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담 조수현 서예가

필묵에 담은 마음세계
취재. 김아영 객원기자

 “서예에 이런 글귀가 있어요. 인서구노(人書俱老). 사람과 글은 세월이 흘러야 비로소 어떤 경지에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기에 쉬지 않고 끊임없이 해야 하는 거예요.”

 ‘가장 한국적인 서예를 추구하는 서예가, 해탈된 경지를 단순명쾌한 필지로 완성한다.’는 평가를 받는 그의 답은 뜻밖이었다. 한 평생을 서예가로, 또 원광대학교 서예학과 교수로 재직해 온 조수현 교무(법명 대성, 원광대 명예교수, 현 원광중앙신협 이사장). 그를 가리키는 세상의 호칭에, 그는 묵묵히 붓을 들 뿐이다.

 “글(서예)은 곧 그 사람(書如其人)이에요. 글씨에 정신이 담기니까요.” 서예의 매력에 빠져 한평생 연구자인 동시에 작가로 살아온 그. 글씨가 좋아 주경야독으로 대학원을 졸업하고 국전에서 입선과 특선을 하며 초대작가가 되었다. 특히 그의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큰 획은 원광대학교에 우리나라 최초로 서예학과를 개설한 것이다.

 “나이, 성별, 지역을 넘어 전국에서 글씨를 쓴다는 사람들은 다 모였어요. 그들을 가르치려면 저 또한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지요.” 서예·문자예술학과를 토대로 차근차근 동양학대학원과 일반대학원에 학과를 개설하고, 처음으로 ‘서예학 박사’를 탄생시키기도 했던 그. 수많은 뛰어난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학생들에게 항상 강조했던 건 ‘글이 그 사람’이라는 거였어요. 마음이 안정 되어야만 좋은 글씨가 나온다고요.”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면 그 흔적이 금방 글씨에 담기는 서예. 학자이기 이전에 교무인 그에게 서예는 수행과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학생들에게도 서예술의 정신세계를 강조하며 마음공부와 인격 수양의 중요성을 함께 가르쳤다. “무엇보다 서예를 할 때 나쁜 글을 쓰진 않잖아요. 경전 속 말씀을 옮기거나 고전 내용을 쓰면서 뜻을 새기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인성교육 효과도 있는 거예요.”

 지금도 붓 끝에 정신을 집중해 글씨를 쓰다보면 모든 것을 잊게 된다는 그. 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서예작가로서도 부단히 작품에 매진해 왔는데…. 93년 첫 개인전을 시작해 한국서예를 주제로 꾸준히 전시회를 열어온 그는, 특히 2011년에 미주총부 원다르마센터 개관을 기념한 개인전을 열어 한국의 서예문화를 외국에 알리기도 했다. “밥을 먹듯, 숨을 쉬는 것처럼 매일 글씨를 써야 명작이 나오는 거예요. 꾸준히 쉬지 않고 해야 하지요.” 그러기에 오히려 정년퇴임 후 오롯이 글과 글씨에 마주할 수 있는 지금의 시간이 더없이 좋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는 오랜 숙원이었던 한국서예의 통사격인 <한국서예문화사>를 출간함으로써 1986년 석사논문을 시작으로 30년간 자료를 수집해 한국서예사를 완성했다. 이는 퇴임 후 인생 2막의 첫 시작이기도 했다.

 “물론 서예가로 살아온 지난 세월 동안 아쉬운 점도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서예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이 가장 아쉽지요.” 가장 한국적인 서예가 사람들에게서 외면받는 게 안타깝다는 그. 서예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면 이내 그 묵향에, 또 정적인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앞으로요? 고희를 맞는 내년에는 서집출간과 전시회를 열 계획이에요. 서예학과 30년을 기념해 제자들과 함께 동문초대전도 기획하고 있고요.” 인생에 있어서는 고희, 하지만 서예가로서는 다시 새로운 출발점 위에 서 있다는 그. 묵묵히 인서구노(人書俱老)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그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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