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나물 비빔밥
글. 고영관

세상 물정 모르는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어쩌다 중앙총부에 가시는 스승님을 무작정 따라가면 스승님은 총부 앞 향나무 숲에 있던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사주셨다. 그 자장면 맛이야말로 여태까지 살면서 접한 그 어떤 음식보다도 맛있어서, 나는 지금도 음식 이야기를 할 때면 스승님의 자장면 이야기를 자랑하곤 한다.
사실 나는 음식 만들기에 나름 소질이 있고 또 주방에서 일하는 것을 즐겨하는 편이다. 그러나 정작 내가 만든 음식 중에서 가장 맛있던 음식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왠지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다.
안산 반월공단 근처에서 자취생활을 하던 총각 시절, 우연한 기회에 개구리참외를 선물 받은 일이 있다. 당시만 해도 남쪽지방 특산물인 개구리참외를 안산에 사는 자취생이 맛본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기에,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 후 씨앗을 싱크대 수채통에 가득 부어둔 채 이튿날 지방으로 출장을 갔다가 다음 주말이 되어서야 다시 돌아왔다.
장시간의 지방 출장에 지친 몸을 움직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피곤이 발끝까지 퍼진 늦은 시각이었다. 집 앞의 슈퍼도 문을 닫은 시간이라서 제대로 요기 할 만한 먹을거리를 구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자취방으로 돌아와 라면을 끓일 생각으로 싱크대에 다가선 순간, 황당하고도 신기한 광경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싱크대 수채 구멍 위로 파란 새순들이 수북하게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놀라움이었고, 발견이었고, ‘세상에 이런 일’이었다. 평소에 고장 난 수도꼭지를 손보지 않은 까닭에 물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고, 여름이 끝나가는 무렵이라 아주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수분이 공급되면서 수채 구멍을 가득 채운 개구리참외 씨앗이 발아해서 풍성하게 자라버린 것이다.
그렇게 혼자서 자라난 참외 싹은 발아 상태가 얼마나 좋았던지 머리는 연한 초록색이요, 실처럼 가는 줄기의 빛깔은 흰색이었고 잔뿌리도 거의 없는 최상급의 참외나물(?)이었다.(당시엔 새싹채소라는 말을 전혀 몰랐었다.)
갑자기 장기간 피로에 덮였던 몸에 엔돌핀이 돌기 시작했다. 그 밤에 기꺼이 쌀을 씻어 냄비에 밥을 올리고 밥이 익어가는 동안 새싹들을 손질했다. 하얗고 더운밥에 수채 구멍에서 수확한 새순들을 다 넣고 참기름 한 방울 똑 떨어뜨린 후 고추장에 버무려 허기진 뱃속으로 한 수저 넣었을 때 온몸에 쫙 퍼지는 밥 기운이란!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은 최고의 진미요 별미였기에, 나는 그날 밤 더럽혀진 작업복과 피곤으로 찌들어진 얼굴로 돌아와 정말 행복하게 먹었던 새싹비빔밥을 내가 만든 음식 중 가장 잊지 못할 메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은 그 시절보다 풍족하고 선택의 폭도 넓어져 날마다 ‘오늘은 뭐 먹지?’라며 고민한다. 하지만 만약 예전의 먹을거리를 다시 맛볼 기회가 온다면, 총각 시절 싱크대 수채 구멍에서 키운 새싹으로 만든 비빔밥과 스승님께서 사주셨던 자장면을 맛보고 싶다.


