, 절에도 들어가려고 그랬죠. (웃음) 특히 가톨릭교회가 표현하지 못하는 ‘윤회’가 참 인상 깊은데, 저는 윤회가 벌이 아니라 점점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찬스)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일회적인 삶에서는 다 완성할 수 없는 게 인간이잖아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하느님이라면 당신의 아들을 죄 많은 사람들을 위해 내려보내 목숨을 바치게 할 정도의 사랑을 가지셨으니 윤회도 주실 것 같아요.”

● ‘종교의 위기’와 더불어, 종교인들에 대한 신뢰도 점점 떨어지는 것 같은데요.
“현대인들이 물질문명화되면서 종교에 대한 관심은 없어지고, 물질주의에만 집착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에요. 일본만 봐도 명절 때 신사에 가면 복을 빌러 오는 사람들로 꽉 들어차요. 종교심은 있는 거죠.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특히 한국 종교의 문제는 뭘까. 소비자들의 욕구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종교도 일종의 서비스센터인데, 소비자들이 무엇을 갈구하는지 보지 않고 각자의 이념에만 빠져 있는 거죠. (각 종교의 표현법은 다르겠지만) 가톨릭교회의 경우 ‘주님의 뜻을 이어받는 순교자의 정신으로 살자!’는 절대적인 이상을 이야기하는데, 먹고 살기 바빠 죽겠는 사람들에게 그 말이 어떻게 와닿겠어요. 내 삶과 괴리가 있다고 여길 수밖에요.”

하지만 그러기에 더욱 종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그. 대가를 바라지 않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안아주고 사랑해주며, 조건 없는 상담을 해 줄 수 있는 곳이라는 것만으로도 종교의 존재 의미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가톨릭만이 절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덧붙이는데….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불교든, 각자에게는 자신의 마음이 쉴 수 있는 곳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개종을 권하지 않아요. 종교인이라면 ‘이 사람의 종교는 무엇일까?’보다 ‘이 사람의 상처는 뭘까. 어떤 과거 때문에 힘들어할까.’에 집중해서 자기 종교가 가진 방법대로 잘 치유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잘 될 때 모든 종교가 다 함께 살아날 수 있어요.”

● 후배 사제들의 상담도 하시는데요, 여러 종교의 젊은 수행자들에게 당부하고픈 말씀이 있나요?
“흔들리더라도 배에서 내리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프로이드가 인간이 성숙하는 데 필요한 조건으로 좌절(frustration), 지연(delay), 갈등(conflict)을 이야기했는데, 특히 수도자는 이 세 가지를 그냥 형제자매처럼 데리고 산다고 생각하면 돼요. 때로 어떤 후배들은 ‘남들은 먹고 살기 힘든데, 우리만 편안하게 사는 것 같다.’며 자책하기도 해요. 착한 아이들이 주로 그렇죠. 저는 그렇게 말해요. ‘아니다. 너는 바닷가의 부두 같은 존재다. 사람들이 정박했다가 가고, 또 정박했다가 가는 존재다. 그러니 부두에 닥치는 온갖 파도에 무너지지만 않으면 된다. 세상 속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은 너를 보고 희망을 갖는다.’고요. 하지만 굳이 큰 부두가 되라고는 안 해요. 작으면 작은 대로 역할을 하면 되니까요. 내 그릇만큼, 욕심내지 않고 살면 될 것 같아요.”

● 은혜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을 전해주세요.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마세요. ‘나’는 신이 만든 소중한 존재예요. 내가 나를 미워하면 모든 것이 뒤틀려요. 첫 단추가 바로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거예요. 그러면 절대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죠. 이건 사실 어릴 때 가정에서 영향을 받아요. 종교는 부모들이 그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겠죠. 매주 강론이나 설교 시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잖아요? 학교에서 받을 수 없고 할 수 없는 교육을 종교가 담당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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