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개벽시대의 원불교
글. 이도하


(지난 호에 이어) 
 
 유발 하라리는 <호모데우스>에서 미래 인류가 직면하게 될 실험실형 종교로 기술인본주의와 데이터교(敎)를 들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제 사피엔스는 전혀 새로운 종족으로 진화하거나(기술인본주의)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실체들에게 다음 세대를 넘겨줘야 한다.(데이터교) 그가 인류 문화의 최후 단계를 종교적 모습으로 그린 것은 흥미롭지만, 그의 결론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인공지능(A.I)으로 대변되는 미래의 모습은 인공지능로봇의 발전과 함께 할 인간증강공학(I.A)에 대한 이슈와 함께 그려진다. 풀어보자면, 인공지능로봇이 발전하면서, 인간 자체도 로봇과 함께 진화하여 새로운 증강인간인 트랜스휴먼, 포스트휴먼이 등장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언뜻 인공지능을 물질개벽으로, 인간증강공학을 정신개벽으로 치환하여 물질과 정신의 공(公)진화를 연상해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관점이다. 그러나 <포스트휴먼이 온다>1)에서도 지적하듯이 증강인간공학은 기술중심주의 관점에서 인간을 하나의 기계로 파악하고 우생학적으로 인간을 개조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할 위험성이 있다.

 연기론적으로 인간은 타인과 사회에서 분리될 수 없는 연계된 개체이며, 개별 인간의 기계적인 증강이 전체 사회의 질을 높이는데 직접 기여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얼마 전엔 인공지능기술의 규제를 놓고 초글로벌 기업의 CEO 마크 주커버그와 엘론 머스크의 논쟁이 있었는데,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기적이기만 한 관점은 인류 전체를 위하기보단 자칫 파괴적인 면을 띨 수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양보해도 4차 산업혁명이 완성되고 인공지능이 본격화된 시대에 종교는 더욱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 수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기업이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을까? 그러나 한편 종교의 권위는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종교가 어떤 진리적 근거와 실천 방법론으로 미래 시대에 맞는 삶의 양태를 제안하고 인도할 수 있을까.

 소태산이 제시한 ‘개벽’과 ‘겸전’ 개념은 미래 사회에 대해 적절한 진단과 대안을 모두 담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류를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대해서도 개벽과 겸전은 특별한 해법을 내놓는다. 

 소태산의 정신개벽은 물질개벽과 무관하지 않다. 정신과 물질은 뗄 수 없이 엮여 있고 서로 공(公)진화한다. 정신개벽은 물질개벽의 선용 또는 활용을 기반으로 구체화된다. 또한 인간증강공학과 같이 신체, 감각, 지식을 확장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리적 종교와 사실적 도덕에 근거해서 인류 공동체가 함께 공생을 모색하기 위한 실천 방법론으로 제시된다.  

 좀 더 나아가서 소태산이 제시한 정신개벽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론의 핵심을 필자는 역시 소태산의 ‘겸전’의 층위에서 찾는다.

 소태산은 <원불교교전> 전반에 걸쳐 겸전을 역설하였다. 다음은 <원불교교전>에 등장하는 겸전의 층위, 즉 포괄 또는 공(公)진화의 의미를 갖는 용어들이고, 괄호 안의 숫자는 각각의 용어가 얼마나 자주 쓰였는지, 어떤 의미로, 어떤 표현에서 주로 쓰였는지를 정리한 표다. 이원적이고 이질적인 요소들의 다양하고 정교한 결합의 방식을 제안하고 있는 원불교의 교법은 앞으로의 공유와 협업의 시대에 최적화된 교과서라 할 만하다.

