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내가
나중의 나를 만든다

법신불을 정태(靜態, 멈춰있는 상태)로 파악할 땐 대체적으로 불생불멸의 진리라고 하고, 동태(動態, 움직이는 모습)로 파악할 땐 인과보응의 이치에 의해 만물이 작용을 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인과보응의 이치를 우리는 어떻게 수용하고 있나요?
내가 심신작용을 하면 그것이 우리들의 영혼 속에 저장됩니다. 통장에 돈을 저금하듯이, 우리들의 영혼에는 두 가지 저장창고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행동했던 것들이 심어진 자인방(自因房)입니다. 내가 계속 짜증을 내면 그 짜증이 자인방에 저축되었다가 다음 생에 짜증을 잘 내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만약 수학 공부를 많이 하면 다음 생에 계산이 빠른 사람이 되게 합니다. 자인방 속에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나의 모든 말과 행동과 마음이 저장됩니다.

성격과 재능이 이 안에 저장되어 있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을 우리는 인품이라고 합니다. 그 인품은 결국 자기 자신이 만든 것입니다. 자습자성(自習自成)이라고, 내가 나에게 습관들인 것이 나를 이룹니다. 지금의 내가 나중의 나를 만드는 것이기에 스스로를 잘 조각해야 합니다. 깨어있는 사람은 나를 잘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또 하나의 저장창고는 타인방(他因房)입니다. 타인방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당한 것을 저장하는 창고입니다. 내가 한 행동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기 마련입니다. 내가 은혜를 베풀고 도움을 주었으면 상대방은 나에 대한 좋은 씨앗을 저장합니다. 그러면 나는 은혜의 종자를 뿌린 사람이 되겠지요. 타인과의 인과관계에 있어서 심신작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은혜를 줄 수도, 해독을 줄 수도 있습니다. (103. 02. 27 원불교대학원대학교 예비교무 훈증)

마을의 한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보다 마을 전체에 공을 들이면 마을이 다 좋아지는 일이 됩니다. 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개인을 위해 일하는 것보다도 훨씬 크고, 그것이 세계 사업이 됩니다. 그래서 ‘봉공은 만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공을 위해 봉사하고, 공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자아를 끊임없이 확대시켜 나가는 길입니다. 작은 나를 큰 나, 세계적인 나로 확대해나가야 합니다. 이기주의자들은 자기 밥만 생각하고 자기만 편안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봉공을 하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잘 살도록 나를 희생합니다. 봉공을 하면 개인주의적이던 내가 넓은 자아로 확대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교단을 위해서 살고, 세계를 위해서 일한다면 반드시 세계적 자아로 재생산됩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도 “공도헌신자(公道獻身者) 이부사지(以父事之)”라고 하셨습니다. 봉공 헌신하신 분을 부모처럼 섬기는 것이 내가 봉공자가 되는 지름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생명을 바치고 자기희생을 했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자기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바쳤기에 오늘날의 우리나라가 있습니다. 한 국가를 넘어 세계를 위해 살아가고자 하는 큰 뜻을 가진 우리는 아마 더 많은 지혜와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공을 위해 자기희생을 한 분들의 삶은 숭고합니다. 또 도덕세계와 낙원세계 건설을 위해 늘 자기희생을 하며 사는 인물이 교단의 주인, 국가의 주인,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중생 ○○○’의 문패를 ‘부처 ○○○’라고 바꿔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결심하고 또 결심하고 다시 또 결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경계를 극복해야 큰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103. 03. 04 원광대·영산대학교 예비교무 접견)

몸을 위해 좋은 음식을 많이 먹는 것처럼, 정신이 좋아지는 양식을 함께 제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지혜는 부처님의 법문이나 예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 소태산 대종사님의 말씀이 담긴 교전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지혜를 많이 배워놓으면 인생살이를 하다가 경계를 당했을 때 ‘아, 경전에서 이렇게 배웠지.’ 하고 바로 대조할 수 있게 됩니다. 육신만 좋게 만들다 보면 자칫 죄를 짓기가 쉽지만, 영성이나 정신이 좋아지면 그 육신을 부려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삶을 살아갈 땐 ‘내가 저기로 가야겠다.’ 하는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남편을 잘 만나 아이를 키우고 살겠다.’는 평범한 목표보다, ‘나는 교육자로 살고 싶다.’ ‘나는 평생 착한 사람으로 살겠다.’는 등의 가치 있는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세상에는 그냥 욕심과 가치 있는 욕심이 있습니다. 그냥 욕심은 단순히 좋은 물건을 많이 가지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것에 그치지만, 가치 있는 욕심은 꿈이나 서원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어느 곳이든지 위대한 사람은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목적이 분명합니다. 그 목적을 향해 매진하면 성공하지만, 목적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면 방황하기 쉽습니다. 기왕이면 정확한 목적을 향해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03. 02. 08 서면교당 교도 접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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