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시대와 원불교 개교정신 실현
박도광 교수교무 종교문제연구소장

 현대사회는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18세기 후반부터 영국 등 유럽사회를 선두로 하여 경공업, 중화학, 군수산업, IT지식정보산업이 고도로 발전해 왔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1980년대 초 <제3의 물결>이란 저서에서 인류 문명이 제1의 물결인 농업단계를 거쳐, 제2의 물결인 산업단계, 그리고 제3의 물결인 정보혁명의 확산에 대해 언급하였다.

 현재 4차 산업혁명은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의 분야에서 초고속으로 진화발전하고 있다. 최근, 이세돌과의 바둑 대국에서 알파고(Alpha Go)는 바둑판의 전체적 맥락(context)과 상대방의 수를 읽어가면서 바둑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미래의 인공지능은 과거의 축적된 지식과 정보를 그대로 사용하는 수동적인 형태가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여 지적 경험의 세계를 능동적으로 확장해 가는 것이기에 놀라움을 주고 있다.

 현대사회의 혁신적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과학문명시대를 맞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게 하고 있다. 그러나, 급속도로 전개되는 세계화(globalization)과정에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로 일컬어지는 ‘브렉시트(Blexit)’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는 정치·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군사적 경쟁을 고조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그 자체는 남북 갈등과 대립, 빈부 격차, 테러와 이민자의 급증, 폭력과 안전위협, 자살과 우울 현상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되지는 못한다.

 이러한 문명 전환 시기에 원불교가 어떻게 사회에 소금과 목탁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원불교의 시대정신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정신에 바탕하고 있다. 이는 원불교가 실천해야할 진리적 명제(命題)이다.

 인간사회는 왜 고통 속에 살고 있나? 소태산 대종사는 ‘개교의 동기’에서 정신의 쇠약과 물질의 노예생활로 인한 인간사회를 고통의 바다에 비유하였다. 과학문명의 발전과 정신문명의 쇠약은 인간 스스로 물질의 노예생활을 면하지 못하게 되어 인류 역사에 비극적인 고통의 바다를 헤어나지 못하는 현상을 말씀한 것이다.

 이는 경제적 물질적 혜택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동시에 ‘탐욕적 자본주의’에 매몰되지 않아야 함을 경계한 것이다. 18세기 영국과 유럽의 산업혁명을 이룬 경제 기반은 대체로 식민지 개척을 통한 자원의 독점적 확보, 노예제도의 확산과 노예시장을 통한 자본확충에 의한 것이다. 20세기에 일어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역시 산업혁명을 통한 경제지배, 부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열악한 국가 침략과 식민지화가 난무하던 약육강식의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진행 중인 4차 산업혁명시대에도 과거의 침략적 지배의 문명구조는 바뀌지 않은 채, 오히려 더 경쟁적으로 지배와 종속관계가 심화될 것이다. 정치, 경제, 군사, 문화, 학술, 지식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배와 종속의 관계가 뚜렷해지고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계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문명의 대립과 충돌, 안전에 대한 위협과 갈등현상, 지배와 종속의 관계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소태산 대종사는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고자 하였다. 일원(一圓)의 진리를 신앙하고 수행의 표본으로 삼아서, 모든 종교의 교지(敎旨)도 통합 활용하여 광대하고 원만한 종교를 신앙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는 이웃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명시대의 열린 종교인, 원만한 종교인이 될 것을 요청한 것이다.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공경하는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일원의 진리를 신앙하여 은혜를 자각하고 만나는 생명마다 부처로 대하자는 것이다. 수행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마음작용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아무리 좋은 물질이라도 사용하는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그 물질이 도리어 악용되고 마는 것이며, 아무리 좋은 재주와 박람 박식이라도 그 사용하는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그 재주와 박람 박식이 도리어 공중에 해독을 주게 되는 것.”(<원불교교전>, 교의품 30장)이라 하였다. 마음은 사용하는 사람의 조종 여하에 따라 이 세상을 좋게도 하고 낮게도 하는 중심추이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인류사회는 탈민족의 열린사회, 탈종교의 영성시대, 물질문명을 선용하는 정신문명으로의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팽배해져 가는 폐쇄적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이웃 민족과 문화를 존중하는 열린 민족주의로의 전환이 범세계적으로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종교만을 중시하는 배타적 종교우월주의를 극복하여 모든 종교의 울타리를 서로 넘나드는 탈종교의 열린 종교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경험과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이웃 종교에 무지한 종교적 신념은 생각과 행동의 감옥을 만든다. 또한, 탐욕적 자본주의와 지배·종속의 이원적 구조의 근본적 변화는 상호 생명의 존귀함에 대한 영성의 자각에 의해 가능하다. 종교의 생명력은 그 구성원들이 교조의 근본정신을 얼마나 자각하면서 성실하게 평화의 문명시대를 실현해 가느냐에 달려있다.

 

신선한 생각, 새로운 태도
민성효 교무 유성교당


 요즈음 대종사님의 법문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현실 문제에 대한 분석도, 그에 대한 해결법 제시도, 어쩜 내 삶에 이토록 절실한 말씀인지 매일 감탄을 거듭한다.

 ‘개교의 동기’는 원불교가 나아갈 방향이자, 내가 원불교인으로 살아가는 목적이다.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파란고해를 벗어나 현실 속에서 광대 무량한 낙원을 맞자는 것이다.

 원불교 개교 당시, 여성들은 자신의 몸임에도 자기 마음대로 활동하기가 어렵고, 뜻을 펴기에 너무나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종사님께서는 그러한 의뢰생활을 단호히 떨치고 여성들이 몸과 마음에 자주의 힘을 갖추도록 길을 열어주셨다. 또한 모든 차별을 철폐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하셨으며,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인권을 가진 사회적 존재로 활동할 수 있다고 가르쳐주셨다.

