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이 겪은 일②
글. 박주현 경인교대

(지난 호에 이어)
이런 마음은 대학 진학 후에도 저를 괴롭혔고 그로 인해 항상 낮은 자세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태도는 저의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대학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알법한 걸그룹 소녀시대 구성원의 이름을 모르면 그것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학생들이 수능점수를 자랑하고 고등학교 3학년 동안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였는지 말할 때마다 저는 당연히 고개를 숙이곤 했습니다. 저라고 게을리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절대적으로 그들만큼 노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철학교수님이 저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세상에 나라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한국의 일반학생들도 한국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죠. 그러니 너무 기죽어 살 필요가 없어요. 주현학생도 과거는 잊고 쿨하게 살아봐요.” 교수님의 말씀은 저에게 언어를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남한에 태어났다면 저는 한국의 일반학생들에 비해 전혀 열등할 것이 없는 학생일 것입니다. 단지 저에게는 그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자신감을 가지고 미래만 생각하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한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과 저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그 후 저의 대학생활은 신명나게 풀려갔습니다. 저의 바뀐 태도에 많은 학생들이 좋아해 주었고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그 결과 얼마 전 저는 친구들과 대만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대만여행에서 저는 그동안 배워온 중국어로 숨은 매력을 뽐내기도 했습니다. 친구들과의 대만여행은 그냥 미안함을 느끼며 자신감 없이 살았더라면 절대로 생기지 않았을 기회였기에 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태어남이 죄인 사람은 없습니다. 단, 분단된 국가에 태어난 사람은 죄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분단된 국가의 국민이라는 죄로 한반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대가를 치루고 있습니다. 그 중 저의 고향누나들은 아직도 낯선 외국 땅에서 사람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분단으로 인해 많은 이산가족 어르신들이 한을 품은 채 세상을 하직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탈북민은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분단으로 인해 우리는 아직도 동포들에게 총구를 겨누어야 하고, 이를 위해 남북의 청춘들은 강제로 군대에 가야 합니다. 더욱 억울한 것은 이 모든 아픔들이 자연스럽게 잊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합니다. 분단으로 인해 생기는 큰 아픔, 작은 아픔들이 우리에게 외면당하고 있기에 계속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현재 저는 경인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초등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비록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우리나라의 미래들이 행복한 성인이 되도록 교육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울러 적어도 제가 가르친 제자들은 분단으로 인해 생긴 아픔을 기억하고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성인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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