생명이 담겼다
글. 김지혜

오늘도 나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 ‘에고, 오늘은 뭘 먹지?’ 고민하며 냉장고 문을 연다.
‘이상하다. 며칠 전에 엄청 많이 샀는데 왜 해 먹을 게 없지?’ 어쩔 수 없다. 그냥 매일 먹는 된장찌개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습관적으로 된장찌개를 끓인다. 며칠 후 냉장고를 정리하자 언제 산지도 모르겠는 식재료들이 썩어있다. ‘세상에 이게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야!! 아이고 내 돈!!’ 아까워하며 썩어버린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나는 남편과 입맛이 까다로운 아들을 위해서 매일 요리해야 하는 워킹맘이다. 자주 장을 보러 갈 수 없다는 시간적 제약이 있기 때문에 한번 장을 보러 가면 어디 이민이라도 가는 사람처럼 많은 양의 식재료를 산다. 하지만 내가 집에서 즐겨먹는 음식은 몇 가지의 찌개와 반찬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다양한 식재료를 산다 해도, 처음 살 때의 포부와는 달리 자주 해 먹는 요리 외의 음식은 잘 만들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식사 전에 ‘いただきます(이타다키마스/잘 먹겠습니다)’라는 인사를 한다. 이 말의 또 다른 의미는 ‘당신의 생명을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당신의 생명을 제 생명으로 잘 이어받겠습니다’로, 음식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소중한 생명의 희생으로 우리의 생명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양의 음식을 살 때 식탐에 끌려 식재료를 산다. 심지어 버릴 때조차도 돈이 아깝다는 생각만 하고, 그들에게도 소중한 생명이 있었다는 점은 간과한다. ‘음식은 우리의 생명을 기르는 근본인데 어떻게 돈 따위를 생명의 양식과 견줄 수 있다는 말인가.’ 하며 절로 반성이 된다.
나는 키가 작은 아들에게 무조건 많이 먹이려고 배가 부르다며 먹기 싫어하는 아들을 닦달하면서까지 밥을 먹인다. 어느 날의 이야기다. 입안에 있는 음식물을 다 삼키기도 전에 내가 또 다시 아들의 입속으로 숟가락을 집어넣고 있는데, 아들이 “엄마 똥 나오려고 해.” 하면서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 순간 ‘아! 배가 부른데도 계속 몸속에 음식을 집어넣는 행위는 몸에 영양소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밖으로 배출되는 쓰레기를 집어넣는 행위와 같구나.’를 깨달았다. 소중한 음식의 생명을 먹는다는 것은 아들에게도 음식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 즉 살생을 하는 일과 같은데, 이러한 행동을 나는 매일 아무렇지 않게 반복하고 어린 아들에게까지 강요하고 있었다니…. 순간 머리가 아찔해졌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다짐한다. 나는 이제 아들의 몸에 더 이상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들에게 음식의 진정한 의미, 즉 그들에게도 생명이 있었다는 것을 가르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려 한다. 나 또한 먹을 만큼만 먹고 필요 이상의 음식은 먹지 않는 ‘음식절제’를 유념해야겠다.


따뜻한 쌀국수 한 그릇
글. 박보배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오늘 먹은 음식이 오늘 하루의 기분을 결정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다 보니 “오늘은 뭐 먹지?”가 가장 큰 고민이 되기도 한다. 제때 끼니를 챙겨 먹을 수 없으니 먹더라도 맛있는 것을 알차게 먹고 싶은 마음이다. 대부분 건강한 음식보다는 순전히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찾게 되는데, 난 그중에서도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한다. 맵고 짜고 단것!
하지만 매번 이렇게 먹으면 위에 자극적이고 살도 찌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찾는 건 베트남 음식이다. 비교적 가볍게 여겨지는 월남쌈이라든지 쌀국수를 먹으며 “그래, 이건 쌀이라 괜찮아. 모두 채소라 괜찮아.” 하며 가벼운 마음을 갖는다.
더구나 요즘은 베트남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고 편의점에서도 인스턴트 쌀국수를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난 고수를 먹지 못해 정통의 맛을 온전히 느끼지는 못하지만, 대신 청양고추를 넣는다. 베트남 음식점에 가서 청양고추를 달라고 하면 아주 쉽게 청양고추를 얻을 수 있다. 월남쌈 안에 넣은 청양고추가 채소들과 섞이면서 심심하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청양고추를 넣은 매콤한 쌀국수는 해장에도 일등이다. 특히 요즘처럼 바람이 차고 코끝 시린 날에는 뜨거운 국물과 함께 먹는 쌀국수가 더 좋을 수밖에. 모락모락 김이 나는 쌀국수에 청양고추를 조금, 숙주를 듬뿍 넣은 후, 면과 고기를 건져 이름 모를 두 가지 소스를 얹은 양파 초절임과 곁들여 먹으면 온몸이 절로 뜨뜻해진다.
그런데 이런 나도 사실 처음엔 쌀국수를 먹지 못했다. 평소 비위가 약하고 냄새에 민감해서 향이 나는 음식에 대한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맛있는 곳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한 번 먹고 나면 그 음식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곤 했다. 쌀국수도 그런 경우였다. 친구의 추천으로 우연히 들른 쌀국수 가게가 내 입맛을 돌려놓았다. 그때 접한 쌀국수는 한국식으로 만든 불고기 쌀국수였는데 그게 신의 한 수였다. 아마도 그랬기 때문에 한 그릇을 뚝딱 비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 퓨전 쌀국수 덕분에 지금은 본연의 쌀국수까지 다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베트남에서 그곳 사람들이 먹는 500원짜리 길거리 쌀국수를 먹어보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편견이 한번 깨지고 나니 다른 음식에 도전하는 것도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접하지 못했던 비주얼이나 향이 더는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맛을 찾는 즐거움이 된 것이다. 생각해 볼 수도 없었던 양꼬치를 의심 없이 먹어본다든지, 심심하게만 여겨졌던 평양냉면의 깊은 맛을 느껴보려 한다든지 말이다.
매일 지나치기만 했던 가게들을 어느 날 의심 없이 들어가 보기를 바란다. 오늘도 바람이 차니 쌀국수 한 그릇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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