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희 한지공예가
꿈,
한지에 펼치다
취재. 김아영 기자

작업실을 가득 채운 반짇고리와 화병, 항아리, 예단함, 장롱, 서랍….
작은 소품부터 가구까지 종류와 크기는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은은하고 고운 빛을 띤다. 무심코 만지니 비단처럼 부드럽고, 가죽처럼 윤기가 흐른다. 세심하게 표현된 무늬에서도 쉽사리 재료를 알 수 없는데…. “지천년 견오백(紙千年 絹五百)이라는 말이 있어요. 비단은 오백 년을 가고 종이는 천년을 간다는 뜻이지요. 이 작품 모두 천년을 간다는 한지로 만든 거예요.” 15년째 한지공예를 계승·발전시켜 오고 있는 신상희 한지공예가가 조용히 말을 건넨다.


“한지의 변신은 무궁무진해요. 우리 선조들은 한지로 문도 바르고 그릇, 문갑 같은 소품부터 갑옷까지 만들었지요. 거기에 아름다움과 멋도 잃지 않았고요. 한지공예는 우수한 공예품이에요.” 언제나 우리의 삶 가까이에 있었기에 오히려 그 우수성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한지공예. 그것이 지금도 안타깝다는 그가 한지공예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가 한지공예에 빠지게 된 건 한지가 주는 따뜻함이었어요. 한지는 어디에 붙여도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줘요. 색감도 마찬가지지요.” 섬유질이 풍부한 닥나무로 만드는 한지는 일반 종이와는 달리 찢기지 않고 가벼웠다. 더구나 몇 겹을 겹쳐 붙이면 떨어트려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견고했다. 하지만 단단한 내면과 달리 외형은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가정주부였던 그가, 한지공예 스승을 찾아 꾸준히 배움을 이어나간 이유였단다.
“나중에는 제가 한지공예에서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고 싶었어요. 도면을 만들 수 있는 재단 디자인도 배웠지요.” 전통 등에 서랍을 결합시켜 실용성을 더하고, 사용자가 다양하게 변형할 수 있는 계단서랍을 만들었다. 무늬도 전통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한글과 나무, 꽃은 물론 흘끗 지나쳤던 쓰레기통 무늬에서도 영감을 얻어 표현했다. 특히 한지공예의 여러 기법들을 결합해 다양한 시도들을 했는데….


“이 함은, 종이를 재단해서 쓰는 전지공예 기법으로 전체 틀을 만들고, 종이를 꼬아서 만드는 지승공예 기법으로 무늬를 만들었어요. 느낌이 또 다르지요? 이건 물감으로 그린 그림 같지만 색한지를 찢어서 회화적으로 표현한 거고요.” 이러한 시도를 위해 자신의 전문분야인 전지공예 외에 지승공예와 종이반죽을 사용하는 지호공예, 다양한 색지를 이용한 지화공예를 배웠다고. 물론 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호응도 높았단다. 대한민국 한지대전 특·입선을 비롯해 경기도공예품대전 등에서 연이어 특·입선을 수상한 것이다. 2010년에는 청와대 사랑채에서 한지공예를 대표해 한국전통공예 시연을 하기도 했다.
“근래에는 옷, 양말 등의 의류를 비롯해 가구, 건축용까지 다양하게 생산되고 있어요. 제1회 수목장한지분골함공모전에서 금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친환경소재인 한지로 분골함까지 가능한 거죠. 한지는 화학적인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가장 자연친화적인 소재니까요.”


예술성은 물론 생활공예품과 상품으로서도 가능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그. 그가 한지공예 작가들과 꾸준히 토론과 연구를 하고, 공방을 통해 수강생들에게 한지공예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저는, 한지공예를 하면서 내 재능이 뭐고, 하고 싶은 게 무언지를 확실히 알았어요. 한지공예가 나라는 사람을 알게 해주고, 내면을 표현할 수 있게 해준 것이죠. 그래서 감사해요.” 감사함이 가득 담긴 그의 손길에서 오색한지의 빛이 은은하게 빛난다.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