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추경 구인기도순과 십오송의 의미
- 기도, 독경, 염불의 관계 -
글. 이정재

앞서 필자는 육십갑자 전문의 독송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폈다. 전통적으로 기도를 하는 자가 지켜야 할 형식이었는데 그 의미는 일체의 부정을 없애고 시공이 열리는 태초를 만들어 놓는 것이라 하였다. 성·속을 구분하여 속을 떠나 성스러운 차원으로 진입하는 프레임은 세속적인 자기를 떠나 성스러운 참 자아를 만나러 가는 여정이기도 한 것이다.


시공을 초월하는 태초의 우주를 만들고 그곳에 주하며, 도수와 분수에 맞는 바를 구하고자 했던 이러한 기도형식은 장구한 시간에 걸쳐 이어지면서 많은 발전과 왜곡이 있었다. 원불교는 이를 이 시점에 맞게 바루고자 다시 ‘천지·부모·동포·법률 하감지위, 응감지위’라는 어구로 구체화, 현대화한 것이다. 이때 그 본원인 일원상에 대한 인식을 병행해야 한다. ‘법신불전 사은’께 고하는 기도는 이 둘이 하나가 되어 일원과 당체가 둘이 아님을 더한 확대가 일어난 것이다. 기도의 본래 의미는 참 자아로 귀의하는 것이다. 이는 독경과 염불의 목적과도 같은 것이지만 기능에서는 차이가 있다. 독경, 염불, 좌선 등이 자신의 수행에 더 가깝다면 기도는 신앙의 측면에 가깝다.(묵상, 실지, 설명기도로 나뉘어 수행과 신앙을 묶은 형식이다.) 그러나 그 뿌리는 수행으로 얻은 참 자아라는 점이 강조되어 ‘심고와 기도’ 편을 수행편에 놓았다. 이는 결국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실천 강령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로써 성과 속이 둘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육십갑자를 송(誦)해서 열어놓은 태초의 상황에서 기도자는 무엇을 하였던가. ‘중앙단장 기원문 제 일장’을 외웠다. 염송의 횟수는 15회. 이경순이 적은 (十五誦)이라는 별도 표시가 가지는 의미다.
이경순에게 주어진 독송 양은 이미 언급했듯이 4개 장에 이르고, 각각 ‘중앙단장축원 제1장, 상동축원 제2장, 상동축원 제3장, 상동축원 제4장’으로 표기하였다. 이것은 원래 옥추경에서는 다음의 장절에 해당된다. 즉 ‘지경(地經) 15장 보경공덕장(후반부), 보게장, 보응장 상·하, 찬사’로 맨 마지막 부분이다. 대체로 경의 공덕을 더욱 강조하고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과 단장을 제외한 다른 단원 8인은 지경의 다른 부분이 나뉘어져 송했을 것이다. 단장은 옥추경의 앞부분 도의 원리를 설명한 천경을 송했을 것이고, 8인은 팔방에 맞추어 앉아 각각에 주어진 지경을 송했을 것이다. 중앙은 이 모두를 아우르며 마무리하는 마지막 부분을 송하는 순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도를 설한 천경의 부분이 단장에게만 주어진 것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라 판단된다. 대체로 옥추경 독경은 이 천경 부분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천경은 단장·중앙과 함께 8인 제자가 모두 같이 송하고 또 별도로 나머지 지경을 나누어 독송했던 것이다. 이때 단장과 중앙은 지경을 송하는 데에서 제외되어있다.


