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철 원불교사상연구원 원장
태풍을 견디지 않은 소나무는 없다
취재. 장지해 기자

 역사를 향한 절박한 사명감 같은 게 있었다. 1980년 5월, 군대에서 광주민주항쟁을 겪은 것이 큰 계기였다. 군사 기밀을 취급하는 연락장교로 근무하면서 매일 그 정보를 보고하는 업무를 하는 내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군인인 신분으로서는 아무런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지키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제대 후 교화부에 근무하면서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질 못했어요. 그러다가 내가 경험한 광주의 비극은 역사적인 문제이고,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역사와 사회현실에 이렇게 무지해서야 어떻게 대종사님의 개벽의 사도로 일할 수 있겠는가!’라는 자각이 드니까, 공부를 해야겠더라고요.” 그렇게 시작된 역사학이라는 진로. 물론 한때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 그럴 때마다 함께 진로를 정해주셨던 스승님(진산 한정원 종사)은 큰 버팀목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동학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독보적 학문기반을 가진 박윤철 원불교사상연구원장(교무, 호적명 맹수). 하지만 그는 교화현장을 생각하면 이내 눈시울이 붉어지는 감수성이 풍부한 학자이기도 하다. ‘학문으로 현장에 어떻게 도움을 줄까?’를 고민하느라 숨 쉴 틈 없이 바쁜 요즘이, 너무 행복하다.

● 교단 2세기를 시작하며, 원불교사상연구원(이하 연구원)에 거는 기대가 많습니다.
“제가 원기 100년(2015) 3월 10일에 연구원 부원장으로 임명장을 받았는데, 그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단어가 ‘운명’이에요. 때가 된 거죠. 지난 100년 동안 양적·질적으로 성장해오며 생겨난 현장의 과제들을, 이제는 학문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시기예요. 개인적으로는 전생에 많이 놀고 먹어서 일 좀 하라고 이 시기에 책임을 맡게 된 것 같았어요. 하하.”
겉으로야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사실 머릿속에는 ‘맡은 책임이 무거운데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는 뜻의 ‘임중이도원(任重而道遠)’이라는 말이 맴돌았다. 1세기를 잘 정리하면서 미래를 위해 계속 발전시켜야 할 유산들을 재창조·재해석하는 일들을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 역사학자로서 바라보는 소태산은 어떤 분인가요?
“참 어려운 질문인데, 이건 역사에서 그대로 증명이 된다고 생각해요. 예수님이나 공자님 등 선각자가 등장한 시기는 모두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시대였죠. 다만 그땐 선천시대였고, 대종사님은 선천에서 후천시대로 바뀌는 문명의 대전환기에 등장하셔서 그 새로운 문명의 길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진리적이고 과학적이고 사실적이고 모범적으로 보여주셨어요. 진정한 개벽의 지도자죠.”

● 인재양성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요.
“사실 인재에 대한 고민은 우리 교단뿐 아니라 타 교단의 고민이기도 하고, 종교 분야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과제죠. 이런 고민을 할 때 우리가 기본적으로 공감해야 할 것은, 모든 사회적 지표에 있어서 양이 아닌 질과 가치로 승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거예요. 인재양성도 한 명의 훌륭한 인재가 백 명의 역할을 감당해낼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으로, 근본적 방향 전환을 하지 않으면 길이 없어요.”
농사를 지을 때 벼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는 말처럼, ‘앞선 세대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얼마만큼의 정성과 땀을 기울여서 미래 세대에게 투자할 것인가.’를 절실히 고민해야 한다고 말하는 박 원장. 거기에는 물론 ‘기다림’이 필수다.
“저희 집 마당에 2004년에 심은 소나무 몇 그루가 있어요. 처음엔 제대로 클 수 있을까 싶었죠. 그렇게 십년 넘는 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태풍과 폭설에 가지가 부러지는 아픔을 겪더니, 지금은 낙락장송까진 아니어도 낙장송 정도가 됐어요. 마찬가지로 인재도 기다려야 커요. 최소 10년, 그 기간 동안 우리가 물질적, 정신적, 분위기라는 정성을 미래 세대 양성에 쏟는다면 희망이 있다고 봐요.”

● 후배들 역시 인재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해야할 텐데요.
“현재 젊은 세대들은 배고픔도 모르지만, 특히 인류사에서 가장 비참한 전쟁의 아픔을 잘 몰라요. 다시 말하면 역사에 무감각하다고도 할 수 있죠. 그런 부분에 있어서, 후배들은 선진님들과 선배들이 이룬 교단 초창기의 역사가 얼마나 눈물겨웠는지를 적극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어요. 그걸 알아야 꾸지람이나 질책을 큰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죠. 꾸지람이나 질책에도 버텨내는 인내력과 끈기, 이 부분은 후배들이 좀 더 채워갔으면 좋겠어요.”

