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물결 춤추는 라벤더팜
빛깔에 놀라고 향기에 취하다
취재 노태형 편집인

자꾸자꾸 목이 말라옵니다.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온몸에 찬물을 끼얹어도 더위는 가시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지나온 여정이 너무 가팔랐다고 하고, 세월이 그쯤이면 불길이 쉬이 잡히지 않는다고도 합니다. 영혼의 강줄기가 말라가면서 마음은 가뭄에 갇힌 논바닥처럼 쩍쩍 찢어집니다.
“라벤더 농원에 한번 다녀오세요.”
“거긴 왜?”
“보라색 물결이 가득하데요.”
“그게 위로가 될까?”
“어찌 알아요. 강물이 채워질지….”

강원도로 차를 몰아 달립니다.
속초 해안가를 지나 다시 내륙으로 한참을 달려 도착한 진부령 아래 한적한 시골 마을. 사람이 뜸할 것 같은 아침인데도 벌써 도로에는 차들이 제법 가득합니다. 대형 버스까지 와있는 걸 보면 제법 규모 있는 축제가 열리는 가 봅니다.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꽃대마을길 하늬라벤더팜.

늘 하얀 꽃을 바탕으로 빨강, 노랑, 파랑의 꽃들에 익숙했던 눈에 보랏빛이 가득 차오릅니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보라색 군무에 후각에서 먼저 탄성이 터져 나오죠.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라는 라벤더의 이국적 풍경을 강원도 산골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농원 입구에서 우연히 만난 주인의 이야기가 귀에 맴맴 돌기 시작합니다.

“언제부터 여길 가꾸셨어요?”
“벌써 12년이 넘어갑니다.”
“그럼 이젠 안정이 되셨나요?”
“한 10년 넘어가니깐 그럭저럭 안정을 찾는 거 같아요.”
“올해는 축제를 취소하셨다면서요?”
“지난해 맹추위로 인해 작황이 좋지 않아요. 그래서 부랴부랴 축제를 취소했네요.”

하지만 소문을 듣고 찾아온 방문객들로 농원은 금세 인산인해를 이루었죠. “작황이 좋지 않아서 입장료를 작년의 절반만 받는대요.” 이미 경험 있는 방문객은 농원주인의 양심을 칭찬하기에 바쁘네요.
그러게요. 꽃은 벌과 나비를 모으기 위해 긴긴 겨울을 지내야 하고, 농부는 사람의 발길을 모으기 위해 10년은 기다려야 꿈을 이루는가 봅니다. 

이곳에는 라벤더만 보랏빛 물결을 이루는 건 아닙니다.
바로 옆에는 초록의 호밀이 보라색을 더욱 들추어내듯 출렁이고, 아래 밭에는 하얀 메밀꽃이 먼 산을 배경으로 옅은 미소를 짓고 섰습니다. 또 한편에는 도라지꽃을 빼닮은 수레국화가 은근한 유혹의 눈짓을 보내죠. 메타세콰이어 숲은 고요히 사람들의 쉼터가 되어줍니다.

라벤더 체험장과 판매장, 기타 식음료들에 라벤더 향을 입혀 사람들을 끌어도 별로 거슬리지 않는 것은, 세상을 가꾼 아름다운 사람의 그 꿈을 알아챘기 때문이겠죠.
농부의 꿈이 어린 라벤더 향 가득한 보랏빛 강줄기에서 비로소 마음의 갈증을 씻습니다. 과연, 이 먼 곳까지 사람들이 찾아온 이유가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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