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서운함 괘씸함
글. 조정연 동진주교당·원경고등학교 상담교사

손주 영준이가 점심을 먹으러 온다고 해서 갈비찜과 잡채를 하고 추어탕도 끓였다. 아침부터 꼬박 서서 일을 했더니 허리가 아팠다. 딸도 같이 와서 점심을 먹으며 “가족들이 연휴라 여행 갔다 와서 바깥 밥만 먹다가, 집에서 먹으니 너무 맛있고 제대로 먹은 것 같다.”고 야단이다.
그런데 손주가 점심 먹고 나서는 친구랑 약속이 있다고 가버린다. 나와 놀아주지도 않고 밥만 먹고 싹 갔다. 오랜만에 할머니를 보러 왔으면 같이 시간을 보낼 일이지 그냥 밥만 먹고 달아나 버리다니! 나는 닭 쫓던 개처럼 되고 말았다. 괘씸하고 서운했다. 경계다!
‘심지는 원래 괘씸·서운함·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 따라 괘씸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나니, 이 괘씸함·서운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정을 세우자.’
자식들에게 해 준 만큼 받고 싶어서 서운하고 괘씸했구나. 손주는 군대에 갇혀 있다가 휴가를 나오자마자 가족 여행을 갔으니 만날 친구들이 줄 서 있었겠지…. 할머니에게는 얼굴만 내밀었지만, 와 주었으니 맛있게 먹는 꼴도 보았고 든든한 손주들도 봤구나. 딸과 손주들이 있어 뿌듯해진다. 이것이 살아 있는 기쁨이고 행복이구나.


장기자랑
글. 심경화 돈암교당

대각개교절을 맞아 교당 장기자랑을 한다는 말씀에 고민이 된다. 상금은 어마어마하게 걸려있지만 무엇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나?
우리 단은 7단과 같은 조가 되었다. 7단 단원님들은 우리보다 연장자라는 이유로 우리단 단장인 나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신다. 요란함이 잠시 나를 흔든다. 숨을 고르고 생각해보니 장기자랑의 목적은 꼭 1등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재미있고 신나게 즐기면 되는 거지 뭐~.’ 하고 남편과 함께 무엇을 할지 얘기 중, 평소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다니면서 듣던 추가열의 노래 ‘행복해요’가 떠올랐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율동 동영상도 있다.
하지만 노래는 신나도 율동은 못하겠다는 7단 단원님들 반응에 또 한 번 요란한 마음이 올라온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율동은 저희 단이 할 테니 손 피켓을 들고 계세요.” 했더니 유치원생이 된 기분이라며 피켓에 열심히 색칠을 하신다.
앞으로 남은 기간 2주 동안 매주 법회 후 우리는 노래와 함께 율동 연습을 해야 한다. 평소에 서먹서먹했던 7단 단원님들과 ‘행복해요’ 노래와 율동을 연습하며 “같은 조가 되어 행복합니다~~.” 하고 인사를 나누며 가까워지는 시간을 갖고 있다.
“7단, 13단 단원님들!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선공후사(先公後私)
글. 이영인 인천교당

교구 ‘은혜 김치 나눔 봉사’에 가기로 봉공회장님과 약속을 했었는데, 활동 장소가 협소하여 이번에는 안 와도 된다고 한다. 정부에서 하는 노인 일자리 교육이 이틀간 있어서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 봉공회장님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교당 한지공예 동아리 전시회 준비 때문에 봉사 가기로 한 사람이 못 가게 되었다며 함께 가자고 한다. 이 나이에 불러 준 것만도 감사하여 “예!”라고 대답을 하고 보니 일자리 교육 약속 때문에 약간 갈등이 생긴다. 그러나 사(私)보다는 공(公)이 우선임을 먼저 생각하고 교육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이야기를 하며 하루 교육은 빼달라고 얘기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교구 김치 봉사를 갔다. 봉사를 마치고 돌아온 저녁, 팀장에게 “내일 아침 일찍 오세요.”라는 전화가 왔다.
다음 날 아침 조금 일찍 교육장에 나갔더니 팀장이 “어제 봉사하셨다니 여기에 그냥 사인만 하고 가세요.”라고 한다.
감사하다. 사(私)를 놓고 공(公)을 택한 것이기에 둘 다 이루어졌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앞으로는 더욱 공(公)을 먼저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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