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인 전통자수 기능전승자
오색 찬연한 실로 그린 그림
취재. 김아영 객원기자

 “자수는 실로 그리는 그림이에요.”
 최정인 전통자수 기능전승자(16-04)의 말처럼, 색색의 실이 비단 위를 오가자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진다. 학은 날아갈 듯 가볍고, 꽃과 열매는 살아있는 듯 붉다. 마치 수채화 같아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입체감이 살아있다. 그녀가 35년 동안 색색의 실로 그려온 자수 이야기다.“우리나라 자수는 크게 동양자수와 전통자수로 나누는데, 제가 하는 것은 전통자수예요.” 동양자수가 있는 그대로를 모사하는 세밀함과 정확함이 있다면, 전통자수는 틀은 따르되 작품을 하는 사람의 표현 방식대로 색감이나 분위기를 자유롭게 변용할 수 있는 게 특징. 최 기능전승자가 자수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이유이기도 했단다. “20대 때, 전시회에서 자수 작품을 처음 보고 반해, 독학으로 시작했어요. 기법이 안 되면 밤을 새워서라도 터득했지요.” 바느질 기법이 다양한 전통자수를 독학으로 하다 보니, 꼼꼼히 메워져야 할 자수에 구멍이 뚫리기도 여러 번. 더구나 무궁무진한 색감에, 굵기도 7가지나 되는 색실을 골라가며 작품을 만드는 것은 노력만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게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도 바늘을 한 번 잡으면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단다.

 “자수는 기능적으로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똑같은 디자인의 작품을 한다고 해도 사람마다 다른 작품이 나오죠. 각자의 색깔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 매력이 있지요.” 화가가 물감을 섞어 자신만의 색을 만들 듯, 공예가가 실과 원단을 염색해서 쓰는 자수. 작가에 따라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색의 쓰임과 조화라는데…. 그녀는 다른 작가와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색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실패하더라도 과감히 색을 선택하는 편이에요. 무엇보다 작품 전체의 통일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요.”  제작 기간만 1년, 조화로운 색에 한 번, 풍부한 색감에 두 번 놀라게 되는 8폭 병풍 ‘백학도’와 10폭 병풍 ‘십장생도’에는 정작 많은 색을 사용하지 않았다. 전통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겨자색 등 시대의 흐름에 맞춰 전체적으로 색감을 낮추고 여백의 미를 살려, 고급스러우면서도 풍부한 느낌을 완성해낸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녀의 작품 평에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단다.

 “젊은 분들이 제 작품을 보고 세련되고 고급스럽다고 많이들 말하세요. 기분 좋지요. 전통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잘 받아들여진 거니까요.” 전통의 맥을 잇되, 색과 가구의 형태 등이 현대 생활방식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는 그녀. 병풍과 가구, 활옷 외에도 찻잔이나 차통, 그릇, 주머니, 노리개 등 생활 공예로서의 자수를 위해 소품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렇기에 현대적 감성이 돋보인 자수 브로치로 2013년 ‘대한민국공예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젊은 사람들이 우리 문화를 알고 좋아해 줘야지요. 아무도 좋아하지 않으면 보람이 없잖아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장인은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고 간단히 답하는 최 기능전승자. 86년 전승공예대전 입선을 시작으로, 가구와 병풍, 소품 등을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했고 2005년에는 125조각을 이어 만든 대작 ‘25조 자수가사’로 대통령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대통령상 수상까지 쉼 없이 달려왔는데…. 그녀는 여전히 비단을 틀에 걸 때면 설레고, 마무리가 될 때 즈음에는 완성된 모습이 궁금해 조급해진다. “35년 동안 작품마다 혼을 다 쏟았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해 나가야지요. 그리고 기왕이면 제 작품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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