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다는 한 마디
글. 김동현

  우리 극단에 두 선생님이 계신다. 한 분은 올해 연세가 쉰여덟이고 한 분은 쉰일곱이다. 두 분은 부부이다. 그리고 연극배우다. 연극을 한지 삼십 년이 되셨지만 지금도 연극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연극 활동을 하신다. 이런 선생님들께 최근에 놀란 적이 있다.
  최근 올린 <카사블랑카>라는 연극의 출연 인원은 남자 5명이었다. 여기에 가장 어르신인 극단의 남자 선생님도 포함되셨다. 여자 선생님은 공연 진행을 도와주기로 하셨다. 
  어느 날 배우 다섯 명과 작가 그리고 나는 다 함께 카페에서 작품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치열한 토론과 팽팽히 날이 선 밀집된 시간은 실로 경험하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연출의 입장에서 어떤 장면에 대해 내가 그리는 그림을 설명했고, 배우들은 자기가 그리는 그림과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느낌에 대해 말했다. 그들은 내 그림에 대해 이해되는 부분은 받아들였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정연한 논리를 가지고 반대했다. 나도 배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아닌 것은 걸러냈다.
  세 시간에 가까운 토론 중간에 여자 선생님께서 오셨다. 선생님께서는 멀찌감치 떨어진 다른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우리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밀집된 토론이 끝나고 배우들은 녹초가 된 듯했다. 나 역시 진취적이고 강한 에너지가 감당이 안 돼서 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남자 선생님을 제외한 우리들은 다 20대, 그리고 배우 한 명만 30대 초반이었다. 이런 우리가 감당해내기에도 버거운 에너지의 토론을, 선생님께서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듣고 계셨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길로 새나가지 않도록 이끌어 주고 동참해 주었다. 장시간의 토론이 끝나고 선생님 두 분과 작가, 내가 밥을 먹으러 가는데 남자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살아 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울컥했다. ‘아 젊음이란 이런 것이구나.’ 내가 아는 것만을, 내가 할 수 있는 영역만을 재단하거나 경계 짓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것들을 향해, 미지의 세계를 향해 우리가 함께 가는 것. 날 선 토론이 너무 떨려서 어디론가 숨고 싶었던 나에게 선생님의   그 말씀은 맥박이 뛰는 삶이 어떤 것인지, 내가 지향해야 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그때 나의 눈에는 선생님 두 분이 청년같아 보였다. 그리고 끊임없이 모험을 감행하는 보헤미안처럼 보였다.
  두 선생님께서는 지금도 큰 열정을 가지고 연극 작업에 임하신다. 몸을 사리지 않고 무엇이든 먼저 해 보신다. 발레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무술도 하고, 연기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이 하는 즉흥극도 하고 연기훈련에도 참여하신다. 무엇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도, 또 한참 어린 20대와 10대들과도 함께 어울리신다. 여전히 두 분의 가슴속에 있는 젊음을 느낄 수 있다.

