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력과 실행력, 개혁과 통합의 지도자 고대
최호준 | 장충교당 교도회장

원기 103년 새해가 밝았다. 교단의 행로를 ‘사오십년 결실, 사오백년 결복’이라고도 하고, ‘결실 백년, 결복 오백년’이라고도 한다. 어떻든 원기 2세기는 원불교가 세계로 나아가는 결복기의 본격적인 서막으로 예정되었다.
교단의 현실은 어떠한가. 국가통계인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원불교 인구는 원기 70년 9만 2천 명, 80년 8만 6천 명, 90년 12만 9천 명을 나타내다가 100년 8만 4천 명으로 위축되었다. 90년의 반짝 증가세는 당시 통계조사 변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던 결과이고, 30년 간 최저 수준으로 전체 인구의 0.2%대에 머물러 있는 최근 수치가 실제 교세를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새 회상의 법종자가 이 국토에서는 분명한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는 결실기도 마무리 짓지 못한 형국이다. 여기에 교도의 고령화, 교정의 무기력 등 구조적 요소까지 고려하면 결복기나 결실기라기보다 “절체절명의 위기”라고나 해야 적절하겠다.  

그러나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어찌 세우고 키워온 교단인가. 후천을 열어 갈 정법대도가 아닌가. 미약하고 정체된 교세는 일으켜 세울 수 있다. 문제는 교단이 위기의식이나 타개책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타이타닉에서 염불과 좌선, 설법의 공연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비관주의자의 독백인가.
금년 종법사선거를 앞두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설왕설래가 많은 듯하다. 요즘 4차 산업혁명이 회자되는데 한 마디로 세상이 밝아지는 현상이다. <대종경>의 변의품, 전망품 등의 말씀을 새기면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미래 세상을 손바닥 구슬처럼 보고 계셨던 것으로 느껴진다. 그런 대종사께서 종법사선거를 말씀하시고 원기 16년 제정된 ‘불법연구회 통치조단 규약’이 수위단선거를 규정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이 규약은 수위단선거에 관하여 정수위단 남녀 각 1단을 교리 이해, 사업 공헌, 시비 언론, 신망 실행 등이 제일 우월한 단원으로 조직하도록 간결하게 규정하였다. 예비수위단 3단은 정수위단원의 유고 시에 직무대리를 위해서 선출하였을 뿐이다. 그런데 그 후 선거제도 구체화 과정에서 추천위의 정수위단원 후보 3배수 추천, 재가의 정수위단원 기회 봉쇄, 호법·봉도 수위단원 추가, 18인 투표, 선거운동 금지 등이 규정되었다. 대종사 뜻에 따라 선거는 하되, ‘억지춘향’ 식이어서 가급적 최대한 선거의 본질을 희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마저도 4대 종법사까지는 사실상 지명 추대의 관행을 이어오다가 5대 경산 종법사 선출에 와서야 실질적인 선거가 이루어졌다.

교단의 지도자를 대중의 공의에 의하여 선출하는 제도는 “민심이 천심” 의식의 발로요 일원상 사은 신앙의 필연적 귀결이다. 금년 종법사 선거는 교화위기를 타개하고 결복기를 개척할 지도자를 가리는 명실상부한, 진정한 의미의 선거로 시행되길 바란다. 그러려면 종법사 후보가 교단비전과 교정공약을 제시하고 함께 토론하며 서로 검증하는 절차도 필요할 것이다.
