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깊은 속내를 어찌 알랴!
바다 풍경에 ‘풍덩’
취재. 노태형 편집인

그 깊은 속내를 어찌 알겠습니까!
파도 찰랑대는 수면에서부터 빛이 검게 비치는 심해까지, 구석구석 아낌없이 내어놓았습니다. 큰 물고기는 큰 물고기대로, 작은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대로 둥실둥실 그 품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헤엄을 칩니다. 자유롭게요.
참 이상합니다.

맑은 바다에서는 물고기의 흔적이 드문드문합니다. 오히려 한 치 앞을 분간키 어려운 바다 속 개펄에서는 무수한 생명들이 숨어 지내기도 하죠. 그 생명들 다 품으려 애써 자신의 몸을 더럽힌 모양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바다겠죠. 그 사랑이 깊고 넓어 바다가 됐나 봅니다.
하늘이 이루지 못한 것을 바다는 이루어 냅니다.

아무리 날래고 날개가 넓어도 저 하늘 끝까지 닿는 새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 심해, 빛이 닿지 않는 곳이라도 물고기가 닿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네 맘껏 살아보라며 모든 담을 허물어 놓습니다. 그러기에 바다에 갇힌 섬은 있어도 육지에 갇힌 섬은 없는지 모릅니다.
하늘은 바다를 비추어 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바다는 하늘을 품어 수평선에 닿습니다. 만물을 비추어 거울이 되어주는 바다가 있어, 그 앞에 서면 마음도 시원해지나 봅니다. 태초의 생명이 바다에서 시작되었듯, 하늘보다도 바다가 먼저 나왔을까요? 바다는 생명의 어머니입니다.

화난 바다가 요동을 치면 그칠 것이 없습니다.
그 조용한 바다의 모습은 흔적 없이 사라지죠. 물 안에 있는 모든 생명을 뱉어내는가 하면, 물 밖에 있는 모든 생명을 삼켜버립니다. 이건 분노가 아닙니다. 생명에 대한 경고입니다. 하늘의 천둥번개에는 집으로 몸을 피하면 되지만, 바다의 분노에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만만하게 세상을 살았던 모양이죠. 너무 자만했던 모양입니다. 조심조심할 걸 그랬나요?

조용함은 곧 혼란스러움을 뜻하기도 합니다.
평화로움은 언제 분노를 불러들일지 모릅니다. 전전긍긍 전전긍긍(戰戰兢兢). 교만한 자의 바다는 이럴 수밖에 없습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낳듯, 생명의 바다는 생명을 앗아가는 늪이 됩니다. 아는 것의 지극함이 모르는 것으로 돌아가듯, 지혜의 바다는 늘 침묵합니다. 거친 호흡이 멈춘 바다는 다시 평화로워집니다.
삶의 바다, 생명의 바다, 지혜의 바다, 고뇌의 바다…. 내 마음의 바다에는 아직도 풍랑이 일렁입니다. 그렇죠. 일렁이지 않는 바다는 죽은 바다이니까요. 비로소 유유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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