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줄이고 ‘빠삐용’ 하며 살자
나이 들수록 지갑만 열어야 빠지지 말고 삐지지 말고 용서하며 살아야
글. 박정원  월간<산>부장·전 조선일보 기자

 나이가 들수록 남의 말은 잘 듣지 않고 자기 주장은 강해진다. 남의 말이 잘 안 들리는 건지, 잘 안 들으려고 하는 건지, 둘 다인지는 개인의 성격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만 열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것만 지켜도 어디서든 환영까지는 아니더라도 미움은 받지 않을 성싶다. 어떤 모임에 나갔을 때 나이 든 사람이 환영받으면 그 사람은 사회적 성공과 평판과 상관없이 인간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이 든 사람은 모임에서 별로 환대를 받지 못한다.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젊은이들이 대접해주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빨리 가지 않고 왜 저리 말이 많냐, 귀찮게.’라는 생각을 하기 일쑤다. 또 일부 나이 든 사람이 모임에 가면 아예 대놓고 ‘저 사람 또 왔다.’고 면박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 젊은이들만 탓 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나이 든 사람은 젊은이들의 불편한 심기와 상관없이 줄곧 본인 주장만 내세우기 때문이다. 세태가 바뀐 걸 모르는 것이다. 그나마 지갑을 자주 열면 지갑 값을 한다고 애교로 봐준다. 대개 나이 든 사람들은 지갑을 여는 횟수와 금액에 기하급수적으로 비례해서 입을 열려고 한다. 절대 산술급수가 아니다. 결국 그런 사람은 지갑의 긍정효과를 완전히 무력화 시키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케 한다.

 그런데 우리가 곰곰이 한 번 생각을 해보자.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왜 말을 많이 하려고 할까? 나이 들었다는 사실과 경험이 많다는 사실을 자랑하려고? 외로워서? 우울해서? 소외돼서? 다양한 이유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긍정요인과 부정요인으로 나뉜다. 긍정요인은 나이 들었다는 것과 경험이 많다는 사실 뿐이다. 물론 과거에는 이 요인만으로 존경과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인터넷에는 본인의 경험보다 훨씬 많은 경험과 정보가 수두룩하게 쌓여 있다. 특정 개인의 경험이 절대 독보적인 정보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혹자는 “옛날에는 경험 자체가 대접을 받았지만 요즘은 경험이 쓰레기가 되는 세상이다.”라고 혹평한다. 서글픈 현실이다.

 나이가 들수록 젊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한 번 자리를 같이 하면 한말 또 하고, 과거의 경험을 무용담처럼 과시하고, 전혀 웃기지도 않은 얘기를 과장해서 웃고 하는 등의 모습은 같이 자리 한 젊은이들을 더욱 불편하게 한다. 옛날에는 ‘그러려니~’ 하고 그냥 고개를 끄떡거리며 넘어갔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과거의 경험을 ‘쓰레기’ 혹은 ‘올드 스타일’로 치부해 버린다. 그들이 알고자 하고 찾고자 하는 정보는, 과거를 경험한 사람들보다는 맞춤형 정보가 수두룩하게 쌓여 있는 인터넷에 있다. 그러니 나이 든 사람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고, 그들의 얘기를 앉아서 들을 이유도 없는 것이다. 

 본인도 과거에 비슷한 경험을 했으니 잘 알 터이다. 왜 젊은이들은 나이든 사람을 싫어할까, 아니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을까를 곰곰이 한 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본인 탓일까, 젊은이들 탓일까?

 지방출장을 가서 겪은 이야기다. 생업을 은퇴하고 소일거리로 가이드를 하는 분을 만났다. 은퇴했으니 연세가 제법 됐다. 그분한테 “내가 알고자 하는 분야의 전문가를 섭외를 해 달라.”고 요청하니 주저주저 하다가 안내를 했다. 금방 봐도 싫은 내색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그분은 나를 위해서 기꺼이 싫어도 소개를 해줬다. 전문가를 만나러 가면서 그분은 딱 한 마디를 했다. “조금 지겹더라도 참아야 할 것.”이라고. 처음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 “괜찮다.”며 기대를 가지고 따라갔다. 그런데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이 하신 말씀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소개받은 분은 안내해준 분보다 불과 몇 살 많았다. 그 전문가는 한정식 집을 하고 있었고, 거기서 우리를 만나자고 했다. 거하게 한정식을 차려놓은 채, 우리를 맞이했다. 내가 질문 몇 마디를 던지고 난 후, 그 전문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본인 말만 했다. 안내해준 그분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 열심히 음식만 먹었다. 전문가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미 상당히 겪은 듯했다. 자리를 파하고 나오면서 안내해준 그분이 한 마디를 했다. “내가 귀를 열어준 대가로 음식을 먹는 것은 당연하다.” 전문가를 자처한 분은 너무 많은 말로 이미 주변 사람들로부터 ‘지갑의 긍정효과’를 마이너스로 돌린 지 오래된 것 같았다.

 노자의 <도덕경> 제5장에 ‘다언삭궁(多言數窮)’이란 말이 나온다.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린다.’는 뜻이지만, 우리는 흔히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없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다언삭궁 바로 뒤에 나오는 말이 ‘불여수중(不如守中)’이다. 그저 말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만 못하다는 의미다. 쉽게 풀어 보면, 말이 많으면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다. 정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우리 속담에도 ‘말은 적을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자기가 내뱉은 말은 언제, 어떤 무기가 돼서 본인한테 부메랑으로 되돌아올지 모른다. 특히 험담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좋은 말, 칭찬만 하라는 것이다.

 나이 들었다고 젊은 사람들한테 본인 경험을 무용담 같이 하는 시절은 지나갔다. 그렇다고 섭섭해 할 필요는 없다. 세태가 그러니 어떡하랴. 이럴 때 사용하는 나이 든 사람들을 위한 건배사가 있다. 모임에 가서 한 번 사용해 보시라. 젊은이들한테 환대까지는 아니더라도 미움은 받지 않을 테니. 빠삐용이란 명화가 있긴 하지만 명화 소개는 아니고, 건배사다. 빠삐용은 ‘빠지지 말고, 삐지지 말고, 용서하며 살자.’의 약자다. “빠지지 말고, 삐지지 말고, 용서하며 살자”를 선창하면서 후창으로 “빠삐용”을 외쳐보자.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아보자. 힐링이 한층 더 가까이 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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