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도훈 교무
좌선은 깊이를 다져주고 무시선은 폭을 넓혀준다
취재. 장지해 기자

어렸을 때의 꿈은 화가였다.
미술대회에서 1등을 놓쳐 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선생님은 “나중에 크게 될 테니 작품 하나 받아놔야겠다.”고 했을 정도. 그는 본질과 조화의 측면에서 ‘살리고 빼는 걸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미술의 철학적 원리를 익히 알았다.
그런 미술적 감각은 선(禪) 수행을 통해 비움을 찾아가는 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그는 특정한 자세보다도 선의 본질에 충실한 가운데 각자가 가진 에너지와 성향에 맞는 편안함을 찾으라고 한다. 이는 선 수행에 있어 절대 금기시되는 ‘잠(수면)’과 관련한 부분에서도 나타난다. “저는 선을 지도할 때 ‘자도 된다.’고 말해요. 그 정도로 편안해야 선의 본질인 ‘원적무별한 진경’에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 길도훈 교무가 선을 지도하는 풍경은 그래서 자유롭다. 눕든지, 웅크리든지, 빳빳하게 세우든지, 벽에 기대든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선정에 들기 위해 자세보다 중요한 건 각자의 편안함 속에서 나오는 맑은 기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막연하게 여겨지던 선이 한 발 가깝게 다가온다. 그리고 ‘나의 에너지에 맞는 수행 방법은 뭘까?’를 고민하며 스스로의 길을 찾아보게 된다.

● 올 한해 전무출신 훈련에서 진행한 선(禪) 강의와 지도의 호응이 좋습니다.
“마흔이 될 때까지는 수행만 바라보고 달려왔어요. 이젠 바라던 만큼은 되었다 싶어서 나머지 인생은 덤이라 여기며 삽니다. 그동안 쌓아 온 노하우를 교무님들께 전해 드리고 싶어요. 내생에 다시 오면 제가 누구에게 지도를 받겠어요. 후래 교무님들께 배우겠죠. 결국 나를 위한 거예요. 하하.”
그는 13년간 성주 삼동연수원에서 근무하며 단전주선과 무시선 그리고 그 둘을 잇는 행선과 선식까지 아울러 체계적으로 정립했다. 선의 본질적 의미만 남기고 선을 어렵고 힘들게 여기던 관념과 형식들을 과감히 덜어낸 것. 그래서 누구나 선에 쉽게 흥미를 갖고 짧은 시간에 선정에 이르도록 한다. 그는 현재 충북 괴산의 작은 마을에서 ‘선방’을 준비하며 교무들을 위한 선 지도자 과정을 열고 있다.

● ‘선’ 하면 고정화된 틀(모습)이 먼저 떠오르는데요.
“선을 잘 하기 위해서는 자세에서 ‘긴장과 이완의 균형’을 잘 찾는 게 중요해요. 그런데 그 긴장과 이완의 균형이라는 건 성향이나 신체의 상태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죠. 그걸 한 가지 형태로 획일화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거예요.”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규정짓는 것에서부터 선에 대한 거리감이 생긴다고 말하는 길 교무. 그러기에 그는 ‘심신의 편안함’을 가장 우선으로 여긴다. ‘자도 된다.’고 말하는 것 역시 그 때문. 버티느라 괴로운 한 시간보다 30분 푹 쉬고 난 후의 30분이 더 꽉 찬 수행이라는 것이다.
“어떤 경지를 얻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선을 대하면 선이 어려워요.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스스로를 경직시키거든요. 그러면 선은 선이 아니라 노동이 되죠. 그렇게 몇 달은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몸도 망가져요.”

● 경직되지 않은 선이란 무엇인가요?
“삶에 있어 영혼의 휴식이 중요한데 하나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의 휴식 즉 잠이고, 다른 하나는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에서 감정과 생각을 우선 내려놓는 것이죠. 이렇게 양 방면으로 휴식이 된 후에 ‘내가 조금 더 적공을 할까?’라는 생각이 들때 선으로 들어가야 해요. 물론 수행자라면 당연히 ‘영혼의 휴식+적공’까지 가야 하겠지만, 우선적으로는 ‘내가 어느 정도로 수행을 하고 싶은가?’를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해요.”
선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수행을 편안하게 할 것인지, 적공으로 할 것인지.’를 묻는다. 편안하고자 수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생각과 감정을 놓는 영혼의 휴식 정도를 추천하지만, 적공을 위해 수행을 하고 싶다는 사람에게는 체계적으로 단계를 밟도록 한다. 원하는 차이에 따라 접근 방법을 달리하는 것이다.

● 저서인 <단전주선>과 <무시선>의 출간 순서가 선 수행의 단계를 의미하는 것 같았습니다.
“기초와 활용면에서 보면 맞아요. 하지만 서로 보완관계에 있습니다. 과거에는 좌선만 잘해도 된다고 봤지만 대종사님은 좌선이 무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하셨어요. 수행의 방점이 무시선에 있는 거죠. 좌선은 깊이를 다져주고 무시선(無時禪)은 폭을 넓혀줘요. 무시선을 하는데 좌선이 기반 되지 않으면 비움의 깊이가 얕아요. 그러니까 ‘나는 좌선은 안하고 무시선만 할 거야.’는 수행자의 태도가 아니에요. 반대로 ‘나는 좌선은 해도 무시선은 안 해.’라고 하는 건 비움에 갇힌 채 발현시키지 못하는 거죠. 이 두 가지가 어울러져야 균형 맞는 수행이에요.”

