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살기 위해 술로 몸을 녹인다 
글. 강명권


눈이 오는 새벽이다.
오늘 있을 노숙인 급식 물품을 사기 위해 서울역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보니, 노숙인 몇몇이 눈 위에 박스를 깔고 앉아 술을 마신다. 밤새 추위에 떤 몸을 녹이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 같았다. 술을 마시지 말고 차라리 따스함이 있는 응급구호방에 가면 좋을 것 같은데, 이들은 구속하는 따뜻한 방보다는 구속없는 찬 바닥에서 찬 술로 몸을 데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서울역 가까운 곳에 내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건물 공간이 있다면, 그들이 그곳에서 추위를 피하면서 술을 마실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그들을 몇 년 동안 지켜보면서 단순히 술을 못 먹게 하는 것으로는 그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노숙인들과 어려운 이웃들이 옷과 생활용품을 마음대로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하는 옷가게가 인천에 있다. 민들레국수집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처음에는 노숙인과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옷과 생활용품을 가능한 많이 가지고 가려고 하더니, 나중에는 한꺼번에 많이 가지고 가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어떻게 바뀌었냐고 주인에게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이곳에 오면 언제든지 물건을 가지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처음 급식을 할 때는 보통 3~4그릇을 먹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언제든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몇 그릇씩 먹는 사람이 드물다. 노숙인들에게 추운 거리와 바닥에 몸을 누이고 술을 마시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음을 알게 해준다면 그들도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들 역시 추운거리에서 잠을 자거나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면서 살고 싶지 않아 한다. 어쩔 수 없는 지금의 환경이기에, 아니 벗어날 수 없는 환경에 묶여서 살아가기 때문에, 더 나은 삶을 바라보기보다 차가운 눈 위에서 술 한 잔으로 추운 몸을 데우면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노숙인들을 더 알기 위해 미국과 유럽으로 견학을 간적이 있다. 미국과 유럽은 알콜 중독자만이 아니라 마약 중독자를 변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실험과 복지를 실천하고 있었다. 그들이 노숙생활에서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주택에 살게 하면서 사회복지사와 상담치료사의 꾸준한 치료와 보살핌을 받는 사회시스템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도 4대 종단과 보건복지부가 함께 종교계노숙인지원 민관협력네트워크(종민협)를 만들어 지난 4여 년 동안 행복하우스라는 지원주택을 운영하였다. 정신질환 노숙인과 기초수급자들이 행복하우스에 살면서 중독이나 질환이 치료가 되었고, 차츰 일반인들의 삶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기보다, 그들이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인간적으로 만들어갈 때, 그들 역시도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 가지 않을까.   후원 | 우리은행 1005-202-256361 재단법인 원불교   문의 | 원봉공회 02)823-4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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