첫째, 대중의 공의(公議)를 명확하게 반영하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다듬어서 선거를 치러야 한다. 그리하여 출·재가와 연령대를 초월하여 전 교도의 마음을 모으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이를 위해 수위단원의 구성 등 교헌 개정사항은 다음으로 미루더라도 호법·봉도 수위단원 정수, 수위단원 선거방법, 재가의 선거권·피선거권 확대, 후보자 자질 검증에 필요한 선거운동 방식 도입 등은 공론을 거쳐 교규를 조속히 개정해야 한다. 둘째, 법력(法力)과 실행력(實行力)을 겸비한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2년 전 교헌개정 작업이 무산된 중요한 이유가 종법사와 함께 교정원장도 선출하자는 개정안 때문이었다. 아마 위원들이 교령(敎令)과 교정(敎政)의 분리를 염두에 둔 것이고 장기적으로 옳은 방향이지만, 우리 교단의 규모, 발전단계, 위기상황 등을 고려하면 시기상조다. 따라서 종법사가 교단 주법이자 교정 책임자로서의 두 역할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종법사직에 오를 분은 교리, 설법, 신앙, 수행에 수승한 법력은 당연히 갖추되 효과적으로 교정의 성과를 실현할 수 있는 실행력을 겸비해야 한다. 교법의 시대화, 대중화, 생활화를 넘어 세계화까지 도모할 수 있는 경륜이 있어야 한다. 관념적 설법에 그쳐서는 아니 되며 실사구시(實事求是)로 교화의 성과를 이루어내야 한다. 셋째, 개혁(改革)과 통합(統合)을 완수해낼 수 있는 지도자를 모셔야 한다. 교단이 처한 상황에 관해 위기의식을 가지고 개혁을 이루어낼 수 있어야 한다. 교화구조 개편, 교당교화 확충, 교역자 역량 강화와 복지확충, 재가교역자 역할 확대, 성과주의 인사 강화 등 산적한 개혁과제를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경륜이 필수적이다. 총부를 서울로 옮겨 시대화·세계화 기반을 구축하고 교정원 주요 보직에 재가교역자를 발탁할 수 있는 정도의 개혁성을 보여야 한다. 한편 교단 통합도 개혁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동안 교단 내에 드러나기도 하고 잠재되어 있기도 한 분열상을 극복하고 또 한 차례의 선거가 가져올 견해의 차이와 감정의 골을 봉합해야 한다. 개혁과 통합에는 인사가 만사다. 당선자는 교정원장이나 주요 교구장 등 교단의 핵심 보직에 친소나 인맥을 떠나 각 자리에 걸맞은 자격을 제대로 갖춘 인사를 발탁하여 탕평인사(蕩平人事)를 펼쳐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고들 한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에서 물질개벽은 위기의 신호가 아니라 정신개벽의 기반이요 계기다. 아이디어와 기술만으로 창업하고 10년도 안되어 백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글로벌 대기업보다 가치가 커진 우버(Uber) 같은 유니콘(unicorn) 기업군이 부상하는 기업 ‘급성장’의 시대다. 원불교의 교법과 공부법으로 교단과 제도를 일신하고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기술·사회 변혁을 활용한다면 지금의 8만 교도가 10년 후 80만, 20년 후 800만이 될 수 있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이제 더 늦으면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지 모른다. 위기의식을 가지고 전법교화를 극대화할 비전과 방향감각, 실행력을 확보해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니 소리 내지 말고 무난하게 넘어가자는 관성을 기대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파당과 세력 규합으로 정치판과 같은 선거를 획책하는 조짐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는 교단의 미래가 없다. 
많은 교도들이 이번 종법사 선거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대산 종사께서 일찍이 원기 62년 수위단 선거를 앞두고 ‘법치교단 전통의 수립’을 강조하면서 “모두가 원만평등하고 지공무사한 진리에 바탕하여 이 일에 임하므로써 천지가 보나 대중이 보나 후인이 보나 떳떳함을 남겨야 한다.”고 한 말씀대로 선거가 이루어지기를 염원한다.  
 

선거, 대표자를 고르는 지혜
최덕문 | 변호사교무·총무부

선거는 대중이 대표자를 선출하는 의사 결정 절차입니다.
