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환
글. 김도필 예비교무·원불교대학원대학교

 우환이 생겼다.
 걷잡을 수 없이 힘이 들었다. 밖으로 향하는 두 구멍에서는 물이 나오고 좀처럼 쉬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물길을 터놓으면 그 물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있듯이 나는 이미 이 우환의 물길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대강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지 못했다. 한번 터놓으니 속력이 붙었다. 물줄기도 굵어져서 이제 웬만한 둑으로는 막을 방도를 찾지 못할 것 같았다.
교무님과 상담을 하고, 친한 교우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강하게 밀고 들어오는 슬픔은 잠잠해졌다. 하지만 그 슬픔이 여전히 둑을 가득 채운 탓에 위태롭다. 이 위태로움이 후일에는 양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한 가지, 생각하는 것과 현실에서 나타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혼자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했을까.’

 대종사님께서는 <대종경> 요훈품 16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에 두 가지 어리석은 사람이 있나니, 하나는 제 마음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면서 남의 마음을 제 마음대로 쓰려는 사람이요, 둘은 제 일 하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남의 일까지 간섭하다가 시비 가운데 들어서 고통받는 사람이니라.’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열중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게 지금의 내가 할 일이다.

요새 드는 수자상
글. 김근직 신촌교당

 요사이 나이가 드니 수자상이 생기는 것 같다. 말소리도 투박해지고 내 주장이 다소 강해지는 것 같다. 내 개인적인 나름의 분별력에 집착하여 고집을 부리게 된다. 또 나이만큼 대우받으려는 마음이 속에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한다.

 오늘 종친회 사무실에 갔는데 회장께서 나를 불러 “종친이 왔으니 와서 인사를 하라.”고 한다. 보니까 처음 보는 사람인데 굉장히 젊었다. 기분이 상했다. 인사를 받아야 할 나이인 나에게 먼저 인사를 하라고 하는 것은 경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편치 않은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같이 앉아 있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종친회에 처음 온 손님이니 인사를 먼저 하면 어떻냐마는 수자상이 올라와 평상심을 방해하고 마음을 내내 괴롭힌다.

 마음을 차분히 바라본다. 그러자 문득 송나라 선승 야부도천의 선시가 생각난다.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흔적이 없듯 경계가 와도 마음에 파문이 없이 무심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으니, 없는 그 자리에 머물고 싶다. 그렇게 종친회 사무실에 고요히 앉아있었다.

막막하네
글. 김대해 예비교무·원불교대학원대학교

 아침 작업 시간에 한참 풀을 뽑다가 기어코 한숨이 나온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모두 뽑아야 할 잡초뿐이다. ‘이 많은 풀 중에 성한 건 하나도 없고 다 잡초라니, 보통 일이 아니다.’라는 막막한 생각이 든다. 동시에 하기 싫은 마음이 확 일어난다. 그냥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싶은 생각도 든다.

 온전한 마음으로 연구해본다. 사실 이런 상황은 굳이 시비를 따져 보지 않아도 정답을 알 수 있다. 계속 잡초를 뽑는 것이 앞으로 더 이로울 일이다. 지금 뽑지 않으면 언제 뽑을 것이며, 그냥 두면 후일에 일이 얼마나 더 커지겠는가. 하지만 이 명확한 답을 두고도 문제가 되는 건 마음이다. 실행으로 옮기는 마음이 없으면 시비이해를 따지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아무리 따져봐야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실질적인 변화는 생기지 않는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오늘 심고 때 했던 기도 내용을 되새겨 본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우직하게 나아가기로 했다. 너무 멀리 보지 않고 천천히…. 그저 육근 동작 하나하나에 마음을 모아 행하자고 다짐했다.

 ‘지금 당장 잡초를 다 뽑을 수는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될 뿐이다.’ 마음을 정하고 나서 다시 일에 집중했다.

교당생활을 시작하며
글. 이산하 영등포교당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임시(?) 간사다.

 영등포교당에서 임시 간사로 생활한 지 한 달 반이 넘어가고 있다. 유치원 때부터 중국에서 생활하다가 원불교학과에 진학하기 위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왔다. 한국생활에 적응도 하고 원불교학과에 진학할 준비도 하기 위해 교당에서 임시 간사생활을 하는 것이다.
교당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일을 접하게 되었다. 그 일들을 통하여 많은 새로운 경험을 했다. 집과는 전혀 낯선 교당생활을 하면서 함께 사는 교무님께 이것저것 많은 도움을 요청하였고, 교무님께서 친절하게 알려주신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교무님뿐만 아니라 교도님들께서도 많은 배움과 도움을 주신다. 늘 교무님과 교도님들에게 감사하다.

 다만 교당 생활에서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 생활이 너무 규칙적인 것이다. 지금 내 나이에 견디기가 참으로 힘들다. 아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학교 다니는 것 외에는 자유롭게 지냈던 생활이 습관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만약 이 생활을 잘 견디면 어떤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 미래는 변수다.’라고. 나 자신이 어떻게 성장할지 당장은 모를 일이지만, 확실한 것은 이 생활을 통해 나는 분명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얻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특성 따라 지도하는 법
글. 권화명 교무·제주교당

 어린이 법회 날. 신산공원에서 야외법회를 본 후 짜장면 집으로 향했다. 4인용 테이블이어서 ‘한 그릇씩 먹을 수 있는 남자아이들을 한 테이블에 앉히고, 나눠 먹어야 하는 여자 아이 두 명과 나 그리고 1학년짜리 남자아이가 함께 앉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학년짜리 남자아이가 자기는 형들과 앉겠다고 한다. 나는 “유민이는 한 그릇 다 못 먹으니까 교무님과 먹어야 돼. 여기에 앉자.”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형들 사이에 앉았다. 이쪽으로 오라는 말을 반복해보아도 계속 고집을 피운다. 화가 나려고 했다. 게다가 옆에 있던 어떤 아저씨가 “남자아이를 여자아이랑 같이 앉히면 되나. 따로 앉혀야지.”라며 웃는다.

 방금 아저씨의 말을 생각해본다. 그 나이대의 남자 아이들은 당연히 형들을 잘 따르고 이성친구 앞에서는 부끄럼을 타기 마련이다. 나의 행동을 반성하며 “그래. 그럼 여기에 의자를 하나 더 놓고 유민이는 여기 앉아.”라고 하니 아이는 그제서야 “네~.” 하고 예쁘게 대답을 한다.

 대종사님께서도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접응하여 보면 대개 특성이 각각 다르며, 그 특성을 잘 이해하여야만 서로 촉되지 않고 널리 포섭하는 덕이 화하게 된다.’고 하셨다. 비록 어린아이일지라도 하나의 인격체로서 특성을 잘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걸 배우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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