지경의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지경은 수행도중 혹은 삶의 여정에서 피치 못해 닥치는 여러 장애를 해결하는 술책의 부분이다. 기도자가 자신에게 닥친 우환이나 흉사 혹은 바라는 바를 해당 지경 하나를 선택하여 송한 후, 해당 부적을 살라 하늘에 고하고 그 감응을 얻고자 했던 것이 지경 부분이다. 지경의 이런 특성 때문에 옥추경은 조선대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 귀신을 녹이는 삭사경으로 알려져 있고, 또 신통묘술의 비방책으로 발전하기에 이르게도 되었다. 그러나 원래는 득도를 구하는 도중에 닥치는 난관을 돌파하는 순수한 의도가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구인 기도시 단장과 중앙은 이런 종류의 지경을 외우지 않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단장과 중앙은 자신이 충분히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가 부여된다. 그러나 나머지 여덟 제자는 수행 중 이런저런 난관에 봉착할 수 있고 이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런 정황을 중앙에게 할당한 기도문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이외에도 다른 확장된 해석도 가능한데, 집단적인 기도는 만생을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에게 주어진 기도문을 15송 한다는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자. 15의 의미는 무엇일까. 보통 경을 송(誦)할 때는 3, 7, 3×7(21) 송을 단위로 한다. 전통적인 방법이 그렇다. 이는 매우 유동적인데, 각 기도자마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이 다르고, 또 근기와 목적도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주문기도의 형식은 자신이 목적에 따라 정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성심으로 정성을 들이느냐에 달려있다. 이렇게 해서 정해진 시간은 대체로 두세 시간 정도를 잡는다고 한다. 한 시간이면 너무 짧고 세 시간이면 좀 길다고 할 수 있다. 매일매일 이를 반복한다고 했을 때 두 시간여도 결코 작은 양이 아니다.


15송은 그 앞의 육갑전문과 준비 동작을 고려했을 때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보통 주문 수행이 2~3시간을 기준으로 하고 있음을 볼 때 짧은 시간이다. 나머지는 필자가 앞서 기술했듯이 천경을 송했을 것이라 판단된다. 천경은 그 양이 중앙의 것보다 3배 정도다. 천경의 경우 이때 3독 혹은 7독을 하였을 것이다. 필자가 다시 이 중앙단장의 기도문을 송해본 결과 1독에 5분이 조금 못 미치게 소요된다. 그러면 15송은 70분 정도가 된다. 그렇다면 3배에 이르는 천경의 1독이 약 15분 정도 소요된다고 볼 때, 천경 3독은 45분 정도가 소요된다.(7독은 105분이 소요된다.) 이를 모두 합하면 두 시간에 이르는 시간이 걸린다. 단상 마련과 예를 갖추고 해단의 시간까지 더하면 두 시간여의 기도시간이 나온다. 이는 박용덕 교무가 조사했던 것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이 경우는 천경과 지경을 같이 송했을 경우를 전제한 것으로, 더 자세한 것은 추후의 연구가 더 필요하다. 그러면 이런 반복적인 독송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옥추경 기도의 연원을 더 추적하고 난 후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것과 구인기도와의 상관성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독송의 전통은 교단에서 독경의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독경은 정기훈련의 11가지 과목에 들어있지 않다. 그 전통은 의식을 진행하는 과정에 겨우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수행법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다. 염불이 이를 대신한다고 할 수 있다. 11과목 중에 염불과 좌선은 자성을 밝히는 주요 과목이고, 좌선보다 더 중요한 자리에 놓인다고도 할 수 있다. 염불과 독경은 어떤 내용을 소리내어 외우는 점에서 방법이 같다. 그 주술적 영험함의 기대도 유사하다. 일념에 집중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 목적도 동일하다. 일념에 주하여 참 자아를 찾아가는 같은 방법이다. 둘의 차이는 암송의 대상이 어떤 경이나 문장이나 주문의 정도가 다를 뿐이다. 중복을 피하면서 그 정신을 남겨놓은 것이다. 불교적 독경과 염불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만은 아니다.


<정전> 수행품 제3장에 나와 있는 염불법을 보면 그 과정과 효험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일성에 주하다보면 일념미타에 그쳐 들어가고, 무위안락의 지경에 이르게 되며 삼매를 증득하게 되고, 결국 대정력의 획득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자성을 밝히고 다지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
옥추경 독경은 이외에 신통력의 획득에도 있었다. 실제로 백지혈인이라는 음부의 감응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교리에서는 이를 강조하지 않는다. 모순으로 보이는 초창당시 구인단기도의 옥추경 선택은 과연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용이하지 않아 보이는 별도의 설명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Ι교수·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장. hog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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