행복을 찾아서
글. 김윤희

  각자의 생활을 하느라 바쁘던 동창 친구들과 망년회를 가지게 되었다.
어느덧 우리의 나이도 스물아홉. 서른이 고작 한 달도 안 남았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연락이 끊긴 다른 친구들의 소식에 놀라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내년 계획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직 미혼인 우리들 사이에서도 가장 늦게 결혼할 것 같았던 친구 하나는 내년에 결혼식을 올릴 거라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대학원을 들어가겠단다. 나 역시 웃으면서 나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나 요가 배우러 인도 갈 거야.”
  내 말에 친구들은 놀란 기색이다. 얼떨떨하긴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말로 내뱉고 나니 미래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느낌이다.
  사실 난 평소에 건강을 위한 필라테스를 한두 달 해봤을 뿐, 전문적으로 요가를 오래 하지는 않았다. 요가라고는 막연하게 그냥 이상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히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 그만큼 요가에 대해서 조금도 모르는 것이다.
  이런 내가 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그저 우연이었다. 나는 평소에도 행복하게 살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그러다가 이십대를 끝내고 서른이 되는데 뭔가 의미 있게 맞이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고민하던 중 갑자기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절대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걸 하자고 다짐하게 된 것이다.
  “그럼 일단 비행기 표부터 끊어.”
  “한국에서 요가를 좀 배우면서 적응을 해야지.”
  진지하게 내 계획을 받아주는 친구들을 보니 조금 더 힘이 났다. 이미 집 근처 요가원도 등록했으니 어쨌든 첫발은 뗀 기분이다.
  어렸을 땐 서른이 넘어가면 뭔가 큰 일이 생길 줄 알았다. 그런데 성적에 맞춰서 대학을 가고, 전공에 맞춰서 직장을 구해 평범한 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서른이라는 숫자가 무덤덤해진다. 돌이켜보면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이 사는 것을 보고 따라 살아온 기분이다. 그런 게 없어졌다고들 하지만 아직도 주변에서는 알게 모르게 ‘이제 결혼적령기이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 역시 최근 몇 년 전부터 숱하게 들어온 말이 “넌 언제 결혼할래?”였다.
예전엔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던 게,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살면서 결혼을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안 할 수도 있고, 설사 하더라도 꼭 지금일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래서 남들에게 등 떠밀리듯 살지 말자고 다짐했다. 과거에야 나이에 떠밀려 살았다지만 요즘 시대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 그리고 난 나만의 방식으로 행복한 삶을 살려고 한다.
  내 나이가 어때서? 난 행복을 찾아서 인도로 떠나려 한다!

지금이 한참 뛰는 나이
글. 정양덕

  요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가장 궁금합니다.
돈을 보고 사는지, 건강을 보고 사는지, 마음을 보고 사는지, 희망을 보고 사는지, 행복을 찾는지…. 모두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다들 겪어야 살겠지마는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서원과 나이는 더욱 그렇지요. 나의 지나온 과거사와 현재를 비교할 때 너무나도 격차가 심하기에, 앞으로 내 나이에 능동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서 움직일까를 늘 고민합니다.
  이제는 생각이 변해야 행동이 변하고 행동이 변해야 삶이 변합니다. 예전에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인사를 잘하면서 존경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로 변화된 생각에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사랑하고 품위를 지켜주어야 어른 대접을 받는 세상이지요. 이것이 변화된 상하 인사법입니다. 그리고 항상 세상의 돌아가는 것을 보고 듣고 찾고 사용하면서 소태산 대종사님이 말씀하신 ‘용심법(用心法: 마음 사용하는 법)을 배워 내 나이에도 거리낌 없이 새 희망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저 역시 항상 무아봉공정신으로 사회봉사 활동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 첫째로 가정이 화목하고, 둘째로 건강하여 마음이 편안합니다.
  만약 용심법을 몰랐다면 지금 세상에서 설 자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용심법에서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고, 용심법 덕분에 나이 구애받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물론 인간이기에 세월이 흘러가는 것과 나이를 먹으며 해를 넘기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요.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그건 피할 수 없는 것인데요.
  건강과 행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요, 내가 만들고 내가 지켜가는 것입니다. 저는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 치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치매 예방을 위해서라도 주옥같은 옛 노래, ‘트로트 쿵짝’을 배우면 인간 삶에 보약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 나이 77세. 100세를 기준으로 삼으면 지금이 오히려 한창인 시기입니다. 50이면 죽음 보따리 챙기고 70이면 복 보따리를 챙겨야 한다고 하기에 요즘에는 시간만 있으면 집에서 서각을 하거나 건강을 위해 산책도 하고, 기관이나 복지관, 요양원 등을 다니면서 아코디언 연주 봉사활동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너무나도 바쁜 생활들이지요.
  앞으로 저는 제 나이에 관계없이 내 인생 취미로 인간생활에 행복건강 보금자리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지금 내 나이가 희망의 나이이기에, 희망의 등불로 삼아 살아가리라 굳게 믿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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