 대종사님께서 직접 지도해주실 때의 혁신적인 내용들이 오늘날에도 잘 실현되고 있는가를 되돌아본다. 여성인권의 문제로 비춰질 수도 있는 예비교무 입학서류 중 여학생만 제출해야 했던 ‘정녀지원서’의 폐지는 점차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

 일각에서는 ‘정녀지원서를 폐지하면 기성 교역자들이 결혼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녀지원서를 이미 제출하고 입학한 사람들은 설령 정녀선서식을 하지 않더라도 결혼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정녀지원서를 제출하지 않고 입학할 지원자들에 대해서는 결혼을 제한해서도 안 되고, 교단에서는 여성 교역자들의 결혼에 대한 제도적 보완과 실질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

 오랜 관습과 가부장적 의식을 고치기는 쉽지 않겠지만, 신선한 생각 새로운 태도로 앞장서서 개혁적인 제도를 만들고 실천하신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잘 지키는 것이 제자 된 우리들의 사명이다. 대종사님께서 이미 해결방법을 제시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후퇴한 부분이 있다면, 개선해나가기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개교의 동기’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성들도 스스로 정신적·육체적·경제적·사회적 자주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나 여성들의 개인적인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우리 사회에는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다. 한국 여성들의 급여는 남성들의 63%로 남녀 간 임금 격차는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크다. 한국 남성 근로자가 100만원의 임금을 받는다고 치면 여성은 62만8000원을 수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경제적 불균형은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로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의식변화이다. 차별적 관행을 지속하고, 여성에 대한 성차별 발언을 하고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거나 사랑과 소유욕을 분간하지 못해 저지르는 데이트 폭력 등은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의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원불교는 여러 종교 가운데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교리를 제시하였고 이를 실천해나가고 있다. 여성의 인권을 무시하거나 여성을 차별하거나 여성혐오 범죄를 저지르는 것 등의 모든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원불교가 반드시 앞장서야 할 것이다.

 원불교의 장점은 좋은 훈련법이 있고 이를 통해 꾸준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원불교에는 이미 우리가 지향해야 할 올바른 방향이 제시되어 있다.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라면 자신과 가족, 사회훈련을 통해 광대 무량한 낙원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현실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신선한 생각과 새로운 태도로 오래 오래 꾸준하게 진행해 나가는 실천의 노력이 필요하다.


원불교가 만드는 ‘가정이 행복한 사회’

박천경 전 서대연회장

 “오늘은 신사업 발굴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 중요한 PT가 있는 날이다. 그간 나의 모든 것을 쏟아 오늘을 준비해왔지만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품에 안고 병원을 향하고 있는 택시 안은 유난히 답답하다. 새벽부터 딸의 울음소리가 심상치 않기에 해외 출장 중인 남편과 지방에 계시는 부모님이 아닌 회사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나의 청천벽력 같은 통보와 맞물려 들려오는 팀장의 한숨에 차오르는 눈물을 간신히 삼켰다. 지금 뱃속에 있는 둘째를 낳게 되면 15개월의 법적 육아휴직이 주어지지만 그 후 어린이집에서 저녁 늦게까지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얼굴을 또 볼 자신이 없다. 이제 그만 꿈을 향한 걸음을 멈출까 생각 중이다.”

 언뜻 과장이 있어 보이지만 필자를 포함하여 이제 막 가정을 꾸리기 시작한 대한민국 청년들의 고민을 이야기로 풀어보았다. 우리나라는 정부와 노사의 많은 노력으로 노동 환경이 나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성의 전통적 성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사회 분위기라 여성이 가정을 돌보며 일을 하기에는 여전히 힘든 것이 사실이다. 맞벌이 부부라 해도 가정에 대해서는 여성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시각, 남성의 육아휴직이나 가사 전담을 생소하게 여기는 사회의 시각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국가 및 사회적으로 우리의 후세를 키우는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지만 아직은 개개인과 그들의 부모님, 그리고 경제력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출가교화단 각단회에서 ‘여성 교무 결혼 허용’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곧 수위단회의 의결과 교정원의 규칙 개정을 앞두고 있는 단계라 교단 제도화 시기 이래 처음으로 가정을 가진 여성 교무님이 나오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사실 그간의 원불교 정녀제도는 과거 스승님들께서 제도적으로 열악했던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 출가자들의 서원과 수행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최선의 방안이었을 것이다. 수위단회 남녀 동수와 같은, 타 종교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 교단의 선진적 문화는 여성 출가자들이 당시 기혼 여성들이 겪던 파란 고해를 비켜갈 수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가 대종사님 말씀인 ‘남녀권리 동일’을 실현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성숙했고, 교단 또한 새로운 모습으로 다음 100년을 준비할 역량이 갖춰졌다고 본다. 평등에 대한 근본적 논의도 할 만큼 했다. 이제는 기혼 여성 교무 또는 교무 부부를 위한 양육비 지원, 배우자 육아 휴직 의무사용과 같은 제도적 논의가 필요하다. 이것이 빠지면 실질적 의미는 없이 보기에만 좋은 변화로 남게 될 것이다. 서두의 사례는 이제 곧 교무님들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

 교단이 숙고하여 마련한 세련된 정책과 제도를 통해 원불교가 여성의 출산 및 육아와 자아의 실현을 양립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롤모델이 될 때다. 개벽된 정신을 바탕으로 다듬어진 교단의 모습을 통해 고민에 빠진 우리 청년들에게 희망이 되는 것이 새로운 100년을 맞이하는 원불교의 역할이지 않을까. 저출산으로 걱정이 많은 우리 사회가, 먼 곳이 아닌 바로 원불교에서 그 낙원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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