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불교를 대표한다
글. 한종도

내가 원불교를 처음 알게 된 때는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아버지(한성민 원무)의 손에 이끌려 교당을 다니게 된 나는, 처음에는 원불교에 가기 싫어했다. 10시 법회를 가기 위해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 번, 두 번 교당을 나가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항상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교무님 덕분에 조금씩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신성회 훈련을 알게 되고 매년 신성회 훈련에 참석을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이 좋아서 참석하던 훈련에서, 나는 ‘교무님’의 역할과 교무님이 되는 방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부모님과 교당 교무님의 출가 권유에는 “하지 않겠다.”고 답을 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신성회 훈련에 참석하기 위해 전주에서 영광까지 오로지 혼자 길을 찾아가야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서원의 밤’ 프로그램 시간에 진지한 고민을 했다. ‘내가 만약 교무님이 된다면 잘 할 수 있을까? 교무님의 삶은 어떠한 삶일까?’ 그 시간 내내 고민한 끝에 나는 교무님이 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그런데 간사 때 총부에서 교무님들과 축구를 하다가 부딪쳐 넘어지면서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신체검사를 받은 후 군에서의 판정은 ‘제5 국민역’으로 바로 면제.

그때로부터 10년. 첫 발령을 군종교구로 받았다. 군대를 가지 못했으니 군종교구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았다. 처음 1년은 매번 사고를 치기 일쑤고, 실수도 잦아서 함께 사는 교무님들의 머리를 뜨겁게 했다. 그때마다 나는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안 될 거야.’라고 외치며 자존감을 떨어뜨렸다. 그럴수록 실수는 더욱 늘어났다. 그렇게 인사이동이 시작되는 11월. 교무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종도 교무는 군교화에 맞지 않는 것 같다. 이동서를 써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방에 혼자 앉아 깊은 시름에 빠졌던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하고,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출근 30분 전에 사무실에 미리 나와 청소를 해놓는 일부터, 시키는 일은 최대한 빨리 끝내기 위해 의자에 앉으면 그 일이 끝날 때까지는 절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교무님께서 나를 다시 부르시더니 “군종에 다시 남게 되었다. 축하한다.”고 하셨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다른 곳으로 가지 않게 되었다는 것보다,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받았기 때문이다.

또다시 1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군종교구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처음 출가의 결심을 세운 그날 밤, 그 서원의 밤 시간. 12년 전 그 서원을 세웠던 그 때가 바로 신의 한 수가 아니었나 생각을 해본다. 원불교가 아니었다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종도로 지금까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수요종교행사와 매월 입교식을 진행하기 전, 법복을 입고 계단에 오르면서 늘 생각한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원불교 군종을 대표하고, 원불교 교단을 대표한다.’라고. 내가 전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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