원불교는 교헌에 따라 ‘종법사선거’와 ‘수위단원선거’ ‘중앙교의회 의장-부의장선거’를 실시하고 있으며, 종법사선거와 수위단원선거는 별도의 교규를 제정하여 규정에 따라 이뤄집니다. 그 중에서도 수위단원선거는 선거관리위원회가 구성되고 후보사퇴나 선거운동이 금지되는 등 선거권자와 피선거권자의 권리와 의무에 상당한 제한이 가해지기도 합니다. 단원들이 그 안에서 단장을 뽑는 방식인 종법사선거와 달리, 정수위단원선거는 수백 명이나 되는 후보자격자 중에서 18명의 당선인이 선출되어야 하기에 선출방식이 2단계(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자격자 중에서 3배수의 후보자를 정하고, 선거인이 투표로 후보자 중에서 당선인을 선출하는 방식)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올해 수위단원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과연 현행 선거제도가 우리교단에 잘 맞는 옷인지에 관하여 의심을 품어보고 재가·출가교도님들이 함께 더 좋은 방향을 궁리해 볼 뿐 아니라 각자의 의견을 교환하고 혜두를 단련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선거의 다른 말은 ‘대의제(代議制)’, ‘간접민주제’입니다. ‘직접민주제’로 대중들이 직접 주요사항을 의결한다면 굳이 선거가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요. 선발된 대표자가 대중을 대신(代)하여 의결(議)하는 간접민주제는 어쩔 수 없이 ‘선거가 반복될수록 명성과 힘(權力과 金力)을 가진 후보가 선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 교단 내의 수위단원선거에서도 별로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더욱이, 현행 규정에 따른 후보추천위원회의 구성과 후보추천방식은 과거의 수위단원들과 성향이나 경력이 비슷한 후보자들에게 유리하며, 모든 선거인이 남자 9명 여자 9명의 후보자에게 투표를 해야 하는 ‘완전 연기명 투표’ 방식은 다수파에게 유리한 방식입니다. 위 세 가지 요소들을 종합해보면 현행 선거방식으로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의외의 인물’이 수위단원이 될 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거규정에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수위단원이 되면 교구장 등 요직으로 당연하게 임명되는 우리 교단의 관행은 ‘적과의 동침 후속편’이라고 해야 될지 ‘행정편의주의의 끝판왕’이라고 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점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시대가 총부에서 모두 모여 공동생활하는 원기 10년대도 아니고, 제가 위와 같이 현행 간접민주제 방식을 비판한다고 해서 “직접민주제를 실현하자.”라는 비현실적인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간접민주제를 유지하면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도구’를 바꾸는 것으로도 충분히 선거의 방식부터 결과까지를 전부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명성과 권력을 가진 후보나 많은 실적을 쌓았던 후보가 굳이 우리의 대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단지 최소한의 자격이 있음이 검증된 평균적인 대표자의 선출을 원한다면 ‘추첨제 민주주의’라는 방식이 있습니다. 국내 모 정당의 대의원선거에서 실제로 운영하고 있는 방식인데, 피선거권자들이 일정수준 이상의 능력과 경험을 갖추고 있고, 최악의 대표자라도 소속된 공동체를 망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방식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추첨을 통해 뽑은 대표자는 ‘성실하게 연구하고 토론하여 의결할 의무’만을 가질 뿐 과거 선출되었던 대표자 자리가 자연스레 가져다 준 ‘권력과 명예’를 대물림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언젠가 뜻하지 않게 대표자가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과 불안감’으로 인해 구성원들의 정치참여와 관심은 증가하게 될 것이고요. 자연스레 ‘수위단원’과 ‘교구장 등 교단 요직’이 분리되어 수위단원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고유 업무(교서 편정, 교헌교규 정비, 법위사정 등)에 더욱 충실해 질 것을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이보다 조금 덜 파격적인 방법으로 ‘후보추천위원회의 인적구성 변경 및 위원회내규제정’, ‘완전 연기명 투표제 대신 누적투표제(선거권자가 특정 후보에게 중복해서 투표할 수 있는 방식)’ 등을 떠올려 볼 수도 있겠습니다.
때로는 이미 변화된 현실에 맞추어 규정을 올바르게 개정하는 때도 있지만, 규정이 개정되는 경우는 어떠한 목표나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목표나 정책수립에는 우리들의 적극적인 의견제시와 변화요청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선거권자의 의무는 단순히 자신에게 주어진 표를 행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출된 대표자가 위임 받은 대로 일을 잘 하는지 감시해야 하고, 나아가서는 어떠한 대표자가 우리 공동체를 위하여 필요하며 현재의 선거방식이 그러한 대표자를 고르는데 적절한 방식인지를 고민하고 요구하는 것까지 포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연 변화할 수 있을까?