병진 (96건) : 함께 앞으로 나아감 | 삼학, 자타력 병진
쌍전 (41건) : 모두 완전함 | 영육 쌍전
일여 (38건) : 완전히 하나가 되어 나눌 수 없음 | 동정 일여
병행 (30건) :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한꺼번에 행함 | 이사 병행
겸전 (23건) : 완전하게 모두 갖춤 | 내외 겸전
통합 (22건) : 둘 이상을 하나로 모아 합침 | 모든 교리를 통합 활용
병용 (1건) : 한결같이 포용함 | 청탁 병용 (竝容) 하시는 포용
통섭 (1건) :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 | 종교 진리 통섭
융합 (1건) : 서로 섞이거나 조화되어 하나로 합쳐지다. | 원중 융합

 

 소태산에 의해 제시된 아홉 가지 겸전의 용어들은 고도화된 미래 시대의 공생과 협업의 방법론을 세세하게 구분해 제시한다. 어떤 층위가 다른 층위에 비해서 중요하다거나 근원적이라고 하기보다는 이 모든 층위들을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다음 이미지들은 위 아홉 가지 겸전의 키워드들을 필자가 그림으로 정리해 본 것이다. 이렇게 정밀한 융합의 텍스트라니…. 원불교적 토양에서 소태산 방식으로 공부하고 실천하는 교도들은 겸전의 DNA가 이미 내재되어 미래 시대를 위한 공유와 협업의 전문가일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으로 미래는 집단 지성의 시대, (원불교식으로 표현하자면) 천여래 만보살의 시대다. 소수 엘리트에 의해 주도되던 시대에서 인류 전체의 공동체적 지성이 요청되는 협업의 시대로의 전환인 것이다.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 등 신체 조건이 우수한 종족을 제치고 지구의 주인이 되었던 과정도 협업 능력과 (협업하는데 필요한) 언어 능력에 기인했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경·목축 사회로 이행하던 사피엔스들은 어찌됐던 지구의 동반자들까지 포용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인류는 오직 사피엔스만 남았고, 그들이 전 세계로 확장되는 동안, 야생 동물들은 기형적으로 가축화되었으며, 맘모스같은 거대 동물들은 멸종해 버렸다.

 사피엔스가 이미 신이 되었다는 주장도 흥미롭지만, 우리는 먼저 우리가 지구와 다른 생명체들에게 저질렀던 만행을 돌이켜보고 참회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또 한 번의 거대한 변화 앞에서, 추한 주도권 싸움을 벌이기보다는 ‘이제야말로’ 협업과 공생, 개벽과 겸전의 축제를 벌일 때다.

 작년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의제를 제기했던 다보스포럼2)은 최근 대통령 직속으로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신설한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KAIST와 원탁회의를 개최하였다. 역시 주제는 로봇과 인간의 협업과 공생이었다.

 유비쿼터스라는 용어가 미래 변화의 중심에 있었던 밀레니엄 벽두에도 한국은 디지털 전도사들에 의해 미래를 선도하는 국가로 지목되었다. 용어는 바뀌었지만 2세기 원불교의 벽두에서, 한국은 다시 한 번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가능성을 만들어 가는지도 모른다. ‘정신의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 가능한가….’ 21세기가 2세기 원불교에게 묻고 있다.

 필자는 ‘소태산 십상’과 ‘인류의 미래’를 테마로 VR-MR3) 연계 콘텐츠를 제작중이다.
소태산은 “앞으로의 세상은 견성은 집에서 다하고, 큰 도인 찾아가서 성불하는데 공들일 것이다”라고 했는데4), 이 말을 조금 바꾸면 ‘견성은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서 하고, 성불을 위해 오프라인 교당이나 훈련원을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두 프로젝트의 최종 단계 역시, 나와 전체의 관계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목표다. 변혁의 시기에, 콘텐츠는 일상으로 파고들어 변혁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


1) 이종관, <포스트휴먼이 온다>, 사월의책, 2017.
2) 매년 스위스 다보스(Davos)에서 각국의 정계·관계·재계의 수뇌들이 모여 개최하는 연차총회의 통칭.
3) VR(Virtual Reality) - 기기를 통해 가상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기술. MR(Mixed Reality) -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 정보를 결합, 현실을 반영한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기술.
4) <대산종사법문집> 제3편 수행 p.128. 견성과 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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