● 원불교 교화의 미래를 전망해 본다면요?
“교화에 대한 위기의식과 불안감들이 많이 들려오는데, 저는 미래의 교단 방향을 낙관적으로 봐요. 지난 100년 동안 선진님들께서 ‘사회적 자본’을 탄탄히 쌓아주신 덕분에 원불교는 한국사회에서 사회적인 신뢰라는 자본을 많이 확보했어요. 저명한 학자들이나 시민운동가들을 비롯한 사회 여러 분야의 사람들 중에 ‘친 원불교적 비교도들’이 많다는 게 그 증거죠. 문제는, 이걸 우리가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하는 거예요.”
‘이념 없는 혁명은 없다.’고 했다. 우리가 외치는 개혁 역시 일종의 혁명이므로,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제도나 시스템보다도 가치관의 변화, 정신의 변화, 생각의 변화를 더 강조하는 그다.
● 그 변화를 어떻게 이뤄갈까요?
“우리 교단의 얼인 원불교교사 교육이 강화되어야 해요. 초창기 교단 선진님들의 모습을 기록으로 살펴보면, 가난하고 어렵게 살면서도 늘 밝아요. 2세기 원불교를 새롭게 열어가려면, 초기 교사 교육에 힘을 기울이고 그 속의 훌륭한 보물들을 많이 드러내야 해요. 그 DNA가 나에게도 있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시키면 2세기 교단의 큰 힘이 될 거라고 자부해요.”

● 봉공회40주년기념 학술대회나, 신흥교당 근대문화유산 지정 등 최근 연구원의 활동을 보면 현장과 가까워지려는 시도가 엿보입니다.
“사실 원불교학은 인문과학, 자연과학, 의료분야, 사회과학 등 모든 학문을 아우르는 종합학이고 이사(理事)를 병행하는 학문이에요. 공부(학술적인 부분)는 물론이고, 사업 분야(현장)에 대해서도 연구로써 뒷받침해야 하는 게 연구원의 본래 사명이고 의무죠. 교화현장을 떠난 원불교학이 존재할 수 있나요? 그러니 당연히 교당, 기관, 각 단체를 힘닿는 데로 돕고, 현장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요구를 수렴하는 일들을 해야 하죠.”
백 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학술대회를 준비하며 교단 안팎에서 연구원에 거는 기대가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절감했다는 박 원장. 이에 우선적으로 학술대회나 월례발표회 등 학적 연구발표회를 교단 안팎의 관련 기관·단체들과 협력하여 ‘산학협동’ 방식으로 진행해 가면서, 필요하다면 현장으로 직접 찾아가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연구 활동들을 해가려고 한다. 특히 그는 ‘연구원은 특정 교수 몇 사람의 것이 아닌 교단 전체, 한국 사회 전체, 세계 인류 전체의 운명을 짊어진 곳이므로, 기도를 많이 해달라.’고 당부했다.

● 대학중점연구소에서 연구주제로 삼은 ‘공공성’에 미래 종교의 방향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년 9월에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대학중점연구소에 선정되는 경사가 있었어요. 우리 대학중점연구소에서 주제로 삼은 ‘공공성’은 21세기 학계의 최대 아젠다예요. 상극이 아닌 상생의 시대, 갈등이 아닌 조화의 시대, 어느 한 가지만 강조되는 시대가 아닌 서로 다른 것들이 상대를 인정하면서 어울리는 다양성의 시대를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 공익·공평·공정·공명·공중·공도·공사 등을 모두 아우르는, 우리가 가장 추구해야 할 아름다운 가치의 집합체가 공공성이죠. 공공성은 종교가 근본적으로 도달해야 할 자리인 도, 진리, 영성의 다른 표현이기도 해요. 이걸 잘 드러내면 한국의 위상, 한국에서 자생한 종교의 위상, 원불교의 위상, 원불교사상연구원의 위상, 원광대학교의 위상이 한꺼번에 드러날 거예요.”

● 마음에 보감으로 삼는 말씀을 소개해주세요.
“1983년에 한국학대학원 진학을 했는데 학과 지도교수님이 ‘자네는 다른 동료들이 다 학위 받고 학계에 자리 잡은 후, 학위를 받고 자리도 얻을 생각을 해라.’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충격이었죠. 근데 그때, 학부시절에 진산 한정원 교무님께 들었던 말씀이 생각났어요. ‘어떤 사람이 보살인 줄 아느냐. 보살은 다른 사람이 다 성불하도록 뒤에서 도와주는 사람이다. 너는 다른 동지나 선배들이 다 성불하도록 도와주고 가장 나중에 성불하거라.’ 이 두 말씀이 그대로 통하잖아요? 그렇게 살고 싶어요. 우리 모든 선·후진들이 다 성불하도록, 모든 교화현장의 교무님들이 다 교화에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묵묵히 뒷받침하는 그런 교역자로요.”

●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명평화운동을 하는 도법스님께서 ‘진짜 개벽을 하려면 자기 먼저 개벽을 해야 하고, 진짜 평화를 원한다면 자기 안의 평화가 먼저 실현되어야 한다.’라고 하셨어요. 내 안에서 만들어진 평화가 밖으로 발산될 때 행복도 평화도 있다는 거죠. ‘세상 개벽의 시작은 나의 개벽, 세상 평화의 시작은 내 안에서부터!’ 이게 행복 비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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