오정행 | 교무·교화연구소장

6·10 민주항쟁을 다룬 영화 ‘1987’의 인기가 가파른 상승세를 타면서 그해 6월 여름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화려한 출연진들의 열연 덕분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무심한 시간 속에서 까맣게 잊혀졌던 그해 6월의 뜨거웠던 거리가, 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를 외치던 군중과 그 위로 쏟아지던 메케한 최루탄 냄새가 생생하게 살아오는 듯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6월 민주항쟁은 영화와는 달리 미완의 혁명으로 그치고 말았다. 직선제 개헌을 통해 독재 권력을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이루고자 했던 온 국민의 열망이 야권의 분열로 그 열기가 한풀 꺾이면서 정권 교체로까지 이어지진 못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에게도 한때 영화 속 그해 6월의 거리를 숨 가쁘게 뛰어다니며 사회의 변혁과 교단의 변혁을 이야기하던 뜨거운 청춘이 있었다. 그러나 그 청춘들이 혁신과 개혁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그때 그 시절의 청춘들에게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원기 103년은 교단사에 있어서 여러 가지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 해임이 분명하다. 아주 멀리는 교단 창립의 물질적 정신적 기초가 되었던 방언공사 100주년과 법인성사를 이룬 100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자, 가까이는 교단 제3대를 결산하고 교단 제4대를 설계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지닌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는 중대 선거가 있는 일대 변혁의 변곡점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지난해부터 구성원들 사이에 차기 지도부 구성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이 회자된다. 그 대부분의 이야기는 대중이 지어낸 것이거나 지레짐작으로 만들어 낸, 사실과는 무관한 내용들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새로운 지도부 선출에 대한 구성원들의 기대와 변화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머지않아 다가올 교단의 새로운 지도부의 선출은 대중의 기대와 바람을 담아내기에 충분한 것일까? 그동안 교단에서 치러진 몇 차례 선거에 참여하고 그 과정을 지켜본 결과로 미루어 짐작해본다면 이러한 기대는 실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실 교단이 가지고 있는 지금의 선거제도는 일반적인 선거제도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 다수 존재한다. 단적으로 수위단선거에서 피선거권자가 자유롭게 출마와 사퇴를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점도 그렇고, 피선거권자의 정보에 대해 전무한 상황에서 18명을 선택하는 경우도 그러하다. 재가·출가에게 다르게 주어지는 선거권 문제나 퇴임 후에도 여전히 유지되는 선거권에 대한 문제 등은 또 어떠한가? 물론 이러한 상황들에 대해 종교가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여전히 적지 않지만, 그런다고 한다면 굳이 설명하기조차 옹색한 선거라는 제도를 빌려올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 되었건 새해 들어 수위단선거가 어떻고 종법사선거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들이 점점 더 많이 회자되고 있는 것을 보면 자꾸 마음이 불편해진다. 교단 미래에 대해 어떠한 구상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깜깜히 선거하는 현재의 선거제도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기대와 요구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다. 그렇다고 해서 오랫동안 정착되어 온 교단의 선거제도가 무의미한 것이라거나 잘못된 것이라는 것은 아니다. 개혁과 혁신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대중이 요구하는 만큼의 변화를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기실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일은 수위단 선거제도의 개선이나 수위단선거를 통한 새로운 지도부 구성에 있지 않다. 교단 제3대를 결산하고 교단 제4대를 설계해 나가야 할 시점에서 정말 시급한 일은 어쩌면 교단 지도 체제에 대한 전반적인 변화와 혁신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일일 것이다. 사실 우리는 원불교 100주년을 앞둔 몇 해 전 교헌개정특별위원회를 출범하고 원불교 교헌 전반에 대한 개정을 준비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교헌 개정에 관한 논의는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가 임박하면서 교단의 총력을 모아내는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아무 결론도 얻지 못한 채 중단되고 말았다.
이제라도 교헌 개정에 대한 논의를 하루빨리 시작할 필요가 있다. 수위단선거제도 개선이나 새로운 지도부 선출과 같은 눈앞의 현상적 일에 매몰되기보다는, 교헌 개정을 중심으로 보다 확실한 교단 미래 구상이 필요한 때이다. 벌써 아주 오래된 기억처럼 어렴풋하기는 하지만 교헌 개정 논의가 이루어질 당시 많은 사람이 주장했던 핵심 의제는 당연히 교단 통치구조와 행정조직의 혁신에 대한 개편이었다.
다시 영화 ‘1987’로 화제를 돌려보자. 영화 속 여주인공 연희는 시종일관 “이런다고 세상이 뭐 달라지나요?” 하고 끊임없이 묻는다. 하지만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영화 속 인물들은, 함께 힘을 모으면 도무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세상이 변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끊임없이 교단의 변화를 말하면서도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나 아닌 제3자에게 의지만 해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원기 103년의 출발이 되길 바란다.


