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건칠 전통기능전승자

건칠, 기다림을 배우다

작품을 다듬느라 여념이 없는 김성호 건칠 전통기능전승자(16-3호).

 그가 옻과 토분을 섞어 삼베 위에 칠을 한다. 옻칠이 마르면 다시 삼베를 올리고 옻칠을 하길 여러 번. 삼베, 옻칠… 이 작업이 최소 10번 정도 반복되어야만 비로소 건칠공예의 기본이 되는 기물이 완성되는 것이다. 세심하게 옻칠을 얹던 그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좀 복잡하지요? 쉽게 말하면 칠로만 두께를 만드는 공예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러다 보니 건칠공예는 칠공예 중에서도 완성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고 과정 또한 복잡하지요.” 무심결에 화병을 들었다가, 그 가벼움에 다시 한번 놀라는데…. 목재나 타 재료를 사용하지 않다보니 가볍고 강도가 높은 게 건칠의 특징. “어려운 곡선도 더 유연하고 섬세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담긴다.

 “이 일에 자부심이 있으니까요. 초등학교 때에 서울로 올라와 지금까지 전통칠기 한길만 걸었어요.” 칠기공방에서 나전칠기와 건칠을 익힌 그.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 낮에는 공방에서 일하고 밤에는 미술학원에 다녔다. 어린 나이에 기술을 인정받아 공방의 선임이 되기도 했단다. “일을 하면서도 사이사이에 내 작품을 만들었어요. 언젠가 내 공방을 열 것이라고 다짐했죠. 그 때 건칠공예에 자꾸 눈이 가더라고요.” 크게 변화를 줄 수 없는 자개장롱과 달리, 새로운 모양과 무늬를 시도해 볼 수 있는 건칠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기술만 있으면 두려울 게 없다고 생각한 그. 하지만 수차례 칠과 건조, 연마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건칠공예는 만드는 것도 어렵거니와, 판매도 쉽지 않아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IMF 이후, 그 때 딱 한 번 이 일에서 손을 놓았어요. 3년 정도 다른 일을 했지요.” 다시는 공예를 하지 않겠다던 그를 불러들인 건, 아이러니하게도 먼지 쌓인 재료들이었다. 팔지 못하고 쌓여있는 재료가 아까워, 이것까지만 만들고 그만두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남은 재료로 작품을 두 개 만들었는데, 그게 공예공모전에서 대상과 금상을 받았어요. 기쁘면서도 기분이 참 묘했지요.” 공예에서 손을 떼고자 했을 때 그의 공예가 세상에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우직하게 한길만 걸어온 것에 대한 보상을 비로소 받는 것 같았단다. “그때 만들었던 작품은 저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죠.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으니까요.” 이후 공방을 다시 열고 건칠에만 집중한 그. 각종 대회에서 상을 받으며 기능을 인정받고 기능전승자에도 선정되었다. 그의 작품을 알아본 주위에서는 그를 대신해 홍보를 해주었다.

 “다양한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같은 무늬라도 어디에, 어떤 크기로 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현대적으로 바뀌지요. 그런 걸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얹힌 옻칠이 단단히 굳어지기까지 7, 8개월. 이 기간을 잘 보내야만 자개를 얹고 색을 칠할 수 있지만 그는 조바심내지 않는단다. 오히려 오랜 시간 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떤 무늬로 할지, 어떤 색을 칠할지가 보인다고. 인내의 예술이기도 한 건칠공예의 기다림을 비로소 음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나고 보니, 바보처럼 살아 온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못 견딜 정도로 힘든 적도 없었어요. 그럼 된 거죠.” 앞으로의 소망이 있다면, 지금까지 만든 작품을 가지고 개인전을 여는 것. 그러기 위해서 그는 오늘도 작품제작을 멈출 수 없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것입니다. 새로운 걸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요.”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