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줄지어 떠나다
철원평야에서
취재. 노태형 편집인

몇 해를 벼르다 마음을 냈습니다.
겨울이 매섭기로 소문이 난 철원이기에 철새 여행은 늘 미루어지고 또 미루어졌죠. 그런데 하필 제일 추울 때 그곳을 찾다니요. 마음먹은 건 늘 임계점에 가까워야 실천이 되는 묘한 마력이 있죠. 

디엠지철새평화타운에서 해설사의 안내를 받아 민간인통제구역 검문소를 통과하자 이내 먹이활동에 열심인 재두루미 가족의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벌써 놀라시면 곤란해요. 조금 있으면 두루미들의 연회장을 보여드릴게요.”
1분이 멀다하고 연신 좌우측 몇 시 방향을 지시하는 해설사의 설명을 따라 시선을 돌립니다. 그때마다 그 자태도 고고한 단정학과 재두루미 가족들이 각각의 구역에서 경계하듯, 혹은 무관심한 듯 느릿느릿 걸음을 옮깁니다. 여긴 철새들의 낙원이니까요.

“경적은 울리지 말라.”는 부탁과 함께 해설사는 “30~50마리가 무리지어 있는 풍경은 짝을 구하기 위한 젊은 두루미들의 연회장”이라고 설명합니다. “아 참, 재미난 게 있어요. 간혹 혼자 다니는 두루미가 보이죠? 그들은 짝을 잃은 홀아비거나 과부 철새예요.” 한 번 짝을 이룬 두루미는 평생을 함께 하고, 재혼(?)이 없다는군요. 그래서 고고한 학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환경부 조사(지난 1월 19~21일)에 따르면 철원평야에는 현재 두루미 930마리와 재두루미 3983마리가 먹이활동을 한다고 합니다. 이는 전 세계 야생개체수의 64%와 28%에 이른다는 게 환경부의 설명입니다. 또 이곳은 쇠기러기의 월동지로 유명하죠. 겨울 철새의 개체수도 해마다 증가해 2018년에는 49종 3만9천898마리로, 2015년에 비해 2.7배나 늘었다는군요.

“이곳은 민간인 통제지역이기에 철새들이 안전하게 겨울을 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더구나 지역민들이 탈곡한 볏짚 등을 그대로 놔둬 철새의 먹이를 제공하고 있죠.” 철새와 사람의 공존이 철원에서 전쟁의 상흔을 지우고 평화의 땅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곧 철새들은 떠납니다. 봄이 오니까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철책을 넘어 북쪽 시베리아 등으로 돌아가죠.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무리지어 떠나는 철새들에게서 ‘삶은 결코 하나만이 답은 아니다.’는 것을 알아갑니다. 떠나는 것이 아름다운 건 아마 역주행하는 철새들 덕분이겠죠.
하지만 잠시 생각을 바꾸면 텃새의 삶도 이에 못지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철새들의 고단함 대신에, 견디기 힘든 환경을 이겨내는 텃새들의 몸부림은 숭고함을 넘습니다. 사람들은 혹 철새의 게으름이 텃새로 주저앉았다고 할지 모르지만, 텃새는 텃새대로 자연의 변화를 이겨내는 지혜를 배워가는 것입니다. 그건 바로 ‘견딤’이겠죠.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있습니다.
수만 마리의 철새들이 일제히 비행을 시작함에도 어찌 부딪힘이 없는 걸까요. 인간사회 같으면 벌써 충돌이 몇백 번은 일어날 텐데, 말이죠. 그래서 자연의 질서는 위대한가 봅니다. 그 질서의 비밀은 뒤따르는 ‘양보’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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