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의 의미
글. 전원준 원불교대학원대학교 2학년

 일을 하다가 잘못을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 핑계가 나온다. “아, 저는 A인 줄 알았어요.” “이렇게 하는 것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오는 말들. 그러면 교무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냥 죄송하다고 하면 될 것을 무슨 말이 그리 많냐.” 순간 ‘아차!’ 한다.

 핑계 안에는 이런저런 말들을 덧붙여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내가 있다. 또 내가 가진 나의 허상이 숨어있다. ‘나는 원래 잘하는 사람인데 이번에는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거예요.’ 어떻게든 나를 포장하여 남들에게 잘 보이고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것은 본연의 나를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경계에 따라 만들어진 ‘포장된 나’를 나라고 착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타인에게서 인정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믿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더 이상 남의 인정에 기대지 않는다. 자신이 지은 바(因)에 따라오는 결과(果)를 그대로 인정하게 된다. 그 결과가 잘 되었든지 못 되었든지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이것이 인과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더 이상 핑계가 필요치 않다. 만약 내가 잘못했다면? “죄송합니다.” 한 마디로 족하다. 이것으로 나는 주어진 것들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참회한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잘못하고 핑계대고 알아차림을 반복한다.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나는 ‘죄송합니다.’ 한 마디를 향해 나아갈 뿐이다.


중고 에어컨
글. 배명중 여의도교당

 가게 면적에 비해 에어컨 용량이 부족한 것 같아 한 대를 더 놓기로 했다. 새 것을 놓으려니 가격이 만만치 않아 저렴하면서도 성능이 좋은 중고제품을 구매했다. 그런데 냉기가 기대만큼 시원치 않았다. 서비스를 요청했다. 중고판매업자는 점검 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지난 여름을 땀범벅으로 보낸 기억에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불량제품을 팔아놓고 이상이 없다니, 비양심적인 것 아닌가?’

 그런데 기존제품도 냉방능력이 약해졌다. 제조회사에 서비스를 요청했다. 수리기사가 꼼꼼히 살펴보더니 제품에는 이상이 없고 실외기가 설치된 곳에 바람이 잘 통하지 않은 게 원인이란다. 실외기 주변을 정리해 바람이 잘 통하게 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러면 저것(중고제품)도 그런 이유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한다.

 순간 아찔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단지 중고제품이란 선입견(분별)으로 판매업자가 불량제품을 판매했다고 속단하고 원망했구나!(주착)’ 진리를 확증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부처님의 말씀을 건성으로 새기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해본다.


상대의 마음 헤아리기
글. 박민경 정릉교당

 고1 둘째 아이의 기말시험 기간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아이에게 필요한 부분을 도와주려 노력했지만 아이는 시험을 앞둔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 공부를 조금 하는 듯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컴퓨터를 하고 휴대폰으로 드라마를 보다 잠이 들곤 하는 것이다. 화나고 걱정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퉁명스럽게 말하고, 안 좋은 눈빛으로 대했다. 그렇게 아이와 대화가 잘 안 되니 서로 기분만 나빠졌다.

 ‘아이에게 잔소리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결국, “시험 때 너처럼 이렇게 공부 안 하는 애는 없을 것.”이라며 잔소리를 했다. 아이는 자신이 공부한 모습은 안 보고 안 한 모습만 본다며 나에게 화를 냈다. ‘화나는 건 난데….’ 하는 생각이 들며 억울했다. 다시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학생이 시험 때는 이러해야 한다.’는 나의 상이 있었고, 아이가 공부 잘하기를 바라는 내 욕심이 있었다. 그때야 비로소 ‘나름대로 시험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있어 기분 전환을 한 건데….’라는 아이의 마음이 보였다.

 그 후, 아이의 힘든 마음을 알아주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마음이 조금 풀어진 아이가 “안 그래도 공부하려고 했다.”고 말하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조금 변하니 아이도 변하는구나.’를 느끼며 ‘순간순간 내 마음을 놓치지 말고 상대방 마음을 헤아려야겠다.’고 다짐한다.

원망 생활을 감사 생활로
글. 전수연 광주교당

 2015년, 회사에서 진행하는 새 프로젝트의 조연출로 들어갔다.
 프로젝트 연출님은 생각보다 자유분방하신 분이었다. 연출님이 회의 때마다 말씀하신 아이디어들은 너무나 좋았고 공연 작품과도 잘 어울렸다. 배울 점이 있다는 생각에 회의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공연 연습이 시작되고 공연날이 가까워져 올수록 연출님은 전화를 안 받으셨다. 많은 감독님들이 연출님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분들도 연출님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러자 조연출인 나에게 계속 전화가 왔다. 그러나 연출님은 내 전화도 안 받았다.
이런 일이 점점 쌓이다 보니 처음에는 아이디어뱅크처럼 보였던 연출님이 게으름뱅이처럼 보이고 화가 났다. 연출님이 부재하자 회사에서도 나를 찾으며 일을 왜 이렇게 하냐고 말했다. 연출님 때문에 내가 잔소리를 듣는 게 너무 싫었다. 연출님이 점점 미워졌다.

 그러나 계속 화만 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연출님에게 화나는 내 마음을 ‘내가 연출이 되면 하지 말아야 할 행동’으로 돌이키며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마음을 정돈했다. 덕분에 처음보다는 화가 많이 나지 않았다.

 원망 생활을 감사 생활로 돌리니, 내가 보고 듣고 겪는 세상이 더 가벼워졌다. 앞으로도 내가 감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부터 곰곰이 생각하고 찾아야겠다.


아! 이제 살 것 같다!
글. 서예원 김해교당

 <정전> 일원상의 진리 중 ‘일원은 우주 만유의 본원이며, 제불 제성의 심인이며, 일체 중생의 본성’이라는 구절을 통해 일원은 일체 중생인 나의 본성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본성 그 자체로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것임을 알고, 양성하고 사용하는 용심법, 정법을 알고 나니 돌아올 마음의 중심이 생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심각하게 헤매고 슬퍼하며 허망해하던 마음 그 자체 그대로가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나의 당연한 마음’임을 알게 된 것이다. ‘아, 이런 상황에서 맘껏 슬퍼하고 허망해하는 것이 정상이구나.’를 알아차리고 나니, 나의 방황과 슬픔 그리고 허망함과 화해를 할 수 있었다. 불쑥불쑥 쏟아져 나오는 마음을 누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돌려쓰면 되는 원리’를 알게 된 것이다.

 그 원리를 알아채는 순간, 허무한 마음을 가누지 못한 채 천 길 낭떠러지 벼랑 끝에 서있는 내가 보였다. 그리고 이내 그냥 간단히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면, 한 번 고개만 돌리면 살 수 있는 내가 보였다.

 ‘이렇게 쉽고 자상한 법이 있는데, 그걸 모르고 이토록 마음을 끓이고 있었구나!’ 돌아올 법이 있으니 마음이 탁! 놓아지고 마음껏 숨 쉴 수 있어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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