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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헌 솜 줄게 새 이불 다오!” 2018년01월호
추운 마음 따스히 덮어주는, 솜틀집
“헌 솜 줄게 새 이불 다오!”
취재. 이현경 기자 


  하늘도 땅도 꽁꽁 얼어서 몸을 움츠렸다.
모두 늦잠을 자는 듯 평화롭고 고요한 오전 9시경. 권영일·최광무 사장 부부가 다정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이 운영하는 이불가게와 솜틀집은 부부의 모습을 닮은 듯 나란히 위치해 있다.

  “커피 한잔할래요?” 권 씨가 말을 건네기 무섭게, 전화로 예약한 서울 손님이 찾아왔다. 갈 길이 바쁘다면서도 ‘솜 트는 일’은 겨우내 꼭 해야 할 행사라며 근처 큰 마트에서 기다릴 테니 연락을 달란다.
  그가 떠난 자리엔 어느새 부부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불 세 채가 놓였다. 최 씨는 마치 어린아이를 안듯 이불을 들어 올려 솜틀집으로 옮긴다. 방진 마스크와 챙모자를 쓰고 본격적인 채비를 마치는가 싶던 그가 솜틀집 안에 자고 있는 거대한 두 거인 중 하나를 깨운다. 그러자 ‘우우웅’ 하고, 낮은 악기 소리를 내며 솜틀기가 요란한 기지개를 펼친다.

  얇은 나무대로 이뤄진 판 위에 헌 솜을 올리자 무수한 바늘 침을 맞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솜의 불순물이 제거되고, 다시 태어난 얇은 겹의 솜들이 원형 통에 말린다.
최 씨는 겹겹이 둘린 솜들을 손으로 토닥토닥 두들기면서도, 헌 솜을 판 위에 올리느라 기계의 앞뒤를 오가며 분주하다. 그러다 원형 통에 말린 솜이 어느 두께에 다다르자, 이를 당겨 ‘촤르르’ 솜이불을 펼쳐낸다. 최 씨가 빠른 손길로 솜들을 접어 비닐 안에 넣자, 이들은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르기에 바쁘다. 그야말로 목화솜이 치열하게 날리는 현장이다.

  그사이 이불 가게에 부지런한 동네 주민들이 모였다. 어떤 아주머니는 아픈 남편의 침대 위에 깔아놓을 요를 사기 위해 이런저런 질문들을 건넨다. 권 씨는 “요즘 지나가시는 걸 계속 못 봤지!”라고 말하며, 그를 반갑게 맞이하다가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난 듯 박수를 치며 가게 문 가까이에서 볕을 쬐던 요 하나를 꺼낸다. 손님이 지난 여름에 맡겨 놓고 간 이불이다. “돈 버셨네요. 안 사셔도 되겠어요.” 권 씨가 밝은 얼굴로 말하자, 손님은 “어머, 생각도 못 했어요. 이거면 괜찮겠죠?”라고 묻는다. 권 씨는 손님에게 돈을 받는 대신 서로의 건강을 기원하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한편, 솜틀기를 마친 최 씨가 이불가게로 들어온다. 서울 손님 생각에 부지런히 기계를 돌린 탓에, 하얀 솜들이 금세 투명한 비닐 안에 담겨 보송보송 제 숨을 쉰다. 최 씨에게 솜을 건네받은 권 씨가 “이제 제 차례네요.”라는 말과 함께 이불가게에 하얀 홑청을 펼친다. 그리고 그 위에 모양에 맞춰 층층이 목화솜을 정성스레 깔아 올리고, 솜의 가장자리를 깔끔하게 접어 넣는다. 순식간에 마법같이 홑청 안에 솜이 들어간다.
  이후 권 씨는 재봉틀로 이불의 창구멍을 박음질 하더니, 다시 바닥에 펼친다. 하얀 실을 풀어서는 이불의 가장자리를 따라, 두어 바퀴를 돌며 바느질한다. 솜을 고정하는 이유뿐 아니라, 이불을 덮을 사람에 대한 따듯한 마음을 한 땀 한 땀 담는 것이다.

  이윽고 완성된 세 채의 이불. 그는 새 이불을 기다리는 서울 손님에게 전화를 건다. 손님은 이내 달려와 감사 인사를 전하며 금세 이불을 가져갔다. 이렇게 잠깐의 휴식이 올 때면, 남편 최 씨도 다른 이불들을 차에 싣고 배달 나갈 준비를 한다.
  장사가 한창 잘 될 때는 두 대의 솜틀기로 오후 늦게까지 솜을 틀 정도로 바빴지만, 이제는 천연 솜이불을 사용하는 사람이 줄면서 손님도 예전만큼 많지 않다. 그러나 오히려 전국에서 손님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5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솜틀집에서 항상 녹지 않는 눈처럼 날리는 솜들과 함께한 시간이 벌써 10여 년. 권 씨가 오후의 햇살에 비친 작은 솜뭉치들을 청소하며 이곳을 가꿔온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가게를 정리하던 권 씨가 그만 서울 손님의 이불을 다른 손님 것과 바꿔서 보낸 사실을 깨달았다. “이걸 어쩌지. 서울 양반 것이 여기 있네….” 이미 시간은 꽤 흐른 상태. 급하게 누른 통화 연결음이 더없이 초조하게 흐르자, “내가 못 살아.” 하며 절로 애타는 마음에 탄성이 나온다. 결국 몇 번의 시도 끝에 닿은 전화 연결.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권 씨에게 서울 손님의 대답은 다행히 밝았다. 그렇게 택배를 통해 서로의 이불을 바꿔 보내기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제서야 슬며시 권 씨의 웃음이 터지면서 입가에 절로 노래가 흥얼거린다. 솜이불을 계속 사용해줘서 고맙고, 손님의 고운 마음씨에 또 고마움이 겹친다. 이처럼 열심히 일한 이들의 낮의 노동은, 부드럽고 따듯한 솜이불로 위로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