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기다리셨죠
잠시 봄 정거장에 머물게요
취재 노태형 편집입

꽃들이 지천입니다.
노랑 하양 빨강…. 그 색깔들이 먼저 마음에 불을 당깁니다. 그러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마음이 먼저 쪽문을 열고 산하로 달려 나갑니다. 봄이니까요.

어느 해 봄날일 겁니다.
설렘을 이기지 못해 남도 섬에 들렀다가 봄 빛깔도 못보고 올라오는 길이었죠. 지리산을 돌아오다가 지인의 거처에서 잠시 숨을 돌리기로 했습니다.
“아직 이르긴 하지만 꽃구경은 하고 가야지.”
“이렇게 비가 촉촉이 내리는데….”
“사람이 붐비지 않으니 한적하고 얼마나 좋아.”
손을 끄는 그의 모습에는 마치 소중하게 숨겨둔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한아름 담겨있었죠.
“그래요. 잠시 둘러봅시다.”

그렇게 찾아간 마을은 텅빈 듯 사람 자취가 끊어져 있었습니다. 돌담 너머로 마을을 빙 둘러싼 울타리에는 노란 산수유만 가득 모닥불처럼 타오르고요. 꽃잎 끝에 맺힌 물방울 안에서는 또 다른 산수유 꽃이 불씨처럼 피어났죠. 어디, 봄비 좀 맞으면 어떻습니까?
요즘, 꽃보다 사람이 더 많아 ‘꽃구경’은 사람 구경이 되기 십상입니다.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성질 급한 구경꾼들이 떠나가면 곧 고요해집니다. 어둠을 배경 삼아 채색을 하듯 바람에 흔들리는 꽃구경도 좋고요, 달빛을 벗 삼아 등불로 빛나는 배꽃 구경도 일품이라 합니다.
비오는 날 우산 받쳐 들고 꽃그늘 아래서 눈물 뚝뚝 흘려도 봄은 지나갑니다. 봄은 강물보다 더 빨리 흘러가니까요.

아버지의 봄은 늘 따스했습니다.
이제 감옥 같았던 한겨울을 툴툴 털어내고 아이를 안아 올립니다.
“우리 봄 맞으러 갈까?”
“아빠, 봄이 뭐야?”
“네가 깔깔깔 웃는 거란다.”
영문 모르는 아이와 함께 햇살 가득 쏟아지는 남의 논두렁을 헤집고 다닙니다. “그게 뭐야?” “이게 냉이야. 자, 한번 캐보자” “아빠, 그럼 이것도 냉이야?” “그럼, 이야 똑똑한데….” “와~, 또 냉이 캤다.” 이내 신이 난 아이의 깔깔깔 웃음소리가 논밭 가득 울려 퍼집니다. 이게 봄이네요.

아마 아빠도 그의 아버지에게 배웠을 겁니다. 아이와 함께 신나게 봄을 맞이하는 법을 말이죠. ‘자, 우리, 그동안 구겨지고 얼룩지고 헝클어진 것들, 다 털어내고…. 이번 봄에는 행복 청소 한번 하시게요.’
한 번 흘러간 지금 우리의 봄은 다시 거슬러 오지 않는답니다. 그러니….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