● 일 속에서의 공부가 강조되다 보니, 고요한 수행정진이 약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건 무시선의 개념을 잘 못 잡아서 그래요. 무시선에 대해 기본 개념으로 삼는 것이 <대종경> 수행품 17장 법문이죠. 바느질하면서도 약을 잘 달이고, 약을 잘 달이면서도 바느질을 잘 하는 게 무시선이라고 하는데, 그 법문에 전제된 내용이 있어요. 바로 ‘대종사께옵서 언제든지 하는 그 일에 마음이 편안하고 온전해야 된다 하시므로….’라는 부분이죠.  하나를 챙기더라도 평온함과 온전함으로 했다면 80점을 줄 수 있지만, 두 가지 일을 다 잘 챙겼더라도 편안함과 온전함이 없었다면 그건 50점이 안돼요. 일만 잘 챙기는 사람은 예민하고 짜증이 많고 남을 잘 다그치는 성향을 가져요. 평온함이 빠졌으니까요. 남의 일만 해준 거지 자기 수행엔 쌓인 게 없습니다. 이건 우리 원불교법이 아니잖아요?”

● 무시선을 잘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수행의 개념과 방법이 자기에 와 닿아야 가슴 깊이에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우선 스스로 와 닿는 나만의 표현과 수행 방법을 찾아보세요.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는다.’ 이 말이 내 것이라고 여겨지는 요즘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건 대종사님 당대의 언어잖아요. 이 시대에 맞는, 그리고 각자에게 와 닿는 무시선에 대한 표현들로 바꿀 줄 알아야 해요. 고요함, 평온함, 비움, 편안함…. 나의 선심(禪心)이 어떤 말로 표현될 때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지 자기 가슴에게 물어보면 찾을 수 있어요. 그리고 단순한 하나의 일에서 흥미 있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부터 해보는 거예요. 이렇게 평떼기 하듯 확장해 가면 삶이 곧 무시선이 됩니다.”

● 원불교의 시대화·생활화·대중화는 현재진행형 과제인데요.
“관념의 성을 부숴야 해요. 그 관념의 성 속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건 아무래도 의식(儀式)인데, 49재 외에 대부분은 다 조석심고로 충분해요. 그게 더 위력이 있어요. 아침·저녁으로, 귀찮다는 생각 없이 하니까요. 마음의 습관들이기가 어렵다고 하는 사람에게 저는 조석심고를 권해요. 예를들어 10년, 20년 동안 아침저녁으로 ‘평온한 마음’을 갖고자 하는데 어떻게 안 될까요? 이것이 작은 것 같지만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에 아주 중요하게 작용할 듯합니다.”

● 지난 1세기의 개척정신을 2세기에도 잘 이어가야 할 텐데요.
“기성세대를 인디고 세대, 미래 세대를 크리스탈 세대라고 하는데, 크리스탈 세대는 영적이면서도 사랑과 나눔을 좋아해요. 싸우는 걸 싫어해서 뭔가가 안 맞아도 대들거나 부딪히지 않고 비켜서죠. 그렇다고 이 아이들에게 개척하려는 마음이 없느냐? 그건 아니에요. 요즘 세대는 ‘나 이거 하고 싶어. 나 여기에 흥미 있어.’ 하면서 하고 싶은 걸 게임 삼다가 개척을 이뤄내요. 더 편안하고 힘이 있고 자연스러운 개척이라 원한도 없고, 뭔가를 이뤘다고 해서 으스대지도 않죠. 그게 오히려 개척의 ‘무한동력’이에요. 미래에 희망을 가져도 되는 이유죠.”

● 함께 사는 교역자 간의 윤기가 교단의 큰 힘인데요.
“과거에는 저도 부직자를 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에 이것저것 가르쳐주는 걸 우선했어요. 그 다음에는 기다려줬어요. 1년, 어떤 사람은 2년 혹은 3년까지도 걸리지만 기다려주면 알아서 잘 해내더라고요. 요새는 ‘행복해? 뭘 하면 행복해? 너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뭘 해주면 될까?’ 하고 많이 물어요. 자기 소리를 낼 수 있어야 스스로 책임도 갖게 돼요.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보다 진화된 영혼들이니까, 들어주고 믿어주면 다 해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자녀를 잘 키울 수 있느냐?’고 물으면 전 아이를 존경하라고 대답해요. 기성세대가 부교무를 존경하면 서로 존경하고 위하는 삶이 저절로 돼요.”

● 삶의 표준으로 삼는 말씀이 있나요?
“일원상 서원문에 나오는 ‘진급’이라는 말을 가장 좋아해요. 영적으로 어떻게 진급하고 성숙해갈 것인가, 어떤 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가 늘 화두죠. 제가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가를 생각해보면 ‘내 영혼이 아름답다.’고 느낄 때인 것 같아요. 내 영혼이 순수하고 맑은가, 열려있는가, 진리적으로 품위와 수준이 있는가 등을 생각하면서요.”

● 은혜롭게 사는 비결을 알려주세요.
“자신의 눈빛을 들여다보며 영혼을 사랑하고 북돋아 주세요. 내 마음의 창인 내 눈빛을 들여다 보면서 맑고 영롱함을 깃들여가려면 수행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내 영혼을 사랑하면 나도 남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고, 남도 나를 함부로 하지 않아요. 그러면 저절로 다 은혜롭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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