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닮은 집짓기, 목수
눈길 비추는 곳,
손길로 공간을 만들다
취재. 이현경 기자 

다행히 오늘은 뜨거운 태양이 비춘다. 비가 오면 일을 할 수 없으니 반가울 따름이다.
이곳은 순천시 대룡동에 있는 에너지자립마을. 주위에는 키 큰 나무들이 둘러 쌓여있고 저 멀리 순천만이 보이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을은 아직 생기지 않았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기에 작업현장의 입구가 곧 마을의 시작이다. 오르막길을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 보이는 서로 닮은 듯 개성 있는 집들이 20여 채. 아직 옷을 입지 않은 어떤 건물의 모습은 그 안이 훤히 들여다보여서 이채롭기까지 하다.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패시브하우스’라는 것.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여 생활이 가능하도록 만든 집인데, 일반 집짓기와는 다른 과정을 거친다. 무엇보다 자연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집을 짓고, 그 마음을 아는 이들이 머무는 공간이기에 더욱 특별하다. 냉장고에도 사용된다는 단열재의 두께는 연필 한 자루의 길이보다 두껍고, 여기에 삼중창은 기본이다. 골조부터 나무를 이용한 목조주택도 있다는데, 여기엔 모두 장수인 목수의 손길이 닿았다. 그의 다독이는 목소리가 작업의 포문을 연다.


“이게 제일 중요한 작업입니다. 대각 한 번 재보게요.”
둥글게 말린 줄자가 길게 뻗어 나가는 순간, 질문이 되돌아온다.
“하얀 쪽 십자에 대야 하죠?”
5개월 차 목수는 그의 말에 따라 한발 한발 정직한 걸음을 옮긴다. 이윽고 멈춰선 그 자리에서 다시 위치를 잡고 대답한다.
“네, 십자에 댔습니다.”
그 이후, 장 목수가 무릎을 굽혀  치수를 확인하더니 옆에 있던 도면을 확인한다.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이번엔 먹줄을 쳐야 하는 작업이다. 모든 건물의 형태를 표시해 주는 게 먹줄인데, 한 번 치면 흔적이 여간해선 잘 없어지지 않기에 신중해야 한다.
“45mm인가요?”
“네!”


신입 목수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양옆으로 위치를 잡는 두 사람. 그 위치에서 수직으로 먹줄을 튕겨야 원래 의도된 위치에 먹줄이 그어진다.
장 목수가 힘차게 먹줄을 ‘탁’ 하고 튕기자 긴 줄에 묻어 있던 먹이 콘크리트에 직선을 남긴다. 사람 키보다 두 세배에 달하는 거리이다. 긴 거리이기에, 그 직선의 가운데 즈음 혹시 모를 오차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윽고 재본 간격은, “오케이.” 누구보다 정확하다. ‘19호’ 깃발이 펄럭이는 집. 이렇듯 한 채의 집에서 각각의 공간을 나누기까지 목수는 그 공간을 여러 번 오가는 것이다.


올해로 18년 경력의 장 목수는 패시브하우스를 짓는 현장에서 10년째 활약하고 있다. 여기에 외국 유학뿐 아니라 독일 패시브하우스연구소에서 인증하는 컨설턴트 자격까지 취득했다 하니, 그야말로 현장 경험과 지식이 조화로운, 믿고 맡길 수 있는 실력파 목수인 셈.
방갈로를 짓는 팀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2층 건물 높이 위에서 가설재를 밟고 지상으로 내려오니 오히려 땅에 닿는 발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나란한 걸음으로 둘은 마을 오르막길을 오른다. 그러다 장 목수가 문득 “연필 좀 깎으셔야겠어요.”라고 말을 잇는다. 신입 목수의 손에는 어느새 심이 뭉툭해진 연필이 들려있다.


잠깐의 휴식시간에 옹기종기 모인 목수만 5명. 이들의 표정은 나무 향을 내뿜는 듯 싱그럽다. 장 목수는 한가로이 담배를 피며 쉬는 그들에게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담배를 필 수가 있어?”라며 농담을 던진다. 그러자 “탈을 벗은 거지.”라며 입을 가리던 마스크를 벗어놓는 동료들. 전기 포트에 물이 끓자 그들의 웃음소리도 뜨겁게 끓어오르고, 장 목수의 농담도 계속된다. “아침 먹고 마시고, 점심 먹고 또 먹고….” 그렇게 뜨거운 커피를 들이킨다. 그의 옆에는 겨우내 떼던 난로가 1년여간 이곳에서 이뤄진 그의 지난 작업을 기억해 주며 자리를 지킨다.


이때 이 마을에 입주한 소병태 씨가 합류했다. 거주한 지 3개월이 되었다는 그는 “너무 좋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열교환기로 인해 창문을 열지 않아도 바깥과 안의 공기가 순환되면서 쾌적할 뿐 아니라, 난방비 또한 예전의 1/20 수준이기 때문이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면서, 입주를 결심하게 된 사람들도 있다 하니 이보다 더 큰 보람이 어디 있을까. 거기다 독일 패시브하우스연구소의 인증까지 앞두고 있는 상태.


장 목수는 이에 은근한 웃음을 짓는다. 이제 공공기관뿐 아니라 이러한 건물을 짓는 곳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처음 통나무를 짓게 되었는데, 이제는 환경에 대한 철학을 가진 목수가 됐다. 한 걸음 또 한걸음 그의 발길 닿는 곳에 사람들의 건강한 삶이 태어난다.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