선거가 교단 2세기의
동력이 되기를 염원한다
박현공 |  교무

우리 원불교 교단의 초창기는 그야말로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일제의 탄압 속에 교단을 이끌어오셨고, 정산 종사께서는 일제 말과 6.25 전쟁의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시절을 이끌어주셨고, 대산 종사께서는 가난한 교단의 살림을 해결하고 교단의 국량을 크게 틔워주시었다. 이러한 토대 위에 좌산 상사는 군소종교로 전락할 위기에서 국내 4대 종교와 세계교화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경산 종법사께서는 교단 100년 성업을 거룩하게 봉찬해주셨다.
이러한 교단사(敎團史)를 돌이켜보면 그 속에 있었던 교단의 아픔과 위기마저도 아름다운 무늬가 되었고, 하나하나가 기적과 감동 아님이 없는 ‘기적의 100년사 감동의 100년사’라고 좌산 상사는 회고했다. 이처럼 우리의 선진들은 교단 내외의 간난(艱難)한 시절을 스승님 지도 아래 이소성대·일심합력·무아봉공 등의 창립정신에 바탕하여 거룩하게 이끌어주셨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공동체의식은 희석되고, 교화현장에서 오래전부터 들려오는 교화침체의 나팔소리는 점점 그 소리가 크다. 또한 교당의 통폐합은 현실이 되고 있다. 너무 아프지만, 100주년 성업사업을 기점으로 사실상의 ‘100년 결실 교운’의 열매는 모두 따먹어 소진해 버렸음을 직시해야 한다. 교단의 모든 행정력과 역량을 쏟은 10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마쳤지만, 100주년 이후를 준비하여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체계적인 준비를 해왔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또, 지난 원기 102년 총회는 교단이 준비하고 대비해야 할 현안 문제에 대한 현 교정원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교단구성원들의 기대와 이목은 다음으로 넘어가 버렸다. 이제 교단 구성원들의 기대와 이목은 올 9월에 있을 수위단선거에 집중하고 있다. 
원기 103년에 뽑힐 수위단원은 교단 3대 3회(~108년)를 이끌고 마감하며, 교단 4대 1회(109년~)를 기획하고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 이는 교단 사오백 년 결복 교운의 씨앗을 뿌리는 시기이다. 원불교의 역할이 사회로 미래로 세계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주세교단으로 자리매김할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교단의 지도부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명감을 짊어진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더욱 차기 수위단원은 평소에 자신이 처한 교화의 현장에서 실질적인 교화성공의 경험, 교단 문제에 적극적인 의사발언, 대사회적인 활동, 교단의 공동체 가풍(家風) 실현, 교단법에 위배됨이 없는 모습 등을 갖춘 인물이 선출되어야 한다.
이러한 구성원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수위단원 선거가 되려면 그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건강한 ‘집단지성’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수위단원을 선출할 선거권이 있는 교단구성원들이 충분한 역량과 안목을 갖추고 있으면 이상적이겠으나,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건강한 집단지성을 만들어 내기 위해 지금 당장 실행할 수 있는 행동이 있다. 그것은 다가올 수위단원 선거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하겠다.
관심의 방식은 개인별로 다양하겠으나 수위단원 선출을 앞둔 시점까지 어떠한 인물이 ‘교단의 얼’이 되어야 하는가를 화두로 삼고, 교단 소식지를 두루 살펴보고, 동지 상호간 문답하고, 교단을 위한 기도도 하며, 사심(私心)을 놓고 대공심(大空心)·대공심(大公心)의 원력을 뭉쳐가야 한다. 가장 건강한 집단지성은 사심(私心)을 놓고 대공심(大空心)·대공심(大公心)으로 뭉친 원력이기 때문이다.
이는 수위단원 선거 전(前)의 문제해결의 임시방편을 말한 것이 아니다. 선거 후(後)에도 구성원들이 함께 해야 할 근원적인 행동을 제시한 것이다. 제도나 지도자가 바뀐다고 하여 교단이 안고 있는 공동체의 모든 문제가 일소(一掃)되지는 않는다. 공동체의 문제는 결국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것이 정도(正道)다.
개개인들의 기대와 염원을 새로 선출될 수위단원들에게 미루는 요행(僥倖)을 말고, 흩어진 각자의 마음을 교단 대의에 ‘일심으로 합력’하고, 각자의 심전에 사심을 뽑아내 ‘무아봉공’의 대공심(大公心)을 양성하자. 올 한 해 교단구성원 각자가 이러한 심법을 갖추기에 노력한다면, 103년도 수위단원 선거는 그 가운데 공명정대하게 치루고 교단 2세기 역사를 바로 세워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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