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눈, 열린 귀, 열린 마음
사실 ‘그 날 거리’에는 성직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다들 그냥 지나쳤다.

글. 강명권

 점심, 인사동에서 회의를 마치고 걸음을 옮기는 데 멀리서 한 여인이 구걸을 하고 있다. 서울역에서조차 보기 힘든 모습이라 가까이 갔는데 ‘세상에….’ 그 모습에 기가 차 말문이 막힌다. 온몸에 살점은 하나 없고 뼈만 앙상한 모습이다.

 나는 다가가 “지금 계시는 곳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외형과는 다른 사뭇 무심한 어조로 “같이 지내는 보호자가 있으니 그냥 놔두라.”고 한다. 그녀의 다분히 정상적인 말투와 표정 때문에 나는 이 상황이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언제쯤 가시냐.”고 물으니 “두세 시간 후에 간다.”고 한다. 자세한 사항은 그 때 더 알아보기로 하고 사무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왔다. 거리의 온갖 행인들이 “어떻게 도움을 주면 되냐.”고 묻고 있었지만 그녀는 아무 말이 없다.

 아는 자활담당 공무원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사진을 본 공무원도 심각한 상태라며 구세군에 연락해서 ‘거리응급구호팀’을 보내겠다고 한다. 그 밖의 지인들을 동원했다. ‘구세군브릿지센터’와 길거리 여성들에게 주택을 지원하는 일을 20년 간 해온 여성지원센터장님께도 연락을 했다. 

 연락을 받은 많은 분들이 와서 다양한 방법으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상태를 점검했다. 최대한 도움을 주려 했지만 한사코 거부한다. 본인이 모든 제안을 거부하니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모두들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결국 추후에라도 필요할, 신상파악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고 결정했다. 내가 남기로 했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싶었지만 혹 그녀가 그 사이에 사라질까봐 꾹 참았다. 기다린지 다섯 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어두워 공기마저 차가워진 저녁 9시 무렵, 그녀가 자리를 정리한다. 돈과 물건을 챙기고 자리와 멍석은 근처 좌판에 맡기고 일어선다. 그러더니 잠시 후 화장실에서 깔끔한 옷에 흰 모자를 쓰고 나오는 게 아닌가. 그 상황도 놀라웠지만 더 충격인 것은 그녀의 몸 상태다. 마치 옷을 얹어놓은 막대기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기에 따라갔다. 하지만 그녀는 한참동안 정류장 의자에 앉아있었다. 특정한 시선이 없이 넋이 나간 듯 보였다. 그렇게 30~40분이 흐르고 드디어 그녀가 버스에 탔다. 나도 몰래 버스 뒷자리에 가서 앉았다.

 버스는 종로 시내를 벗어나 50분 이상 달렸다. 그녀가 차에서 내리자 갑자기 어느 나이든 여자 분이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는다. 보호자인가보다. 그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땅바닥에 주저앉았고, 곧 둘은 손을 꼭 잡고 택시를 탔다. 나도 놓칠세라 택시를 잡았다. 졸지에 형사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골목을 돌고 돌아 결국 그들의 집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인들에게 그 주소를 알려주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아직도 많지만 우리는 그들이 내는 아픔의 소리를 외면하는 듯하다. 사실 ‘그 날 거리’에는 성직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다들 그냥 지나쳤다.

 ‘건져주 살려주 우짖는 저 소리’를 알아보고 알아들을 수 있을까? 혹은 마음을 열어볼 수 있을까? 볼 수 있는 눈, 들을 수 있는 귀 그리고 느낄 수 있는 열린 마음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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