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고 노숙인들

그나마 노숙 기간이 짧고 힘이 있을 때 제도적인 도움을 준다면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강명권

 뉴스를 봤다. 장례비가 없어서 동생의 주검을 포기한다는 기사와 아울러 길리언(길 위에 사는 노숙인을 지칭하는 단어) 중 한해 사망자가 300여 명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아는 사람이 없어 대부분 무연고로 처리된다고 한다. 찾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더 안타깝다.

 서울역에서 ‘밥퍼’를 한지 벌써 6년하고 7개월이 지나간다. 하루 봉사자만 50~60명이니, 그동안 도와주신 봉공회원들만 해도 2만 명이 넘는다. 식사를 하신 분도 한 해에 보통 2만2천여 명이니, 그간 약 15만 명이 이곳에 오신 듯하다. 그 많은 인연 중 떠오르는 분들이 있다.

 여름에도 항상 열 겹 이상 옷을 겹쳐 입고 와서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던 분, 한 겨울에 찾아와 혼자 밥 세 그릇을 비우고는 뱃속의 아이에게 먹을 것을 사주고 싶다며 돈을 요구하던 어떤 임산부도 생각난다. 당시 현금이 없었던 나는 봉사자들과 부랴부랴 돈을 모았다. 그런 분들은 대개 돈을 받으면 다른 곳에 써버리는 경우가 많기에 직접 필요한 것을 사드렸다. 그 이후로 나는 항상 급식을 하러 갈 때마다 주머니에 2만 원을 챙긴다.

 거리에 사는 여성분들은 일부러 봉두난발 머리에 옷도 불결하게 입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남자들에게 시달림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 점이 늘 마음에 걸려 기회가 될 때마다 더 챙겨드리고 싶지만 대개는 대인기피증으로 인해 마음을 굳게 닫고 남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는 봉공회에서 운영하는 ‘은혜 고시원’에 한 남자분이 찾아왔다. 이 분 역시 거리에서 오래 살다 보니 맞는 경우가 많아 대인기피증이 심했다. 식사를 할 때에도 앉아서 먹지 못하고 서서 먹을 뿐 아니라 뭐라도 좀 챙겨 드리려하면 도망을 가신다. ‘월세는 어떻게 낼까?’ 하는 궁금증에 총무님께 여쭤보니 집에서 대준다고 한다. 혹 대인기피증때문에 가족도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급식소에는 엄마와 아이가 같이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는 그렇다 해도  ‘엄마의 심정은 어떨까?’를 생각하면 많이 안타깝다. 처음 본지 벌써 2~3년이 되어가는데, 요즘도 오신다. 

 급식을 하다보면 오랜 기간 안 보이는 분들도 있고, 새롭게 오는 분들도 있고, 한동안 안 보이다 다시 보이는 분들도 있고, 쭉 보이는 분들도 있다. 어느 쪽도 마음이 아픈 건 마찬가지지만 안보이다가 다시 오는 분들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개중에는 자립을 위해 굳게 마음을 먹고 국가 제도를 통해 기초수급자 신청을 하셨다가도 결국 노숙의 삶을 벗어나지 못해 다시 돌아오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혹 오랜 기간 안 보이는 분들의 경우 쓸쓸히 ‘무연고 사망’을 하신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

 노숙 기간이 길어질수록 건강은 약해지고, 병도 깊어져서 건강한 삶의 여력은 줄어든다. 그나마 노숙 기간이 짧고 힘이 있을 때 제도적인 도움을 준다면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누어줄 수 있는 힘이 부족해 늘 미안함이 가득하다.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힘을 키우고 만들어 가도록 노력해야겠다. 오늘도 거리에서 힘들게 살아가시는 분들에게 순간의 행복이라도 함께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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